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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구하는 실천가 Nov 12. 2023

현명한 부모가 되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나는 이제껏 부모의 언덕을 느끼지 못하고 살았다고 생각했다. 내가 어릴 때 살던 우리 집 앞집은 그 시절 그렇듯 초록색 철문에 사자머리 모양의 문고리를 한 전형적인 양옥집이었다. 그 집 아빠는 깔끔한 양복을 입고 출근하며 가족들에게 손을 흔들었다. 가끔 그 집에 놀러 가면 그 집에 사는 어머니는 넓은 마루에 주황색 모포를 허리까지 덮고 앉아서 부드러운 미소로 나를 반기며 귤이나 감자 등을 내밀며 자신의 아이와 나눠먹게 하였다.  나는 그러한 부모의 따뜻한 보살핌을 그리워하며 목말라했다. 내가 집에 들어오면 항상 엄마가 있고 따뜻한 밥과 깨끗한 집안이 펼쳐지는 상상. 저녁이 되면 아빠가  맛있는 간식을 사 들고 초인종을 누르며 들어와 가족들이 반기는 상상. 하지만 항상 내가 들어오는 집안은 어두웠고 늦은 시간에 들어오는 엄마를 기다리며 나는 외로워했다. 나의 부모는 가난했고 삶이 고단했고 그래서 자녀의 마음을 들여다볼 시간이 없었다.  


   성인이 되어도 부모에 대한 목마름이 가시는 것은 아니었다. 주변 내 또래들은 부모의 돈으로 기반을 잡는데 보태는 것을 아무렇지 않게 말하였다. 거기에 대한 나의 부러움이 마음 한 구석에 조금 쌓인 것은 사실이지만 사실 나에게 큰 것은 그것이 아니었다. 나에게는 부모로서의 소소한 따뜻함과 어른으로서의 포근함이 더 부러웠다. 친정에 가면 같이 먹으라며 밑반찬 보따리를 준비해 주는 것, 내가 투덜거리는 남편 흉을 다 받아주고 철없는 나를 사랑스럽게 혼내주는 것 등이다. 자식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는 것을 스스로 아무런 표현도 보상도 원치 않던 엄마가 자식들이 결혼하자 갑자기 완고해지셨다. 사위와 며느리에 대한 불만으로  그것을 대신한 것이다. 그런 엄마의 변화는 따뜻하고 품 넓은 부모를 원했던 내게 또 다른 부담이 되었다.


  지금 생각하면 엄마는 내게 얼마나 따뜻하고 품 넓은 부모였는지 모른다. 사춘기 철 모르는 내가 고생하는 엄마를 위해 집안일을 하기는커녕 밖으로만 싸돌아다녀도 엄마는 말 한마디 하지 않았다. 그 당시 맏딸이면 다 하던 집안일을 나는 엄마에게 잔소리 들어본 적이 없었다. 대부분 딸은 실업고를 거쳐 취업을 하던 시절, 내가 인문고를 가겠다고 했지만 엄마는 별 말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결혼하고 엄마에게 소원해지던 즈음, 아니면 손자가 태어나고 우리 집에 와서 손자를 돌보던 즈음. 또는 아들, 며느리와 마찰을 빚고 서러움을 느끼던 즈음. 그때부터였을까. 엄마와 내가 어긋나기 시작한 것이. 엄마가 내게 집착 아닌 집착을 보인 것이.  자식에게 많은 희생을 한 부모는 자식과 더 관계 맺기가 어려운 지 모른다. 엄마의 현명함은 여기서 멈추었다. 그때부터 엄마의 치매 징조는 시작되었는지 모른다.  그리고 남들보다 무거운 삶과 세월의 무게로 인해 생긴 병과 노화로 이제는 자식의 보살핌이 필요한 상황이 돼버린 것이다.


   그래서 나는 내 자식에게 언덕 같은 부모가 되고 싶었고 자신 있었다. 우리 부부의 안정적 직장으로 적당한 경제적 수준과 시간적 여유가 자식에게 든든한 언덕이 될 거라 나는 믿었다. 하지만 그런 나의 자신만만함은 자식이 20대가 되자 와르르 무너져 버렸다. 처음에는 이해하지 못했다. 아이의 엄청난 원망을. 내가 너에게 못해준 게 뭔데.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알아버렸다. 내가 얼마나 얼치기 엄마였는지, 따뜻하고 섬세한 모정이 아닌 자식에 대한 보호욕구만 가득했던 본능 덩어리, 물질적인 것만 채워주면 될 거라는 가짜 믿음이 내 눈을 가리고 결국 아이를 아프게 만들었다. 처음으로 한참을 울었다. 내가 편하자고 만든 보호막의 틀이 가짜라는 사실에. 아이에 대한 돌이킬 수 없는 죄책감이 느껴졌다.


  사실 나의 엄마가 얼마나 현명했는가를 지금은 깨닫는다. 아무것도 해 준 것이 없다고 나는 징징 되었지만, 엄마의 말없는 삶과 시간의 무게가 나를 조용히 숙성시켜 왔다는 것을. 철없이 빗나가는 나를 묵묵히 뒤에서 지켜보아준 엄마의 현명함을 이제야 깨우치는 나는 얼마나 어리석었던가. 늦었지만 이제라도 새로이 육아를 시작하고자 한다. 아이에게 스스로 꿈꾸고 스스로 일어서도록 묵묵히 응원하는 엄마가 되어야 한다. 우리 엄마도 그러했으니 나도 그렇게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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