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은짱 Mar 15. 2023

"엄마! 탈출해!"


 그날은 특별할 것 없는 보통의 밤이었다. 아들 하원 후 시작된 육아 2라운드도 끝이 보이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나는 이제 막 뒤집기에 성공한 둘째를 안고 자장가를 불러주고 있었고, 아들은 자기 전 읽을 책을 고르고 있었다. 저녁 9시면 늘 그랬듯, 가족 모두 하루를 마무리하고 있었다. 육아를 하다 보면 하루에 크고 작은 이벤트들이 생기기 마련인데 그날은 정말 별 탈, 별일 없는 날이었다. 그런데 왜 그런 생각이 들었던 걸까. 어제도 그랬고, 일주일 전에도 그랬고, 한 달 전에도 그랬는데, 그날 나는 왜 그 순간 그런 말을 꺼냈을까.


 "감옥 같아."

 물론 평소에 그런 생각이 들었던 것은 사실이다. 둘째가 태어난 이후로 홀몸(둘째를 안거나 유모차를 끌거나 첫째 손을 잡지 않은 상태)으로 문 밖에 나선 적이 없기 때문이다. 육아에는 주말이나 공휴일이 없다. 오히려 첫째가 유치원을 가지 않는 주말이 훨씬 더 정신없이 바쁘다. 남편과 아이 둘, 그리고 우리 집 멍멍이와 고양이들을 먹이고 어지러 놓은 것을 쫓아다니며 치우다 보면, 어서 월요일이 오길 절로 바라게 되니 말이다. 그렇다고 이런 상태가 너무 답답하거나 너무 힘들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첫째 때 워낙 심하게 산후우울증을 겪은 탓인지 이번엔 조금 수월하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그런데 문득, 왜 그런 말을 뱉었을까.


 사실 내가 그 말을 입 밖으로 꺼냈는지도 몰랐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애를 낳고 난 뒤에 혼잣말이 늘었다.) 아들이 말을 꺼내기 전까진.


 "엄마 왜?
왜 그런 생각을 했어?"


 흠칫 놀랐다. 쓸데없는 말을 꺼냈구나. 아이가 듣는데 해선 안 되는 말을 꺼냈구나. 당황스러우면서도 한편으론 제법 어른스러워진 아들의 말투가 귀엽게 느껴지기도 했다. 아들에게 내가 자주 묻던 말이었는데, 이번엔 아들이 내게 물어주었다.


 "아니 엄마는...... 동생도 있고 단우도 있고. 마음대로 나갈 수가 없잖아. 집에서 집안일도 해야 하고......"


정확히 뭐라고 아들에게 이야기했는지 기억이 안 난다. 말하면서도 내가 이런 말을 해도 되나, 생각했던 것 같다. 아들이 그 말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생각하던 차에, 아들은 고른 책을 집어 들고 내 곁으로 왔다. 그리고 내 옆에 바짝 와선 가까이 오라며 손짓을 했다. 내가 허리를 숙여 아들 곁으로 갔더니, 아들은 내 귀에 대고 이렇게 속삭였다.


"엄마! 탈출해!"


"응? 탈출하라고?"

 나도 같이 목소리를 낮추고 속삭였다. 그러자 아들은 윙크를 해 보이며 또 이렇게 말하는 것이 아닌가.


"내가 오늘 아빠한테 책 읽어달라고 할 테니까. 엄마는 그때 조용히 탈출해. 그리고 우리가 자주 가는 그 뚝방길있지? 거기로 탈출해! 알았지?"

 아들은 엄지 손가락을 내보였다. 그리곤 아빠의 손을 이끌고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문을 닫으며 다시 내게  뭐라 속삭였지만 제대로 듣지는 못했다. 아마 이렇게 말했겠지. 엄마, 지금이야!


 둘째가 잠든 것 같아 아주 조심히, 아주 사뿐히 아이를 내려놓았다. 성공인가…, 싶었지만 동그랗게 눈을 뜨곤 활짝 웃어 보인다. 망.. 했다. 탈출은 무슨! 이렇게 사랑스러운 너희를 두고 엄마가 어떻게 탈출을 할 수 있겠니.


 이왕 망한 거 에라 모르겠다, 오늘 같이 책이나 읽고 수다나 떨자. 둘째를 아들 옆에 눕히고 나도 남편 옆에 누웠다. 탈출은 실패(?)했지만, 자줏빛 고양이 수면등 아래 넷이 누워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다, 그렇게 평소처럼 하루를 마무리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병원에 전화할까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