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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짱 Feb 21. 2023

 "병원에 전화할까요?"

아들의 말말말


 하나가 아닌, 둘을 키운 지 벌써 6개월 차다. 여전히 정신없는 아침을 맞이하고, 매일 예상치 못했던 일에 허둥지둥 거리지만 그래도 다행인 건 6살인 첫째가 점차 동생을 받아들이고 있다는 사실이다. 슬쩍 아기 침대에 가 동생에게 얼굴을 비추기도 했고, 울음소리가 들리면 모빌을 틀어주기도 했다. 투박한 손길로 동생 얼굴을 만질 때면, 살살 만지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이 작은 변화만으로도 고맙고 기특해 몇 번이고 하고픈 말을 꾹꾹 눌러 담았다. 그래서일까. 아니면, 나도 모르게 긴장이 풀렸던 걸까.


 그날도 아들의 등원준비로 여느 때처럼 분주한 아침이었다. 오늘 아침은 시리얼을 먹겠다는 아들의 말에, 둘째의 입에 쪽쪽이를 물려주고 부엌으로 향했다. 둘째가 살짝 칭얼대는 소리가 들렸고, 나는 손으로는 시리얼을 따르며,

 "그래, 엄마 곧 갈게."

라고 외쳤다. 마음이 조급해졌다. 그릇 바깥으로 시리얼이 튕겨져 나갔다. 아들은 그 소리를 들었는지 안방의 아기침대로 달려갔다. 동생에게 딸랑이를 몇 번 흔들어주는가 싶더니 아이의 칭얼대는 소리도 금세 그쳤다. 나는 한숨 돌리며 이곳저곳 떨어진 시리얼을 주어 담았다. 그때였다.


 '쿵' 소리가 나서인지, 둘째의 날카로운 울음소리 때문인지, 반려견 모모찌가 짖어서인지 모르겠다. 나는 반사적으로 안방으로 달려갔다. 6개월밖에 안 된 둘째는 얼굴을 바닥에 박고 울고 있었고, 아들은 그런 동생의 허리를 잡고 어쩔 줄을 몰라했다. 어떡해. 나는 급히 둘째를 안아 올렸다. 한 번도 들어본 적 없었던 날카롭고 강한 울음소리였다. 순간 몸과 이성이 마비가 된 듯했다. 뭐지, 어떻게 된 거지, 어떻게 해야 하지.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고 울고 있는 아이의 등을 토닥이며 방만 빙글빙글 돌았다. 어떡해, 어떡해, 어떡해.


 크게 울던 아이는 생각보다 금방 울음을 그쳤다. 나는 그제야 아기 침대의 난간이 내려져 있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둘째의  빨개진 이마와 입술 위에 난 상처도 눈에 들어왔다. 나는 아들에게,

"어떡해! 어떻게 된 거야?"

라고 소리쳤고, 아들은 잔뜩 겁먹은 얼굴로,

"모르겠어요. 기억이 안 나요."

라고 대답했다. 119를 불러야 하나, 택시 타고 소아과를 가야 하나, 남편부터 불러야 하나 생각하다가 나도 모르게 아들에게 다시 한번 소리쳤다.

"너! 어떻게 할 거야?"


 6살밖에 안 된 아들에게 뭔 잘못이 있다고, 잘못이 있다면 모두 내 탓인데 왜 난 아이에게 그렇게 소리쳤을까. 게다가 어떻게 할 거냐니. 그걸 왜 아들에게 물었던 걸까. 정말 말도 안 되는 질문이었다. 그런데도 아들은 이 못난 엄마에게 울먹이며 이렇게 대답했다.


"병원에 전화할까요?"



 반쯤 정신이 나간 상태에서 둘째를 데리고 병원을 갔고, 72시간 잘 지켜봐야 한다는 선생님 말을 듣고 집으로 돌아왔다. 아침의 소동과는 다르게 평온히 잠든 둘째를 보고 있으려니 그제야 놀랐을 아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몰려왔다. 그리고 차근차근 상황을 정리해 봤다. 아마도 아들은 동생을 달래주고 싶어서, 그래서 엄마를 도와주고 싶어서 칭얼대는 동생을 안으려 했던 것이고 자신의 힘으로 감당 안 되는 무게 탓에 그만 둘째가 손에서 미끄러진 모양이었다. 그런 아이의 속마음도 모르고 다그쳤으니, 이런 못난(더 심한 표현을 쓰고 싶지만..) 엄마가 어디 있나.


아들의 마음을 읽어주고, 아들의 말에 귀 기울이겠다던 나의 다짐이 부끄럽게 느껴졌다. 이들은 부모 의 기분을, 감정을 먹고 자란다. 나의 부정적인 감정은, 그리고 그것을 통해 나오는 말은 결국 아들에게 고스란히 전달된다. 내가 놀랐다고 해서, 내가 무서웠다고 해서 그 감정을 아들에게 전달한 것은 아들에겐 큰 공포였을 것이고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이었을 것이다.


엄마와 아기가 부정적인 정서를 나누게 되면 어떻게 될까요? (...) 엄마가 녹초가 되어 잔뜩 짜증이 난 상태에서 기분을 참지 못해서 아기 앞에서 소리를 지르거나 화를 내고, 기저귀가 젖어서 혹은 잠투정으로 아기가 칭얼대면서 엄마의 손길을 기대하고 있는데 아무런 반응을 해주지 않으면 아기는 바로 스트레스를 경험하게 되고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티졸이 분비됩니다.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티졸은 부정적인 기분과도 관련이 있지만 기억장치인 해마의 기능도 약하게 만들어 기억력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도 있습니다.
                                                                                     -[기분대로 아이를 키우지 않겠습니다] p.50
                                                                                                     


 이 책의 내용대로라면, "스트레스->코티졸 분비->해마 기능 약화->기억력 부정적 영향"인데, 놀랐을 아들에게 나는 스트레스를 더해준 셈이다. 나는 아들의 하원을 기다리며, 내가 잘못한 부분들을 하나씩 정리해 보았다.


1) 아들의 감정을 먼저 헤아려주지 못한 점

2) 나의 부정적인 감정을 아들에게 전달한 점

3) 보호자인 엄마답지 못한 점

4) 아들에게 잘못을 전가한 점



 하원하여 돌아온 아들의 얼굴은 생각보다 괜찮았다. 아니, 괜찮은 척하고 있었다. 동생 어떠냐고, 괜찮냐고 묻는 대신 집에 오자마자 손을 씻고 바로 옷을 갈아입고 입었던 옷을 세탁실에 가져다 놨다. 평소와는 달랐다. 엄마의 눈치를 살피는 아들의 행동에 미안한 생각이 밀려왔다. 나는 아들을 무릎에 앉히고, 대화를 청했다.


"아까 많이 놀랐지?"

내가 묻자 아이는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으로 나를 올려다봤다.

"동생을 돌봐주려던 건데, 또 엄마를 도와주려고 한 건데. 그렇지?"

"응. 그러려고 그런 게 아닌데......"

아들은 눈물을 흘리며 엉엉 울기 시작했다.

"그런 마음도 몰라주고 속상했겠다. 엄마가 미안해. 사실 단우가 아기였을 때도 침대에서 떨어진 적이 있었거든. 그때 119 부르고, 엄마 아빠가 너무 놀랐던 기억이 있어서 아까도 너무 놀랐던 것 같아. 아무리 놀라도 엄마가 그러는 게 아닌데, 미안해. 많이 놀랐지? 다음엔 엄마, 아빠 없이 침대 난간을 내리거나 혼자 동생을 들지 않기! 알겠지?"

아들은 고개를 끄덕이곤 내 품에 꼭 안겼다. 그러더니 도리어 엄마 등을 토닥이며 이렇게 얘기해 줬다.


"괜찮아. 엄마. 그럴 수도 있지. 엄마도 많이 놀랐지?"


 다짐하고 실수하고 또 다짐하고를 반복하는 나날이다. 왜 내 아이 앞에서의 나는 이토록 부족한 것 투성일까. 언제나 그랬듯 아이가 엄마를 키운다. 아들의 말이 엄마를 만든다. 또 실수를 하더라도 다시 한번 다짐해 본다. 내 기분대로, 내 감정대로 아이를 대하지 않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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