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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스 플레이스 Nov 24. 2022

조선 인테리어의 유행

미니멀리즘 시리즈 3_이국적인 듯 이국 아닌 한국 인테리어


한국적인 인테리어가 엄청난 유행의 바람을 타고 처음 만나는 호황기를 겪고 있다.

나 역시 어릴 적부터 한국적인 미에 빠져있었으니 더없이 즐거운 작업이 될 터였다.

그런데 실제로 현장에서 만난 한국적인 인테리어를 원하는 이들의 요구가 

뭔가, 이상하다.



백자. 사진출처 핀터레스트


한국적 인테리어, 맞아?


미니멀이 추구하는 것은 동양적 철학과 밀접하게 닿아있다.

비움, 본질, 여백. 우리나라의 전통 인테리어를 들여다 보아도 이것들이 모두 있다.

한국적인 미를 품은 한옥, 기와집을 예로 들어보자.

집을 둘러싸고 있는 담장 사이의 대문을 열면 집의 정면이 한눈에 들어온다. 모래 바닥에서 한 두 계단 높인 돌바닥 위의 주춧돌 위에 목재로 몸채를 짓고 그 위에 기와를 얹어 처마를 길게 들처낸 입면을 바라보며 마당을 질러 디딤돌을 밟고 툇마루에 올라서면 창문이 난 가운데 공간이 있고 그 좌우로 방이 있다. 오늘날로 치면 거실을 가운데 두고 방이 좌우에 배치되어 있는 모양이다. 위를 올려다보면 보와 서까래가 억지로 깎아서 펴지 않은 나무 그대로의 자태로 담백하게 자리한다. 

문양이 짜여진 문살에 창호지가 발라져 있는 미닫이 문을 열면 방으로 들어간다. 방에는 마당 쪽을 향한 여닫이 창이나 들창이 달려있고 넓은 창을 통해 마당과 자연을 바라볼 수 있다. 문과 마주 보는 자리에는 수묵화가 그려진 병풍이 서 있고 그 옆으로는 작은 서랍장이 있다. 병풍들 등지고 보료 위에 앉으면 작은 좌식 책상을 마주한다.

어떤가. 사극에서 본 그대로인가. 이건 조선 인테리어다.


남산한옥마을. 사진출처 답사여행의 길잡이 15 - 서울


이 중 우리 집 인테리어에 어떤 부분을 가져다 쓰고 싶은가. 살무늬가 들어간 창호와 문? 해가 잘 들어오지 않는 어두컴컴한 부엌? 넓은 거실을 포기한 마당처럼 넓은 발코니? 의자보다는 좌식?

해당 사항이 없다.

원하는 건 포세린 타일 바닥과 몰딩 없는 벽과 천장, 무채톤의 마감, 세로로 시원하게 쭉 뻗은 간살 디자인의 우드 슬라이드 도어.  간결하게 살린 디자인 공간이다. 이건 미니멀 더하기 젠스타일이다.

대한민국과 조선은 생활상도 이념도 체제도 전혀 다른 국가다. 조선은 한국인가. 그렇다면 조선은 고려인가. 

지금 유행하고 있는 '한국적 인테리어'는 한민족의 역사 중 조선시대의 공간미를 지칭하는 '조선 인테리어'라 봐야 할 것이다.



조선 스타일, 미니멀과의 컬래버레이션


매력적이긴 하나 아무래도 조선식 인테리어를 집으로 들이기는 쉽지가 않다. 물론 한옥이 너무 좋아 한옥에 사는 사람도 있지만 일반적으로 아파트 안에 한옥을 들여오기란 아무래도 부담스럽다. 진짜 조선적인 인테리어는 미니멀에 가까우면서도 뭔가 다르기 때문이다. 문이나 창호, 벽, 천장 같이 면적이 넓은 부분에 젠 스타일 인테리어는 쉽게 허용할 수 있지만 조선의 인테리어 요소인 복잡한 문양의 문살 모양과 서까래를 사용하기는 좀 헤비한 느낌이다. 


미니멀과 젠 스타일이 한 카테고리 안에 묶여질 수 있는 이유 중 하나는 형태가 자유롭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자로 젠 듯 정확한 직선과 곡선의 간격으로 이루어지는 일본 특유의 기하학적 정갈함은 미니멀과 섞이기 편하다.

최근 한국적인 인테리어를 콘셉트로 시공했다며 문을 연 카페에 가보면 젠스타일로 시공을 해놓은 경우를 볼 수 있다. 젠스타일과 조선스타일은 어떤 면에서 정 반대의 스타일인데 말이다. 조선의 공간을 보면 일본처럼 자로 젠 듯 딱 떨어지는 느낌보다는 내추럴에 가깝다. 자연을 컨트롤한다기보다 자연이 그러면 그런대로 함께 묻어가는 느낌이다. 


때문에 집에 한옥적인 인테리어 할 때에는 전체보다는 부분적인 아이템으로 활용해서 공간에 들이면 미니멀인 듯 조선인 듯 그렇게 컬래버레이션이 가능해진다. 소반, 도자기, 방석을 오브제처럼 사용하거나 커피 테이블이나 의자에 조선 스타일을 활용하면  꽤나 유니크해져서 비슷비슷한 미니멀 인테리어에 색다른 즐거움을 불어넣을 수 있다.



(좌)미니멀한 내부공간에 기와디자인을 접목한 ㅁ자 주택.사진출처 핀터레스트 (우)소반.사진출처 e뮤지엄




이국적인 조선 스타일


사극에서 하도 봐서 익숙할 뿐 지난 시간 동안 우리는 가까운 궁에도 가본 기억이 거의 없고 갔어도 대충 훑고 나오지 유럽 여행을 간 것처럼 열심히 뜯어보지 않았다. 그러다 코로나 시국으로 국내 여행이 잦아지다 보니 관심이 생기고 들여다보고 머무르며 느끼게 된 것이다. 한옥의 고즈넉함, 소박함, 자연스러움, 제어되지 않았지만 모든 것이 편안한 그 느낌을 알게 된 것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한옥을 사랑하지만 본인 집에 시공하려는 사람은 생각보다 거의 없다. 하지만 상업 인테리어에서는 얘기가 다르다. 한옥에 대한 니즈와 수요는 분명히 있다. 그런데 우리 집은 싫다. 그래서 나가서 즐긴다. 때문에  한옥 호텔과 카페들이 성행하는 것이다. 가끔씩 나가서 즐기고 돌아오기에 한옥은 유럽만큼이나 우리들에게 이국적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우리에게 한옥은, 이상하지만 이국적이다.



사진출처. 핀터레스트


조선 스타일 플렉스_상업 공간으로써의 한옥


코로나로 인해 하늘길이 막히자 여행에 대한 끓어 넘치는 욕구는 국내로 쏟아졌고 한류 콘텐츠의 세계적인 인기로 외국인의 관심까지 더해지면서 한옥 스테이, 한옥 카페의 인기는 식을 줄을 모르고 있다. 아마 조선 사랑이 이렇게 지대해진 것은 한민족 역사 이래 처음이지 싶다.

따라서 앞으로도 한동안 한옥의 요소를 갖추었거나 한옥 디자인으로 만들어진 상업 공간은 꽤 사랑받을 것 같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최근 20여 년 동안 집 인테리어를 할 때 원하는 변치 않는 요소가 하나 있다. 바로 '카페 같은' 집이다. 그것은 카페라는 공간에 대한 니즈가 끊임없이 발생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아무리 집을 카페처럼 해 놓아도 결국 카페에 대한 욕구는 카페에 가야만 채워진다. 마찬가지로 한옥에 대한 좋은 느낌을 아무리 집에 들인다고 해도 디딤돌, 마당, 흙벽, 나무기둥, 한지의 느낌까지 전체를 느낄 수 없으니 기꺼이 나가서 만끽하길 원할 것이다. 아예 그 시대에 지어진 한옥에 들어가 몇 시간이든 며칠이든 공간을 즐기는 것이 더욱 제대로 맛을 보는 방법인 것이다.


미니멀이 대세인 요즘이지만 맥시멀 디자인이 환영받는 곳이 있다.  바로 궁중 인테리어다. 한국의 전통공간에도 절제미, 소박함이라는 덕목이 존재한다. 그러나 근대 이전 어느 시대든 그건 백성의 문화에 존재했다. 귀족이나 왕족에게도 그러한 덕목은 존재하나 그들 계층에 따른 약간의 차별이 있을 뿐 건축과 복식 모두 격조를 위한 화려함을 베이스로 하고 있다. 그렇게 품격 있으면서 화려한 공간 장식은 권력을 표현하는데 필요한 방식으로 발전했다. 그렇기에 조선의 궁중 스타일은 조선시대 공간적 플렉스를 즐기기에 딱이다. 서울의 조선팰리스 호텔이나 인천의 경원재 앰배서더 호텔, 혹은 고급 한식 전문점의 인테리어가 그 예다. 미니멀이 환영받는 시대이지만 특별한 경험을 위해서는 화려한 맥시멀도 충분히 허용된다. 조선시대 전통 인테리어에 현대의 기술이 접목된 럭셔리한 조선의 공간에서 대접받으며 공간을 누리는 즐거움은 조선시대 왕도 부럽지 않을 것이다.

(좌)구불구불한 나무를 그대로 살린 천장과 벽 디자인의 한옥 카페. 사진출처 핀터레스트 (우) 한옥호텔 경원재. 사진출처 경원재 앰배서더 홈페이지



'우리 것'의 정체성과 컬래버레이션


한국에서 조선의 공간 디자인이 이렇게 큰 관심을 받은 적이 없고 외국에까지 알려져 사랑받은 적도 없다. 이렇게 관심이 살아있을 때 더 잘 들여다보고 제대로 느낄 필요가 있어 보인다.

가까운 일본은 그들의 전통 공간 디자인을 현대에도 담아 계승하는 부분이 많다. 보신전쟁과 태평양전쟁 등 근대화 과정을 겪으며 소실된 건축문화가 많긴 하지만 그들 안에서의 전통문화 계승은 꽤나 잘 이어져오고 있다. 반면 우리는 많은 역사적 외침으로 조선시대 이전 사료가 많이 소실되어 전해지는 것이 많지 않아 대중에게는 알려진 것이 거의 없다. 그나마 지금 남아있는 조선시대의 사료도 한국전쟁에서 살아남은 것만이 전해진 것이다. 그러했음에도 조선의 사료가 가장 많이 보존되고 있고 시간적으로도 가깝다 보니 우리에게 전통문화란 거의 조선으로 일축되는 경향이 있다

유럽에는 시대에 따라 로코코, 고딕, 바로크 등 여러 스타일이 남아 있듯이 우리도 고려, 가야, 통일신라, 백제 스타일을 알 수 있다면 얼마나 풍요로울까. 조선 스타일을 굉장히 좋아하는 1인이지만  이전 시대의 복식과 생활상에 대한 궁금증과 갈증도  크고 아쉽다. 사료가 이어져왔더라면 우리의 전통문화에 대  많은 공간적문화적 혜택을 누릴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조선시대 이전, 여왕이 존재했고 세계적인 무역과 교류를 했던 그때의 사료들이 조선시대의 반만큼이라도 전해졌었더라면 고려 스타일통일신라 스타일이 유행할 수도 있었을 텐데 말이다.

디자인 역사를 들여다보면 여러 요소들이 섞이고 변화하면서 때로는 버려지고 거두어지면서 끊임없는 융합으로 몸집을 불리며 그 형태를 변화시켜왔다. 한국의 전통 인테리어가 일시적인 소비로 끝나지 않는다면 현대의 공간에 스며들어 또 다른 어떤 모습으로 변화할 수도 있다. 궁중 복식의 문양에서 아이디어를 가져온 소파, 가마솥의 이미지를 차용한 가습기, 단청을 그대로 빼온듯한 펜던트 조명.. 뿐이겠는가. 상상만 해도 끝이 없다.






우리는 그간 전통 가옥이라는 것을 체험하고 느껴볼 기회가 많지 않았다물론 코로나 이전부터 한국 전통문화에 대한 관심이 일고 있긴 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코로나라는 시련의 시간이 우리의 전통 공간을 더욱 자세히 들여다볼 기회가 되었다

그리고 TV에서만 보던 사람을 실제 만난 것처럼 친숙하지만 낯설은, 색다른 매력을 느낀 것 같다.


자연을 받아들이는 공간에 대한 철학과 지혜가 담긴 단아하고 우아한 조선 인테리어의 매력이 단순히 유행에 휩쓸린 소비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지금과 미래의 공간 디자인에도 한옥의 철학이 담겨 계속 이어지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다음 편에서는 인테리어 요소 중 아이콘이 된 [문(門)의 메커니즘]에 대해 얘기하고자 한다.




읽는 분들께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by J's Pla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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