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10개월 전 요양원에 들어가셨다. 몇 년간 힘든 시간을 나와 함께 버티던 엄마는 언제부턴가 자신을 놓아버리실 것 같다고 두려워하셨다. 그러고 1년 전쯤 엄마는 자신을 놓쳐버렸다. 이상한 말과 행동을 반복하는 횟수가 늘어나고 편집증적으로 화장실에 가고자 함에 따라 나는 거의 잠을 자지 못했고 주간보호센터에서도 더 이상 돌봐주기를 거부하였다. 결국 나는 그다음 수순이었던 것처럼 바로 요양원에 모셨다. 아무 생각이 없으신 엄마는 '일 다녀오라'며 평소처럼 내 손을 수월하게 놓아주셨다. 그렇게 우리는 눈물 한 방울 없는 이별을 하고, 매주 한 번 엄마를 면회하는 것으로 자식의 죄책감을 덜어낸다. 다행히 엄마는 요양원에서 아무 탈 없이 잘 지내시고, 밥도 잘 드신다고 한다. 어차피 여기가 집인지, 아닌지, 곁의 사람이 딸인지, 요양보호사인지 모르시므로 엄마의 평온함은 불행 중 행복이다.
어릴 적 엄마의 옷자락을 잡고 있으면 엄마 냄새가 훅 들어왔었다. 음식 냄새, 땀 냄새 그리고 무언가 알 수 없는 가난했던 시절 자주 씻을 수 없던 그 시절의 꾸릿꾸릿한 냄새. 엄마와 장난치기를 좋아했던 나는 엄마 냄새가 지독하다며 흉보듯 놀렸지만 이상하게 자꾸 그 냄새가 맡고 싶어서 엄마 옷에 더욱 얼굴을 바짝 갖다 대곤 했다. 언제부터 엄마 냄새가 사라졌다. 엄마 특유의 구수함이 섞인 땀내 짠내가 점차 노인 특유의 누릿한 냄새로 바뀌었다. 그 냄새는 어릴 적 맡고 싶던 그 냄새가 아니었으므로 오히려 냄새가 싫어 코끝을 찡그렸다. 치매가 심해지면서 몸의 청결을 챙기지 못한 엄마에게는 더욱 냄새가 심해졌다. 그러다 주간보호센터를 다니면서 엄마에게는 아무런 냄새가 안 났다. 그때부터인 거 같다. 더 이상 엄마의 품이 낯설어진 것이. 이제 거친 손으로 음식을 만들고 설거지를 하고 청소를 하지 않으시는 엄마, 그리고 남의 손에 의해 너무 깔끔해지신 엄마에게는 더 이상 아무런 냄새가 안 난다. 냄새가 사라진 엄마는 그냥 겉만 엄마이고 모든 것이 엄마가 아닌 것 같은 낯섦이 있다.
어릴 적 놀던 골목에는 호박꽃이 많이 피어있었다. 사람들은 커다랗게 자라난 호박을 바라보고 흐뭇하게 웃으면서 정작 호박꽃에는 아무 관심이 없었다. 나는 그 샛노란 호박꽃을 좋아했다. 그 커다란 다섯 장의 꽃잎과 샛노란 빛깔은 마치 큰 별처럼 보였는데 왜 사람들은 관심이 없거나 심지어 못났다고 할까? 도대체 호박꽃의 어느 부분이 못난 것이었을까? 생각해보면, 사람들은 꽃이란 모름지기 조신하고 청초한 맛이 있어야 한다고 느끼는 것이 아닐까 한다. 필 듯 말 듯 조심스럽게 피어나고, 올망졸망 곱게 피어야 한다고 느끼는 것이 아닐까? 호박꽃은 그렇지 않다. 그 무엇도 두렵지 않은 듯 당당하게 자신의 얼굴을 확실히 펼쳐 드러낸다. 꽃잎을 커다란 치마처럼 펼치고 커다란 함박웃음을 짓는다. 새삼 그 모습이 마치 어릴 적 엄마가 길고 커다란 치마를 두르고 우리 앞에서 환하게 웃는 모습 같다고 느껴진다. 우리는 그 치마에 얼굴을 묻고는 '으이그, 엄마 냄새!' 하며 투덜거리지만 더 치맛자락에 얼굴을 비벼대며 그 따뜻한 냄새에 마음의 평안을 찾았던 것처럼. 갑자기 눈가가 뜨거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