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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구하는 실천가 Jun 06. 2023

자전거로 출근하기까지 30년이 걸렸다

30년 출근 인생을 목전에 둔 나의 교통수단은 그동안 여러 차례 바뀌었다. 그 첫 번째가 집에서 멀고도 먼 곳으로 첫 발령을 받아야 했던 20대 신입의 나이다.  나는 버스와 지하철, 그리고 걷기라는 총 세 가지 교통수단을 번갈아 하며 1시간 30분 이상의 장거리 통근 생활을 해야 했다. 그때 무엇보다 힘들었던 것은 지금과 같은 버스 도착 시간 알림 시스템이 없어 버스 시간은 그야말로 엿장수 마음대로인 엿가락 시간이었다. 그래서 정해진 시간에 버스가 오는 일은 드물었고, 20분 간격이던 버스시간이 때로는 1시간을 기다리게 만들기도 했다. 그렇게 땡볕의 정류장에서 온몸이 반쯤 스러져갈 때야 도착한 버스 안은 미어터질듯한 수준으로 에어컨 따위는 있을 리 없는 수많은 사람의 체온이 더해져 한증막 그 자체였다.


  결혼과 동시에 아기를 임신한 30대 초반의 나는 우리나라 베이비붐 세대 출근 전쟁의 최대 노선 중 하나인 부산 중앙동과 남포동, 구덕동을 통과하는 광란의 버스를 타야 했다. 나는 만삭의 몸으로 한 시간 이상을 사방에서 조여 오는 사람들 속에서 가까스로 서서 버티는 일로 하루를 시작하였다. 특히 비 오는 아침이면 구덕터널과 부산터널 속에 한없이 갇힌 채 축축한 공기 속에서 올라오는 각종 체취로 견딜 수 없는 헛구역질을 참아 내느라 온몸을 비틀대던 것을 아직도 기억한다. 아무도 나의 임신 사실을 알 수 없을 만큼 버스 안은 혼잡하였고, 알았다고 한들 자리를 양보하기에는 서로 너무 힘들었다. 또 지각을 하지 않으려 어쩔 수 없이 탔던 택시 안에서 잔돈이 아닌 만 원짜리를 냈다는 이유로 아침부터 재수 없다는 식의 온갖 눈치와 타박을 받았던 서러움도 기억한다.


 그리고 비로소 40대에 나는 자가용이라는 문명의 이기로 제2의 삶을 살게 되었던 첫날의 감격을 잊을 수 없다. 더 이상 버스의 비인간화와 택시의 눈치싸움을 겪지 않아도 되는 인간의 삶이었다. 물론 그러고도 10년이라는 남달리 길었던 운전초보자의 삶이 녹녹했던 건 아니었다. 어디선가 경적이 울리면  그것은 무조건 나를 향한 거친 항의인 듯 나는 몸을 움찔거렸다. 주차를 못해서 여러 곳을 빙빙 돌거나, 따라 들어오는 차량 운전자의 눈총을 견디는 일은 약과였다. 운전 10년 차가 넘은 이제야 나는 자가운전자의 평화를 특정 범위 안에서나마 누리는 경지(?)에 이르렀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50대의 나는 이 평화로운 삶에서 다시 벗어나 초보운전자의 길에 들어선 것이다.

 3~4년마다 직장을 옮기는 내 직업의 특성상 내가 항상 원했던 출근은 걷기 인간이었다. 하지만, 집 근처 직장을 불편해하는 나로 인해 너무 가깝지 않은 거리로 희망하여 옮기고 보면 그 거리가 만만치 않거나 걷기에는 길의 상태가 좋지 않았다. 그러던 중 이번에 옮긴 직장은 거리가 7km 정도의 평지로 걷기에는 다소 어려움이 있지만, 자전거로 다니기에는 나쁘지 않은 거리였다. 그래서 나는 지금 자전거 인간으로 탈바꿈 중이다.  며칠의 망설임 끝에 헬멧을 머리에 단단히 쓰고, 자전거 핸들을 움켜 잡았다. 자전거로는 처음 가보는 길이지만 차로는 수차례 갔던 길이니 충분히 갈 수 있을 것이라 마음을 다독였다. 그렇게 자전거 운전 경력, 그것도 집 근처 산책로 기준으로 몇 차례 오간 게 다인 2년 차가 채 되지 못하는 초보라이더인 나는 7km 거리의 직장을 향해 첫 자전거 페달을 힘껏 밟았다.


  다행히 길은 평지이고 자전거 길이 잘 되어 있지만, 신도시인지라 신호등이 너무 많다는 것이 문제였다. 대략 300여 미터를 밟다 보면 신호등이 나타난다. 그렇게 쉬며 가며를 반복하며 출퇴근을 하니 30분 정도 걸렸다. 며칠을 다녀 보니 신호등을 최소한으로 건너거나 신호등이 없는 넓고 쾌적한 길을 찾을 수 있었다. 700m 정도의 긴 길을 통과하는 조용한 공원이 그중 하나이다. 거의 사람이 다니지 않으면서 양쪽으로 예쁜 꽃과 나무들, 벤치와 파라솔이 오직 나를 위해 준비한 듯 펼쳐져 있다. 자전거를 타지 않았으면 몰랐을 길이다. 아직 코너 길이나 신호등이 없는 차도를 건널 때는 바짝 긴장되는 마음으로 건너는 초보운전자이지만 너무 느린 걷기가 알지 못하는 상쾌한 속도감과 너무 빠른 자동차가 알지 못하는 계절의 풍경을 온전히 느낄 수 있는 자전거 인간의 즐거움을 당분간 놓지 못할 듯하다. 드디어 나는 30년만에 출근 길 최고의 교통수단을 찾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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