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격적인 아름다움, 절대적인 위로
이십 대의 마지막 해 겨울, 혼자 떠났던 노르웨이의 북쪽 끝 트롬쇠라는 도시 근처에서 오로라를 만났습니다. 사실, 오로라를 보기 위해 유럽으로 떠났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당시 어느 공모전에서 우승해 부상으로 받은 베를린 왕복 티켓 덕분에 베를린으로 떠날 수 있게 되었고, 그곳에서 나름대로 무언가 해보겠다며 그때의 미숙한 작업 물들을 정리 해 여러 권의 포트폴리오와 명함을 뽑아 베를린의 여러 상업 갤러리들을 돌며 발품을 팔았습니다. 누군가의 신화를 그대로 복기해보고 싶은 욕망과 치기가 있었고, 그로부터 어떤 기적을 바랐던 것 같습니다. 물론 그런 일은 전혀 일어나지 않았고, 포트폴리오를 품에서 꺼내기도 전에 문전박대를 수십 번 당하고 나서야 유스호스텔의 2층 침대에 앉아 심한 자책감과 좌절을 느꼈습니다. 당시 또래 친구들이 이미 어엿한 사회인이 되어 한 사람의 몫을 하는 모습이 부러웠고, 이렇게 답도 없는 길을 선택한 나 자신에 대한 원망, 그리고 그것을 결코 포기할 수도, 타협할 수도 없는 스스로에게 화가 났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북쪽으로의 즉흥적인 여행은 황망한 피신이자 망명이었습니다. 마치 자신의 운명에 대한 의구심을 이기지 못해 신탁(神託)을 찾아 까마득히 먼 어느 신전을 향해 떠나는 순례자처럼.
트롬쇠에서 머무는 내내 밤마다 새벽의 빛, 에오스(Eos)를 찾아 헤맸습니다. 밤의 장막을 걷어내고 아침을 불러오는 새벽의 여신 에오스. 로마 신화에서는 아우로라(Aurora)라 불렸고, 캄캄한 밤하늘에 춤추는 빛의 장막을 그녀의 옷깃이라 여겼습니다. 여러 고전에서는 그녀를 ‘룩스 프리마(Lux prima)’, 하루의 처음 빛으로 정의하며, 어둠을 물러내고 아침의 빛을 밝히는 재탄생의 의미를 갖는다고 합니다.
오로라를 처음 만난 것은 살갗을 에는 바람이 몰아치는 얼어붙은 호수 위였습니다. 칠흑같이 검은 산맥 너머에서 너울거리던 신령스러운 녹색 빛은 삽시간에 장막으로 변해 머리 위 밤하늘을 가득 채우고 춤을 추기 시작했습니다. 그 춤이 너무나도 황홀해서, 그만 이대로 저 빛과 함께 하늘 저 편으로 사라져 영원히 춤을 출 수만 있다면 더 이상 바랄 게 없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거기서 눈물을 왈칵 쏟아낼 수밖에 없었던 것은 아마도 그 충격적인 아름다움이 선사하는 절대적인 위로 때문이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