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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리사자 Aug 20. 2021

평범한 여행자들의 온기

여행에서 만난 나와 같은 보통의 사람들

여행에서 만난 나와 같은 보통의 사람

오우와 나는 산티아고 가기 전에 한식이 먹고 싶어서 머문 민박이라 다른 별 계획이 없었다. 그래도 온종일 민박에 있기에는 스페인 날씨가 너무 좋아서 톨레도를 가기로 했다.


어제 막 도착한 내 또래의 남자 3명도 톨레도에 갈 채비를 하고 거실에 모이고 있었다.  스페인 교통이 아직 익숙하지 않다며 우리의 채비를 기다렸다가 함께 가자고 했다.


기차를 타고 가는 동안 5명의 한국인은 별다른 말 없이 각자 창밖 풍경을 감상했다. 플랫폼에 내려서 개찰구를 통과하는데 그들이 할 말이 있는 듯 나를 툭 쳤다.   


남자 1 : 저기… 그 가방…  속이 다 보이는데요.

나       : 그렇죠.


남자 2 : 소매치기당하기 딱 좋은 가방이네요

나       : 그래서 당했어요.


남자 3 : 가방을 앞으로 하시는 건 어때요?

나       : 중요한 지갑은 크로스로 메서 괜찮아요.


세명이 말하는 스타일이 모두 달랐다.

소극적으로 걱정해주는 사람, 위트를 가미해서 지적해주는 사람, 적극 제안해주는 사람.


(나는 엉덩이까지 내려오는 입구가 열린 에코가방을 메고 다녔다.)


같은 장소에서 일일투어를 하는 다섯 명은 가끔 마주쳐도 서로 말을 섞지 않았다.


저녁에 빨래를 걷으러 민박 마당에 나갔을 때 그들은 팩소주를 마시고 있었다. 오랜만에 보는 소주였다. 팩소주 넉넉히 가져왔냐고 했더니 인심 좋게 합석해도 좋다고 했다. 소소한 대화가 이어졌고 또래들끼리 통하는 얘기가 많았다.


매일 빨래를 했다


그다음 날 산티아고를 위해 떠날 때는 걷는 거 그만두고 남은 여행을 함께 하자고 농을 부렸다.




선아 씨는 투우를 보고 싶다며 함께 보러 갈 사람을 물색하고 있었다. 민박에 머물고 있던 모든 사람을 설득했으나 지원자가 없어 결국 혼자 보러 가기로 했다. 우리는 장터에 가서 옛날 물건들을 실컷 보고, 동네 깡패들한테 욕도 먹고, 몸빼도 사서 돌아왔다.


늦게 돌아온 선아 씨가 새 청재킷을 입고 있었다. 자신도 그 장터에 가서 청재킷을 샀다고 했다. 그 청재킷은 그녀에게 아주 잘 어울렸고 본인도 만족감이 커 보였다.


“이거 얼마 게~~ 요?”


음... 그 장터에서 몸빼를 산 나는 대략 값을 예상할 수가 있었다.


“5유로쯤?!”


“언니들, 이거 정말 싸 보이죠? 저 돈 없는 티 너무 내고 다는 거 같죠?”


결국 언니들, ‘이거 입으실래요?’로 얘기가 끝났다.

보르도에서 유기농법을 배우고 있는 선아 씨는 서로 연락처를 주고받을 때 '농부 최선아’로 적어주었다.


산티아고를 걸으면서 메모를 하고 싶어 선아 씨에게 볼펜 하나를 얻기로 했다. 선아 씨는 볼펜과 입을 맞추고 나에게 주었다. 보르도에서 배움이 끝나면 돌아와 다시 여행비를 모아 호주에 가서 또 배우고 그다음에 와서 농사를 지을 거라고 했다. 유쾌한 사람이었다. 나는 그녀의 으뜸고객이 될 거라고 약속했다.


기차에서 나눠주는 공짜 이어폰(내 것)을 자기 것인 줄 알고 가져갔다며 여행 내내 음악을 듣지 못할까 봐 걱정을 산더미처럼 한 선아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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