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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리사자 Jun 13. 2023

뭐가 이렇게 잡다하게 떠오르지

카테고리가 뒤엉킨 상념

on Friday 1JUN12

Portomalin To Palas de Rei


나는 왜 이곳에 왔을까. 하나님을 떠올리고도 싶었고, 가족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무거운 마음을 버리고도 싶었고, 단순하게 의미 있는 유럽여행을 하고 싶었다. 와서 걷고 보니 주책스럽게 자주 눈물이 난다. 내가 얼마나 사랑받고 있는지, 내가 얼마나 나약한지를 느낄 때 하염없이 눈물이 났다.


동네개들을 만날 때나 하물며 풀을 뜯는 소가 바로 내 옆을 지날 때, 말이 내 가방에 묶어둔 체리를 탐내어 다가왔을 때조차도 큰 두려움을 느꼈다. 내게 세상은 무서운 것으로 가득한 곳이었다. 내가 가진 책임이라는 것이 크고 무거운 것이 아니라 내가 한없이 나약하고 쉽게 두려워하는 사람임을 알게 되었다. 그 사실이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나를 인정하고 나를 감싸줘야겠다라는 '자기애’가 생겼다.


걷고 있는 동안 힘이 들기 시작하면 가장 먼저 신호를 보내는 곳이 있다. 왼쪽 발목 - 왼쪽 무릎 - 허리.


왼쪽 발목과 무릎을 보호하기 위해서 무의식적으로 오른쪽 다리에 힘을 더 배분한다. 의식적으로 왼쪽 다리를 계속해서 살핀다. 감정도 그렇게 살펴야 한다. 몸을 돌보듯이 내게 약한 감정을 보듬어 살펴줘야 한다. 난 이 나이가 되도록 뭘 한 것일까, 왜 아직도 이렇게 나약하냐며 나를 채근하지 말고 보듬어 살펴줘야겠다는 생각을 자주 했다.  감사하게도 내 발, 내 무릎은 무사하다.



on Wednesday 6 JUNI2


피니스테레에서 빠에야를 주문했지만, 서울의 지희씨가 만들어준 빠에야가 10배는 더 맛있다고 생각했다.


풍경을 바라보며 이 생각 저 생각을 했다. 곧 여행이 끝이 나서일까… 서울에서의  생활이 생각났다.


산티아고를 걷는 동안 나는 알베르게에서 유일한 나의 공간인 침대에서 잠을 자고 좁은 샤워시설에서 온종일 흘린 땀을 씻었다. 비누 하나로 몸을 씻고 머리를 감았다. 드라이어를 사용하지 않고 수건으로 말리고 그냥 마를 때까지 내버려 두었다. 하루에 물 한 병과 커피 한 잔, 맥주 한 잔, 식사 그리고 간단한 저녁을 먹었다. 하지만 생각보다 풍성한 먹거리였다. 기본적으로 필요한 것을 사고 먹었다. 허세와 낭비가 없는 기분 좋은 소비였다.


바다를 보며 멍을 때리고 있는데 근처에 사발에 와인을 마시는 어르신들이 출몰하셨다. 산티아고를 걷는 동안에도 사발에 와인을 마시는 동네 어르신들이 자꾸 같이 한잔하자는 것을 동네 청년이 도와준 일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이 바닷가 어르신들도 나에게 와서 같이 한잔하자며 손짓을 하셨다. 이곳에도 술에 취한 심심한 어른들이 있었다.


사람사는 세상은 비슷하다. 사람들의 성격도, 벌어지는 일들도. 그러나 문제는 무엇이 common 한가이다. 가장 대답하기 쉬운 것이 It depends on people인데... 이것은 너무 당연한 말이고 그 사회에서 common한 것이 어느 부류의 정서인지, 어떤 상식, 사고가 common 한 것인지가 중요하다.


나는 어떤 정서와 어느 정도의 성숙한 인격을 가지고 있을까. 서양에 오면 동양인다운 외모 탓인지 모르겠지만 한참을 어린애 취급을 받는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외모가 아니라 아마 내 행동에 childish한 것이 있지는 않을까.


여행하면서 좋은 한국 사람들을 만났다. 생각도 바르고 사람을 생각하고 배려하는 마음이 눈에 띄었다. 우리 사회도 좀 더 남을 배려하며 살아가는 세상으로 변할 수 있다고 느껴지면서 기분이 자주 좋아졌었다.


사람들이 성숙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주변에 돈을 벌어 자립하며 사는 많은 ‘어른이들’이 우리의 모습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어쩌면 이것이 우리의 현재의 모습일지도 모르겠다. 경제적으로 자립하고 있다는 이유로 독립적이고 성숙했을 거라는 덤을 스스로 얹어주고 있지는 않은지.



나는 남의 얘기에 흥분하며 분개하는 사람을 좋아한다. 자기 일이야 누가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들 표현하고 본인에게 이롭게 합리화시키지만 남의 일은 쉽게 공감하고 함께 분노해주기가 쉽지 않다. 그리고 순수한 사람들을 좋아한다.


산티아고에 도착한 날 밤, 밀로와 나탈리아 그리고 알렉산드로와 늦은 밤까지 이야기를 나눴다. 밀로가 너는 산티아고 길을 걸으면서 눈물을 흘린 적이 있냐고 물었다.


Milo는 산티아고 길에서 스페인 여인을 만나 사랑을 하게 된 친구 Alessandro가 행복해 보여서 진심으로 기뻤다고 했다. 서로 각자의 나라에서 직업을 가지고 있는 터라 현실적인 문제에 부딪힌 친구가 안타까워 눈물이 났다고 했다. 이탈리아도 남자는 울면 안 된다는 정서가 있는데 오랜만에 사랑을 하게 된 그리고 곧 이별하게 될 친구가 안타까워 30이 가까이 된 이탈리안 남자가 눈물을 흘리게 된 이야기를 들었다. 모두가 여정의 끝이라 더 감정적이 되어 대화는 이어지다가 곧 이별을 앞둔 연인이 ‘지금 우리가 꼭 다 같이 있어야겠니?’ 라며 눈치를 주어 술자리는 끝이 났다.



숙소로 돌아가면서 나는 서울에 있는 내 친구들과의 대화를 떠올려보았다. 어느 때부터인가 우리는 감정에 관해 얘기를 나누지 않았다. 누군가가 감정에 관해 얘기할라치면 어느새 촌스럽거나 순진한 것으로 치부해버렸던 거 같다.그러면서 우리는 위로받지 못해 밤마다 소주를 마신다. 오히려 감정은 제어당하고 소통은 서툴러진 우리가 되어가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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