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Dodoseeker Jul 01. 2024

알비노, 아브락사스

이안온 작가의 첫 개인전에 부쳐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세계를 파괴해야 한다.”


이안온의 작업은 헤르만 헤세의 소설 <데미안>에서 막스 데미안이 작중 주인공 에밀 싱클레어에게 보낸 쪽지를 연상하게 한다. 작가의 작업에서 주로 등장하는 연약한 알비노 동물들과 죽어가는 뒤틀린 나무들로 가득한 풍경은, ‘알’이라는 연약한 세계가 주는 위태로운 평화로움이 느껴지는 동시에, 그것을 결국 깨뜨리고 외부 세계로 나아가려는 격렬하고 반항적인 투쟁의 몸부림이 공존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몸을 구성하는 색소의 멜라닌이 결핍된 상태를 말하는 ‘알비노’는, 포식자에게 쉽게 노출되기 때문에 생존에 있어서는 무척 취약한 상태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안온의 작업 속 알비노 동물들은 이 위태로운 정체성을 의연하게 드러내며 등장한다. 이들이 등장하는 무대는 생명이 꺼지고 이파리가 모두 떨어진, 죽은 나무의 숲이다. 난파된 배가 결국 수생물들의 안식처가 되어주듯이, 이 죽은 숲은 부서지기 쉽고 연약한 이들의 끝인 동시에 시작인 장소가 되어준다. 작가가 이런 척박한 무대를 배경으로 하여 스스로를, 그리고 우리를 알비노에 비유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인간은 세상에 태어나는 그 순간부터 자아ego를 외부세계에 투영하는 연습 혹은 투쟁을 평생 지속할 수밖에 없는 존재다. 이 과정 속에서 우리는 필연적으로 심하게 상처받기도 하고, 기약 없는 방황을 지속하게 되기도 한다. 게다가 어떤 관점에서 보면, 우리는 스스로의 의지와는 전혀 관계없이 어느 날 갑자기 세상에 던져진 존재다. 그것도 남의 도움이 없이는 절대로 살아남을 수 없는 나약한 상태로. 어쩌면 작가는 그와 같은 최초의 무력함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방식으로 우리에게 정신적 성장과 삶의 의지에 대한 이야기를 건네는 것이 아닐까? 화면 속에서 켜켜이 쌓여가는 죽은 나무들은 그러한 투쟁의 흔적이자 성장의 허물이요 소산인 것이다. 역설적이게도, 인간은 고통 속에서 행복의 방법을 찾고, 아픔 속에서 타인과 공명하는 법을 배워가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우리는 이안온의 작업에서 비로소 아브락사스Abraxas를 발견할 수 있다.


아브락사스는 선과 악, 빛과 어둠 양극을 동시에 지닌 신이다. 그렇기에 그는 오히려 인간에 가까우며, 우리 개개인이 갖고 있는 자아라고도 할 수 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이 자아라는 ‘알(나무 껍질들)’을 무수히 깨뜨려 나가며 성장하기도 하고, 때로는 패배하거나 지쳐서 알 속에 머물기를 반복한다. 이안온의 작업이 위태로우면서도 평화로운 폭풍전야 혹은, 한바탕 거센 폭풍이 지나간 뒤의 고요를 연상케 하는 것은 이러한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그렇기에 그녀의 작업 속 알비노 동물들은 결코 나약한 존재로는 느껴지지 않는다. 비록 ‘알비노’라는 사전적 정의처럼 포식자의 눈에 쉽게 띄기 때문에 위험에 노출되기 쉽고, 그 때문에 힘없고 나약한 존재라고는 하나, 오히려 그 어떤 색깔도 담아낼 수 있는 백색의 존재들이기에, 우리의 삶이 우리에게 부여하는 그 어떤 이야기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는, 슬프지만 의연하게 이 삶을 납득할 준비가 되어있는 강한 의지를 상상하게 하기 때문이다.


예술가로서 첫번째 개인전을 앞둔 작가의 작업실에서 만난 그녀는 숲 속 알비노들로 하여금, 보는 이들의 거울과도 같은 존재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그 한없이 연약해 보이는 존재들 속에서 가장 단단하고 반짝이는 무언가를 찾아보기를, 그것을 함께 나누어 우리가 마침내 연대하게 되기를, 결국 함께 살아남기를 간절히 발원하는 것이다. 스스로와 당신을 위해서. 


“우리는 우리가 그토록 여러 번 이야기했던 일을 경험하게 될 거야. 세계가 스스로 새로워지려 하고 있어. 죽음의 냄새가 맡아져. 죽음 없이는 어떠한 새로운 탄생도 없으니까.”


끝으로, <데미안> 중 전쟁터에 나가기 직전의 주인공 싱클레어에게 데미안이 전한 문장으로 서문을 맺으려 한다. 이안온 작가가 처음으로 예술가로서 알을 깨고 세상으로 나아가려는 여정을, 어두운 숲을 헤치고 마침내 스스로 새롭게 하려는 세계로 향하는 용기 있는 여정에 여러분께서 기꺼이 함께 해 주시기를 바라며.


2024년, 김선우



이안온작가 전시 정보 - https://www.instagram.com/p/C83tQGQpBMs/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