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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래연 Feb 04. 2021

첫눈 오는 날엔 우체국에 가세요




2014.12.3. 늪과 빙판은 늘 옆에


바로 옆자리에서 대화 소리가 들려오지만 아직은 이를 차단하고자 이어폰을 꽂거나 하지 않는다. 당분간 약 10분간은. 그들이 비밀스러운 듯 조심스럽게 속삭이니만치 나로선 더욱 귀를 기울이게 된다. 들리는 즉, 나이 든 사람들의 비밀스런 연애 이야기가 사교춤 세계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듯한데, 아뿔싸, 흥미가 채 무르익기도 전에 그들은 급히 가야 할 데가 있다는 듯 계산을 서둘러 끝내고는 초저녁 길을 다시 떠난다.



내 오늘 메뉴는 각별히 예쁜 노란 잔에 담겨 나온 에스프레소 콘파냐. 이 작은 잔에 수북이 올려진 휘핑크림이라니! 비록 지금 실시간으로 눈이 내리고 있지는 않지만, 아직은 이미 내린 눈으로 덮여 있는 바깥을 탐식하기에 걸맞다. 눈이여, 이 쓰디쓴 일상을 덮어주세요, 이렇게 속삭이고 싶다.




비밀스런 커플에 이어 또 한 신사마저 떠나서, 이 카페엔 나 혼자다. 지나간 시대의 음악이 아득하다. 이 카페의 음악은 웅장하게 공간을 지배하는 대신 ‘잊지 않고 항상 흐르고 있다’는 정도의 존재감이다. 구석에 앉은 귀를 매만져주는 정도다. 그것들의 태반은, 잊혀질 만하면 우연히 다시 들려오는 전 시대의 가락들이다. 바깥의 차 소리가 간간이 배경음으로 추임새를 넣는다.








이 카페의 주인은 전혀 말이 많지 않지만, 문을 열고 들어서는 나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그리고 주문하러 카운터로 다가선 내게 헝겊으로 만든 메뉴를 내미는 순간, 그녀의 표정엔 한 점 가식 없는 반가움이 역력하다. 우리는 동글동글한 대화를 뭉쳐 굴린다.




    “눈 오는 날 이 카페 앉으면 좋을 것 같았는데, 그 날 그만 너무 졸려 오질 못했어요.”

    “겨울 되면 여기 텅텅 비고 썰렁해요.”

    “그래요? 많이 올 거 같은데......”

    “봄에가 좋아요. 벚꽃 필 때, 정말 예뻐요.”

    “저도 다른 동네 살다가, 그 벚꽃 철에 여기 와보고는, 이리로 이사 오겠다 노래를 불렀었죠.”

    “아, 이사 오신 거예요?”

    “예, 올 일월에요. 이 카펜 오래되었나 봐요?”

    “3년요. 이 동네에서 젤 처음 생겼어요.”

    “같은 구인데도 여긴 동네 느낌이 참 달라요.”

    “그래서 작가 화가분들이 많이 이사와 사세요.”     



작가나 화가들이 이 동네에 끌리는 게 너무나 당연해 보인다. 도회지만 여기는 아파트 숲이 아니고 나지막한 빌라와 주택과 개천이 옹기종기 모여, 정말이지 마을 같은 마을의 모양새를 이루었고 거주민들 또한 그런 마을에 어울리는 얼굴들을 하고 있다. 삶의 공허가 커져 갈 만하면 주기적으로 위로가 바람처럼 와서 고이는 곳, 기왕이면 그런 곳에 살아야 한다. 일상에서 늪이나 빙판은 늘 아슬아슬한 거리에 있으니 말이다. 자칫 발을 헛디디면 엄한 데 빠지거나 미끄러지기 때문이다.











이내 차례로 몇 테이블이 채워졌다. 두 개의 자리엔 누군가들이 한참 작업 거리를 펼쳐 놓았고 방금 전엔 목소리 큰 아주머니 두 분이 내 옆 옆자리에 앉아 누군가들에 대한 험담을 시작한다. 곧 이어폰을 끼게 될 거 같다.

오늘은 쓰던 단편을 맺을 수 있을 것인가? 마지막만 남겨놓은 상태에서 지난 한 달은 건드리지조차 않았다. 떠나는 늦가을을 심하게 앓기도 했고 손가락 마디 통증이 생겨 손을 휴식시켜야 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저께 첫눈. 12월 첫날의 첫눈은 겨울을 알리는 프렐류드 같았다. 대낮은 폭죽 같은 서곡이 넘쳐 기뻐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그 날 아침 우체국 문이 열리기도 전에 대기했다가 여러 통의 등기를 부쳤다. 우체국에서 번호표 1번을 뽑아 본 것은 태어나 처음이었다. 




첫눈 가까워 오면서 대기에 가득 찬 습기는 힘줄들을 고문했었는데 막상 눈이 쏟아지고 나자 조금은 경쾌해졌다. 늦가을이 꼬리를 길게 빼며 남겼던 감질나는 기분을 일거에 쓸어간 자리에 쨍하고 들어선 겨울 왕국은 신선했다. 

오늘은 어쩐지 이 글을 어떻게 끝맺을지 모르겠다. 쓰던 소설도 과연 맺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Au revoir. A demain.     












                                                                                         

아프리카 결연 소년에게 그려 보냈던 크리스마스 카드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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