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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주현 Feb 04. 2024

선거제만 생각하면 우울해져요

2024년 1월 2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부산 방문 도중 흉기에 목이 찔렸다.

2024년 1월 26일, 배현진 국민의힘 의원이 서울 도심 건물에서 나오던 중 돌멩이로 머리를 가격 당했다.     

불과 한 달 사이 일어난 사건들이다.




정치인에 대한 증오 범죄는 잊을만하면 터져 나왔다. 그럼에도 이 두 사건을 중요하게 여겨보아야 하는 이유는 주기가 너무 짧다는 데 있다. 그것도 서로 다른 당에 속한 각 인물들에게 번갈아 일어났다.

   

정치 혐오가 극에 달했다는 진단이 나온다. 근본적인 원인은 ‘양당제의 고착’에 있다.


우리 정치의 거대양당은 각자의 매력을 어필하기보다 상대방의 실책에 더 많이 기댄다. 어차피 선택지가 두 개뿐이기 때문이다. 성과 내긴 어렵고 비난은 쉬우니 정치권은 개혁가보다 나팔수가 더 대접받는다. 상대방은 악마가 되고 자성의 목소리는 내부총질이 돼버린다.


두 쪽으로 갈라진 사회는 그 오래된 긴장을 참지 못하고 상대방에게 ‘폭력적 결단’을 강요해버리고 만다.

   

그리하여 선거제 개편에 대한 목소리가 커졌다. 실제로 작년엔 유의미한 움직임들이 있었고 역사적인 사건들도 있었다.




2023년 1월 2일, 윤석열 대통령이 ‘중대선거구제’를 언급하며 “전부 아니면 전무로 가는 진영 양극화” 해소를 위해 선거제 개혁에 운을 띄웠다. 김진표 국회의장이 이에 화답하며 정치개혁특별위원회(정개특위)에 선거제 개혁안을 주문했다.

2023년 1월 30일, “승자독식 선거제”를 개혁하자며 현역의원 120여 명이 참여한 ‘초당적 정치개혁 의원모임’이 공식 출범했다. 2001년 ‘화해와 전진’ 포럼 이후 22년 만에 일어난 일이었다.

2023년 3월 30일, 정개특위에서 만들어온 개편안을 확정하기 위해 ‘국회의원전원회의’(국회전원위)가 열렸다. 이 역시 2003년 ‘이라크 파병 연장한 찬반 논의’ 이후 20년 만이다.


1987년부터 이어진 선거제도에 개혁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대의를 가진 의원들도 역사에 남을만한 모임과 협의를 기록하고 있었다.


그러나 국회전원위에서 나흘 간의 난상토론을 거치고도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200여명으로 시작한 토론은 마지막날 60여명으로 쪼그라들었으며 각자의 수지타산만이 난무해 시장통을 연상케 했다. 흥정이라도 하면 모를까, 양보와 타협이 없던 개혁안은 초고차방정식이 되어 직관으로는 더 이상 풀 수 없게 꼬여버렸다. 그 사이 당시 선거법 개정 시한인 2023년 4월 10일이 지나버리고 말았다.



보다 못한 시민들이 나섰다.


정개특위의 주최로 5월 6일, ‘선거제 개편을 위한 국민 공론화’가 실시 되었다. 무려 11억 원이 소요된 프로젝트는 500여 명의 시민들이 발제와 토론을 거쳐 숙의 민주주의를 실천토록 했다.


결과는 ‘소선거구제 유지·비례제 확대’로 요약되었다.


국회전원위의 토론 결과와 시민들의 숙의안이 마련됐음에도 이를 처리하기 위한 정개특위 소위원회 구성이 공전 끝에 무산되었다. 김진표 의장이 양당에 협의체 구성을 주문했음에도 여야는 지지부진했다.


매우 뒤늦게 2023년 7월 3일, 양당이 합의한 2+2협의체가 발족했다. 여야의 원내수석부대표와 정개특위 간사들 총 4명이 참여하는 기구다. 쉽게 말하면 ‘자기들끼리 처리하겠다’는 뜻이다. 20여년 만의 초당적 개혁논의와 혈세를 들인 시민들의 소중한 여론이 밀실 속으로 빨려들어가고 말았다.




이후 큰 논의는 없었다. 간혹 정개특위 관계자를 통해 “병립제 회귀”라는 말이 간간히 들려왔을 뿐이다.


17대 국회 이후 선거구 획정일은 선거일로부터 평균 42일 전이라는 통계가 있다. 22대 총선이 2024년 4월 10일이라는 점으로 미루어보면 선거제 개편은 늦어도 2월 말에는 확정되어야한다.


2024년 2월 현재, 국민의힘은 다시 위성정당을 꺼냈다. 당명은 ‘국민의 미래’다. 더불어민주당은 잡음이 심하다. 당초 이재명이 20대 대통령 선거 당시 ‘연동형 비례제’를 약속했지만 ‘준연동형 유지’ 혹은 ‘병립제’로 기울었다는 관측 때문이다. 현재로선 ‘권역별 병립 비례제’로 가닥이 잡히고 있다.




정치는 정답을 찾는 것이 아니라 합의하는 과정이다. 당연히 선거제도도 정답은 없다. 그러나 우리 사회가 당면한 증오의 정치를 끊어내는 해답은 분명하다. 양당 구도를 깨는 것이다.


이에 대한 구체적인 장치들은 1) 의원 정수 확대 2) 비례대표 의석수 확대 3) 연동형 비례제 등으로 꼽힌다. 물론 ‘중대선거구제’나 ‘권역별 비례제’ 등 또 다른 관점의 해법들이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다. 

민의를 반영할 수 있는 선택지를 넓히고 사표를 줄일 수 있다면 어떤 것도 방법이다.


그러나 오답은 분명하다. 준연동형 비례제는 위성정당으로 무력화된 것을 목격했고 병립제 회귀 역시 양당에 유리할 뿐이라는 것을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이재명은 “멋지게 지면 무슨 소용인가”라는 명언을 남겼다. 공약조차 쉽게 뒤집을 수 있는 까닭은 선거가 생사를 가르는 전쟁이 되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본인의 목숨이 위태로운 지경까지 치달았음에도 여전히 그 근본 원인을 통찰하지 못하는 모순을 보노라면 ‘피 튀기는’ 전쟁에 의해 이성이 마비된 것만 같다.


이대로 가면 청년 정치인들의 지적대로 21대 국회는 "꼼수로 시작해 야합으로 마무리"으로 기록될 전망이다.


선거제 개혁이 더욱 절실해지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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