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념무상 클럽
오늘만큼은 강변에 호젓하게 돗자리를 펴고 앉아
누군가에게 선물할 인형을 뜨겠다는 그림이 머리에 들어왔는데
이게 현실을 맞닥뜨렸을 때 어떻게 되는지 보겠다.
다들 휴식으로 분주할 그런 장소에서
햇빛을 피할 적당한 1인용 그늘을 찾을 수나 있을지,
겨우 돗자리를 폈는데, 기분이 한참 좋을 때
예기찮은 벌레들이 난입한다는지,
이런 것까지를 포함하여
오늘의 로망이라 이름해야지.
햇빛이 너무도 아까운 철이니까.
영감이 오는 건 순식간이다.
그런데 영감 혹은 어떤 좋은 생각을 불러들이기 위해
초혼하고 제사 지내듯 지내는 날들은
길고 지루한 데다가 헛됨의 흉흉한 냄새까지 흘린다.
강변에선 수많은 인파 속에서도 적당한 그늘을 찾았고
한 시간 정도 모든 걸 잊은 듯 뜨개질을 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홀연한 상태에 접어들면서
흡사 잊고 있던 나를 한꺼번에 되찾기라도 한 것 같은 기분이 되었다.
14코를 잡아 14단을 떠올리는 동안에.
그러나 이렇게 되기까지 요사이 내 마음은 어떤 벼랑 끝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내 삶의 소일은 다른 어떤 특별한 사명보다도
죽음의 가면을 쓴 허무와 싸우는 일 그 자체에 있다는,
그 오랜 느낌을 오늘 다시 만났다.
자주 강변 뜨개질을 이어가기로 한다.
햇빛과 바람의 화학작용 속에 시간을 보내다가,
수많은 이들과 함께 일몰을 맞는 일이 장엄하다.
어떤 경관은 인간이 스스로는 할 수 없는 변화를 선물한다.
변화가 일어나기까지, 그전 과정은 충분히 지긋지긋해야 하는지도 모른다.
그래야 작은 변화가 감지될 수 있고, 그 변화에 고마워하게 된다.
오늘 어떤 순간의 지복스러운 느낌이,
자고 내일 일어났을 땐
또 다른 헛됨으로 나 자신에게 인식될 수도 있다.
그토록 회의와 불신은 끈질기다.
이들은 죽음의 가면을 쓴 허무가 부리는 졸개들이다.
모두가 허무와 죽음을 더 믿고 생명을 덜 믿으므로
그간 인류가 필멸을 거듭해왔다고 믿는다.
자연적으로 주어진 것을 수동적으로 누리는 외에는
생 그 자체를 자각하고 부각하지 못하였으므로
그것을 지키지 못하였던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우리가 믿는 방향대로 뇌는 그 증거를 수집하기 위해
그만큼의 현실을 불러들인다고 한다.
우주도 어떤 뇌라서, 그 안의 인류가 믿는 대로 프로그램을 돌릴지도 모른다.
믿는 바를 바꾸면 다른 프로그램이 돌아갈지도 모르고
어쩌면 이것이 우리 미래일지도 모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