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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odoseeker May 14. 2022

다시 산티아고로 - 15일 차

약속

15일 차


라바코야 -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오늘 걸은 거리 : 10km

걸은 거리 : 381.6km

남은 거리 : 0km



오전 11시 29분, 산티아고 대성당 앞 광장에 도착했다. 저 멀리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할 때부터 마치 오늘을 위해 몰래 힘을 아껴둔 듯 발의 아픔도 모두 잊고 처음 순례길을 시작했던 그날처럼 큰 보폭으로 쉬지 않고 두 시간을 걸었다.





따뜻한 오전의 햇볕이 쏟아지는 대성당 광장에는 세상의 모든 기쁨이 다 모여있는 것 같았다. 사람들은 얼싸안고, 환호하고, 이를 드러내고 웃으며 사진을 찍었다. 누군가는 한쪽 무릎을 꿇고 성당을 바라보며 묵상하고 있었고, 어떤 이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오열하기도 했다. 나는 지나가던 이름 모를 순례자에게 부탁해 대성당을 배경으로 내 사진을 남겼다. 그는 내게 축하한다며 엄지를 세워주었다. 나는 껴안을 사람도, 함께 환호할 친구도 없었지만, 기뻐하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일 만으로도 마음이 따뜻해져서, 광장 한편에 잠시 배낭을 내려놓고 꽤 오랜 시간 동안 회랑의 돌기둥에 기대앉아 새로 도착하는 사람들과, 기쁨의 세리머니를 마치고 자리를 떠나는 사람들을 지켜보았다.





문득 이 여행이 결국 이렇게 종착점에 다다랐다는 후련함보다는, 오히려 순례의 첫날 생장에 도착하던 날의 설렘이 견디지 못할 정도로 그리워졌다. 떠들썩했던 파티의 흥겨움 보다는 파티를 준비하며 손님을 기대했던 마음이, 오랫동안 그리워했던 이를 결국 만나게 되는 순간보다는 그를 기다리며 고대했던 지고지순한 시간이 더 기억에 남는 것처럼. 어쩌면 그래서 순례자들은 결국 몇 번이고 이 길 위로 다시 돌아올 수밖에 없는 운명을 받아들이게 되는 건지도 모르겠다.


이곳에 당도했던 과거의 나 자신이 스스로에게 그랬던 것처럼, 나는 오늘의 나와 또다시 새로운 약속의 손가락을 건다. 지난 무명의 모든 순간들을 망설임 없이 기꺼이 그리워할 만큼 스스로에게 진실했던 것처럼, 다가올 시간들을 두려움 없이 환대하자고. 그리고 몇 날 며칠이고 내내 쉬지 않고 떠들 수 있을 만큼의 이야기가 준비되는 날, 다시 이곳에서 나와 만나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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