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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 ILLUSTRATOR Mar 14. 2024

난 누군가에겐 짐

우울하다기보다 슬픔에 가깝다. 지원했던 대학에 불합격 통지를 받았다. 저번에 이어 두 번째로. 예술가로서 외쿡서 매력지게 살고자 했던 기대가 공허하게 꺼져버리는 걸 맞이하는 두 번째 타이밍이다. 처음엔 다음을 기대하는 마음에 충격이 덜 했는데 이번엔 여파가 남는다. 하도 실패한 게 많아서 이쯤에선 하늘이 나를 도우리라 믿고 있었다. 얼마나 더 실패해야 아주 작은 성공을 맛볼 수 있는 걸까? 아님 나도 알아챠지 못하는 사이 난 이미 남들이 쉽게 가지지 못하는 걸 가졌기에 다른 성공의 기회가 쉽게 오지 않는 걸까? 이 부분에 대해선, 우리 엄마가 듣고 그야말로 코웃음을 치다가 박장대소하며 실소할만한 씬이다. 내 인생 스토리가 어땠는지 잘 아니까.


그렇다. 난 이번에도 실패했고 이제 또 얼마나 더 실패할 건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성공이란 건 정말 남의 일에 불과한 건지도 모르겠다는 불길한 생각이 번뜩 들 때마다 머리를 흔들며 “취소, 퉤 퉤 퉤”를 한다.


오늘 왕자는 나의 불합격 통지소식을 듣고 대놓고 물었다.

그래, 너의 앞으로의 계획이 이제 무어냐고. What? 지금 나한테 이걸 묻는다고? 그는 정말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지 않는 냉혈인간이든가 아님 내게 그만한 정 따위도 없는 건가. 그의 물음에 대한 답을 피하지 않고 싶어서 당황스러움을 재빨리 누르고 이성을 찾아 차분하게 말하려는데 뚝뚝 흐르는 눈물은 제어가 안되었다. 나도 아주 예전부터 지금도 항상 매 순간 생각하고 있는 질문이다. 이제 어떻게 살 것인가. 사실 이번에 여기 있어야 할 큰 명분을 상실한 거나 마찬가지다. 그 누가 내게 여기 왜 와 있냐고 묻는다면 확실하게 답할 수 있는 명분말이다. 이건 내 가족도 여전히 궁금점으로 남은 부분이다. ‘넌 왜 거기서 살고 싶으며 가서 뭐 할 건데?’


뚜렷한 계획을 당장 내놓으라 하면 없다고 왕자에게 말했다. 하지만 난 대학에 지원하려고 두 달 동안 포트폴리오를 미친 듯이 만들었고 이곳에 와서도 매일같이 뭔가 하겠다고 노력하고 있다고, 너 아침에 일가면 나 혼자 멍하니 가만히 앉아 너 오기만을 멍청하게 기다리고 있지만은 않았다고 말했다. 내가 안타깝다는 그 말이 온전히 그 의미로 안 들려서 난 그의 얼굴을 살피다가 결국 이 말을 했다.  날 위해 무언가 하려 하지 말라고. 날 도우려 하지 말라고. 어차피 이건 내 문제니 난 괜찮은데 혹시 내 존재 자체가 네게 부담이 되면 그건 분명한 문제가 될 거라고. 날 짐으로 여기지 말라고.

좀 쉽게 생각하자, 내가 적당한 시일 내에 적절한 일을 구하지 못하면 나 한국으로 돌아가겠다고 말이다.


말도 안 되는 소리라하며 부정할 줄 알았는데 오히려 고개를 끄덕이는 그를 보며 눈치 없이 눈물 한 방울이 죽 흘러내려 창피했다. 이 말에 독기가 나와야지 주책없이 웬 눈물!  그리고 우린 결국 나이가 들었음에 이 사실이 예전같이 못하는 스스로가 되었음을 인정하며 씁쓸하게 대화를 마쳤다. 우울감을 안고 사는 각자라 우린 서로 이런 부분에 대해서 잘 알기에 나도 어느샌가 내가 그에게 부담이 될 거라는 생각을 죽 하고 있었고 그 또한 그걸 알고 있었기에 내가 본인에게 짐이라는 말에 굳이 아니라고 부정하지 않았다. 그게 사실이니까. 그도 ‘정말’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는 게 당연한 줄 알면서도 약간은 서운하다.


자자, 다시 하루를 시작하자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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