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쌓은 경험도, 쓰임이 없는 사람도 없다.
제안 받았던 한 스타트업의 면접을 봤다.
거리가 좀 있어서 늦을까봐 많이 일찍 나왔는데도 변수가 많아 20분 전에 겨우 도착했다.
보통 한시간 정도 넉넉하게 가서 주변 카페에 앉아서 좀 더 준비하고 가려고 했는데,
초행길이고 20분 밖에 남지 않았다는 생각이 좀 더 나를 긴장되게 했다.
면접 본 기업은 국내 Top5 대기업의 스핀오프 스타트업으로, 스핀오프 스타트업 중에서도 수상 이력이 꽤나 있었다. 다행히 해당 기업의 면접관 분들이 편하게 이야기 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만들어 주셨다.
여러가지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지금 생각해보면) 쓸떼 없는 생각이 들었다.
해당 기업에서 일관성있게 말했던 건 "여러가지 일을 동시다발적으로 할 수 있는 사람" 이었고,
나는 "한가지 일에 전문성이 있는 사람"으로 커리어 리빌딩(Re Building)을 하고 싶었다.
분위기를 너무 편하게 만들어 주셔서인지, 나는 갑자기 쓸데 없는 이야기를 툭 꺼냈다.
"제가 한 분야만 깊게 드릴다운한 게 아니고, 여러 가지 업무를 해봐서 일관성 없이 커리어를 쌓아서 좀 후회하고 있습니다"
가만히 듣고 계시던 대표님이, 갸우뚱 하는 표정으로 말씀하셨다.
"일반적인 대기업은 그렇죠. 제가 있던 곳도 그 일만 할 줄 알지, 그 밖에 일을 하기는 어려워요. 근데, 저희는 여러가지 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해요. 그래서 00님께 제안드린 거고, 저희한테는 00님 같은 사람이 필요하죠. 저는 00님이 커리어를 잘못 쌓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맞다. 내 장점은 많은 실패와 많은 경험인데, 그것도 내 장점을 어필해야할 면접장에서.
굳이 이런 이야기를 왜 꺼냈을까? 하는 수치심이 밀려왔다.
그러나,
요즘 IT 기획자에게 요구하는 역할이 뭔지 분석하고, 트렌드에 맞게 나를 맞추려고 한 시도들이 떠오르며
마음 한켠이 뭉근한 게 느껴졌다.
마지막에 한 질문의 답변도 인상깊었다.
"사내 KPI나 OKR이 있으신지, 있다면 어떤 목표를 가지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저는 KPI나 OKR 그거 의미없다고 생각해요. 목표 그것도 결국 사람이 세우는 거잖아요. 세운 사람의 의견이기 때문에 그 지표가 잘못 설정되면 달성해도 그 지표는 의미가 없죠. 제가 마케팅팀에 오래 있었어서 그런 목표치 많이 세워봤었는데, 보고용에 불과하다고 생각해요"
이 대표님의 말이 다 맞다기 보다는, 여러 관점에서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된 게 좋았다.
데이터 기반 의사결정 능력과 목표치 설정. 당연히 PM으로써 중요하다.
하지만, 결국 지표라는 것은 개선을 하기 위한 여러가지 수단 중 하나인 것이지, 전적으로. 또는 맹목적으로 옳다는 것이 아니라는 걸 또 한번 느꼈다.
아쉽게도 해당 기업과는 연이 닿지 못했지만, 이번 면접이 나에게 굉장히 뜻 깊었다.
(감사하게도 구구절절 보낸 메일에 답변도 해주셨다)
개인적으로 이런 기업들이 많아졌으면 좋겠고, 이런 기업들을 알게 해준 리멤버에 감사한다.
그래서 오늘도 불합격 통보를 받은 취준생들에게는,
내 강점을 잘 알아봐주는 회사를 가라고 전하고 싶다.
내가 아무리 가고 싶은 회사라도 나의 장점을 잘 활용하지 못하면 회사도 나도 곪는다.
그리고 면접을 많이 보는 것도 회사를 고르는 기준을 세우는 데 도움이 된다.
대신, 꾸준히 강점을 갈고 닦고 장점을 가시적으로 표현하는 데 힘쓴다면, 가고싶은 회사에 좀 더 가까워지거나, 정말 잘 맞는 회사와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쓰임없는 사람은 없고, 준비된 자에게 기회는 온다.
이 말을 나는, 언제나 깊이 믿는다.
스스로의 실력과 경험, 가치를 믿어줬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