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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구하는 실천가 Apr 04. 2023

브랜드 좋아하세요?

나이 들면 좋은 점 1

   내가 초등학생일 무렵 우리 집 근처에 부산백화점이 생겼었다. 나는 엄마를 끌고 거대한 백화점 유리문을 밀고 들어갔다. 백화점에 들어서자 번쩍거리는 백화점 로비의 바닥과 천장의 화려한 샹그릴라에 나는 기가 빠져버린 느낌이었다. 결국 나는 다시 엄마 손을 붙잡고 그곳을 도망치듯 빠져나왔다. 그곳에 우리와 같은 옷차림을 한 사람은 없어 보였다. 그렇게 나는 가난하지만 남들 이상의 허영을 가진 아이였다. 그래서 엄마를 졸라서 그 시절 있는 집 자식들만 신었다는 프로스펙스 운동화를 즐겨 신었다. 하지만 마음 한편은 엄마에 대한 죄책감에 늘 불편했었다.


스물다섯, 드디어 내 손으로 돈을 버는 날이 왔을 때 나는 상류사회의 성과 같이 높아 보였던 백화점을 다니는 여자가 될 수 있었다. 월급날이 돌아오면 항상 퇴근길 내리던 그 버스 정류장 앞에 있던 롯데백화점에 당당히 입성하였다. 물론 거기서도 가격표를 볼 수 있는 용기가 나는 매장은 5~6개 정도에 불과했고, 또 거기서 할인하는 제품을 고르는 건 기본이었다. 그렇게 고른 소위 백화점 옷이나 물건을 나는 아끼면서 오래오래 입고 사용했다.  


  젊을 때는 브랜드 제품을 사는 것이 그렇게 좋았다.  뭔가 더 멋져 보였고 세련돼 보였다. 그걸 걸친 나도 고급스러워 보였다. 비록 비싼 브랜드는 꿈도 꿀 수 없었지만, 그래도 시장 가격에 비해 2~3배 정도의 금액대인 나름 백화점 브랜드 제품은 나의 소소한 사치 욕구를 충분히 채우며 돈 버는 성취를 안겨주었다.


  결혼을 하고 가정이 생기면서 나는 백화점을 끊었다. 그리고 아울렛이라는 곳을 다니기 시작했다. 백화점은 아무리 할인을 해도 뭔가 비싼 것 같고 살 수 있는 품목도 한정적이었지만 아울렛은 좀 더 고가의 브랜드 제품도 더 싸게 사는 느낌이었다. 어차피 입고 나가면 백화점 옷인지 아울렛 옷인지 구별되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그냥 브랜드 제품인 것이다.


  그렇다면 그때보다 훨씬 경제적 여유가 생긴 지금은 어떠한가? 지금의 나는 옷이나 물건을 잘 사지 않는다. 사야 할 필요성이 없는 한 굳이 사지 않는다. 사야 한다면 온라인 쇼핑몰에서 저렴한 물건을 아주 가끔 살뿐이다. 더 이상 나에게 백화점은 상류사회의 성이 아니고, 아울렛은 백화점의 또 다른 이름도 아니다. 브랜드는 나에게 더이상 만족을 주지 않는다.


 요즘  남편은 내 낡은 운동화를 보며 언제 새운동화를 살 거냐고 말한다. 나는 뭐든 그렇지만 특히 신발은 오래 신으면 신을수록 편해서 바꾸기가 싫다. 하지만 사회생활을 하는데 이렇게 낡은 운동화를 계속 신는 것이 남들 눈에 좀 남루하게 보일 수 있다. 그래서 적당한 운동화가 눈에 띄면 언제든 살 예정이다.


  옷도 그렇다. 며칠 전 아들이 오늘 엄마 옷차림이 잘 어울린다고 했다. 요즘 외모에 관심이 많은 아들인지라 내 평생 처음으로 옷에 대한 평가를 아들에게 다 듣는다.

’역시 최근에 산 옷이라 다른가보다.‘라는 나의 말에, 아들이 언제 산거냐고 궁금해했다. 한 5년 전쯤이라는 나의 말에 작년 옷도 잘 안 입는 아들의 표정은 어이없음 그 자체다. 내가 입는 옷의 연식은 보통 10년이 넘는다. 갱년기 이래 살이 쪄서 윗옷 대부분은 꽉 끼거나 잠기지 않지만 나는 그 옷들을 꾸역꾸역 입으며 다이어트에 대한 부질없는 의지를 키운다.


  옷을 입는 것에 대한 정의를 내리는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의 기준은 내가 편안하게 느끼는 옷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런데 요즘 인터넷에서 파는 옷들은 젊은 사람들 취향이라 그런지 뭔가 어색하면서 그렇게 입고 싶은 옷이 많지 않다. (백화점에 가 보면 뭔가 다를 수도 있겠다. ) 그러다 보니, 가장 오래 입은 옷이 내게는 가장 편하다. 내가 옷을 사지 않는 이유를 하나 더 추가하자면, 환경에 불필요한 쓰레기를 더하지 않기 위해서이다. 내가 옷을 하나 사게 되면, 입던 옷을 하나 버리게 되니 그만큼의 쓰레기가 지구의 대지를 덮는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하지 않다.


 나이가 들면 세상의 껍데기를 한 겹 씩 벗는다. 일단 누구의 눈에 맞추기보다 나 자신에게 맞추게 된다.  따라서 각자의 가치관대로 살아가는 것뿐이라는 마음이다. 그래도 마음에 드는 물건을 살 때의 기쁨은 줄어들지 않는다. 택배를 기다리는 기쁨 역시 인생의 또 다른 기쁨인 것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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