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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래연 Jun 23. 2024

귓속에 흘러든 물










글이야말로 만병통치는 아니지만 만병에 상처 소독이나 드레싱, 진통제 같은 구실은 한다.



이 좋은 일요일 우습지도 않은 하나의 통증에 감각이 집중되어 있다.


눈에 선크림이 들어가 은근 성가셔하고 있다.


시린 눈으로 재료를 썰어 스튜를 만들고 


스튜가 끓는 동안 시린 눈을 깜박거려가며 손톱을 깎고


여전히 시린 눈으로 바깥 경치를 흘긋거려가며 스튜를 먹고 있다.



며칠 전엔  귀에 물이 들어갔는지도 모르게 들어갔다.


귀가 막막한 것으로 보아 들어가버렸나 추측될 뿐이었다.


그런데  돌아오지 않았다.


몸을 흔들어도 면봉을 넣어보기도 했으나 효력이 없다가


단념하고 쉬고 있으니 어느 순간 물이 흘러나왔다.



흘러나오는 순간 쾌감이 느껴졌다.


그 물은 들어갈 때와는 달리 온도를 입고 있었다.



온수로 다시 태어난 이 물은 내 귓속, 나도 모르는 지형 속으로 흘러들어


내가 숨긴 적도 없는 비밀을 두루 탐험하고서 세상으로 돌아온 것이었다.



누군가들은 시린 눈이나 치아, 귀에 들어간 물에 개의치 않고


모든 성가심을 뚫고서 자기를 성취하거나 만인을 위하거나 하며 살 텐데


나는 고작 이런 시시하게 거슬리는 일에 감각이 사로잡혀


대부분의 시간을 무익하게 흘려보낸다.



'남보다 에너지를 적게 타고났으니 없는 에너지 아껴가며 사는 것도 당신의 과제다.'


라고 말해준 점성가의 말을 떠올리며 자책을 삼가고 있다.


무척 적은 에너지로도 뇌와 손을 꼼지락거려  하루에 십 분 이십 분씩만 집중한다면


소소한 무언가를 이루면서 살 수 있긴 하다.


애초에 남보다 못하다, 힘이 달린다는 데 의식이 지나치게 쏠려 


에너지를 한 번 더 갉아먹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유일하게 자주 대화하던 절친이


아침저녁 할 거 없이 사람에 치이며 바빠져 톡을 하지 못하게 되면서


내가 얼마나 대화 상대 없이 살아왔는지가


바닷물 빠져나간 개펄처럼 드러났다.


그러니까 친구 하나가 그간 내 일상에서 '1인 바다'의 역할을 해왔던 것.



이 상태를 외로워하며


조금이라도 외로움을 덜 느낄 궁리를 하다가


이내 그냥 외롭기로 했다.


운명이 내게 고독을 권유하는 구간이라 믿고


수다를 삼가다시피 살고 있다.



그러나 저자극의 지속은 뇌에 좋지 않으므로


나갈 건수만 있으면 


전시회다 북토크다 뭐다 두루 돌아다니려 하는 올해 상반기였다.




그나저나 내 귓속에 흘러든 물이 


그 투명한 눈으로 담아온 비밀은 무엇이었을까?



역시 글을 쓰는 동안 조금이라도 진정되었는지


눈의 쓰라림이 잦아들었다. 


스튜도 다 먹었다.


곧 일요일의 자연 속으로 빠져들어


걷다가 발이 다 사라지고 


또 내가 바람이 될 때까지 걸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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