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2003년 11월 29일 서울 관악구의 한 공사 현장에서 숨졌다. 사인은 추락사다.
아들은 2023년 7월 3일 전남 영암군 한 선박제조 공장에서 숨졌다. 사인은 추락사다.
아들은 안전모 없이 혼자 작업했다. 주변엔 안전 시설물이 설치돼 있지 않았다. 20년이 흐르는 동안에도 우리나라는 후진국형 산재와 이별하지 못했다.
일제의 강제동원에 팔 하나를 잃은 아버지와 6.25에 다리를 잃은 아들은 서로에게 의지하며 희망을 이어갔다.
평화와 번영을 어느정도 이룩한 21세기의 대한민국에선 노동자 부자가 나란히 추락했다.
한편, 업계는 중대재해법이 과도하다고 보도자료를 냈다. 쌍팔년도보다 희망이 없다.
사망자 앞으로 독촉장이 날아왔다. 4대보험 체납금 1억 2천여만 원이 밀려있다는 것이다.
법인이 내야할 돈이 노동자에게 전가된 까닭은 구조적인 문제로 추정된다. 하청에 하청이 줄을 잇는 조선업계 특성상, 한 업체에서 사고가 발생하면 폐업한 뒤 명의를 빌려 새롭게 영업하는 수법이 존재한다. 이른바 '깜깜이 폐업'이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사망자가 죽기 전엔 또 다른 부상자나 사망자가 있었다는 뜻이다. 수난은 또 누군가를 향하고 있을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