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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래연 May 17. 2024

오월 장미의 일기




아무 생각도 나지 않을 때, 

이런 날이 길어질 땐, 

슬그머니 슬픈 생각이라도 불러온다.

슬픔은 비할 나위 없는 곡절이라, 

삶에 이유와 구실을 대어주기도 한다.

혹은 마음에서 무언가 투쟁하는 골칫거리가 있을 땐 

그 역동으로라도 살아진다.


사람이 남의 욕을 하게 되는 심리에 대해 생각해 보면,

정말 욕하는 대상이 관건이지 않을 수 있다 싶다.

그게 좋은 일이 아니란 걸 알면서도 욕을 하게 되는 까닭은

그 기저에는.....

욕이라도 하고 있어야, 적이라도 삼아야

삶에 원랜 있지도 않은 것 같은 내 위치가 잠시 생겨나는 것 같은 것?


원래 아무것도 아닌 건데

자꾸만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느낌에 작게 몸부림친다.

바람에 장미가 흔들리는 것만큼의.


장미는 

내가 장미니까, 하고

생각하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인간이 영장이라는 것이

생각하는 존재라는 것이

으스대고 유난한 존재라는 것 같다.

잠시라도 이유와 의미를 먹여주지 않으면

지탱하지 못하는 연약인 주제에.

실은 존재하는 것들 중 말단에 불과하다.


여기까지 적고 나자 

뭔지 모를 슬픔이라도 올라온다.

이 슬픔을 되새김질하는 힘으로라도

오늘을 살 수 있을까?


가만 음미해 보면

슬픔보다 더한 무엇이다.

정처 없음이라는 말이 떠오른다.


여기까지 쓰고 나니

아이러니하게도 

이 정처 없음이 내 기저고 정체성이고

심지어 원동력이었음을 깨닫고 있다.


이걸 자주 잊는다.


지금 난 이 정처 없음을 미끼로

슬픔을 쥐어짜고 있다.

살아있음을 덧없이 확인하려는

말도 안 되는 유령처럼.


나는 무엇이어서가 아니라

아무 것도 아니기에

책을 썼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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