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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구하는 실천가 Sep 27. 2023

병상일기 2

2023. 9. 19-20

<극 I가 바라본 다인실 사람들>

우리 병실에는 6명의 환자와 2명의 간병인이 있어 좁은 공간이 항상 번잡하다. 환자 중 3명은 70~80대이고, 50대가 나, 60대가 한 명, 20대가 한 명이다. 병실에서 내 자리는 벽면 제일 끝이라 극 i의 성향에 안성맞춤이다.  눈에 잘 띄지 않는 사생활 보장과 조용함, 다인실이지만 골방느낌의 로얄석이다. 하지만 막상 지내고 보니 단점도 있다. 안 그래도 소심형인 내가 이 공간 속에서 외톨이가 되기 쉬운 구조라는 점이다.  이렇게 된 데는 처음 내가 들어올 때부터 극심한 통증으로 너무 괴로워하며 진통제를 외치면서 주변 사람들에게 중환자 이미지를 준 것도 있었다.


목소리가 특이하신 70대분 환자분은 얼마 전 퇴원하기 전까지 이곳의 대외방송 담당이었다. 항상 내 침대 커튼 너머에서 우렁차게 들려오는 쇳소리 섞인 독특한 목소리가 병실 전체를 지배했다. 주로 들리는 이야기는 나와 성향이 완전 반대쪽의 정치이야기라 듣기 조금 불편한 감이 들기도 했다. 그리고 옆 침대의 말 많으신 80대 할머니에 대한 기선제압, 그리고 맛없는 병원밥에 대한 성토 등이다. 사실 이 병원은 종교적 이유로 고기와 생선이 나오지 않는데 채식주의를 지향하는 나로서도 삼시세끼 채식이 쉬운 길이 아님을 여실히 보여주는 식단이기는 하다. 특히 밀고기라 불리는 고기맛을 흉내낸 반찬은 영 입에 맞지 않다.


내 옆 자리의 걸걸한 목소리의 20대 여성은 가벼운 교통사고로 들어왔는데 한 손에는 아메리카노, 한 손에는 노트북을 들고 침대 위에서 업무를 본다. 가해자와 합의는 없다는 말부터 업무적인 불평까지 수시로 누군가와 하는 전화소리가 병실을 울리며 mz 커리어우먼을 담당한다. 며칠 전 좁은 병실 화장실에서 샤워를 깔끔하게 하고 대학생 같은 상쾌한 모습으로 가볍게 퇴원했다. 부러웠다.


키가 큰데 비해 엄청 몸이 말라서 더 키가 커 보이는 60대쯤 보이는 간병사는 어떤 80대 할머니를 간병하고 있다. 앞서 대외방송 담당과 함께 우리 병실의 주스피커이다. 돌보는 활머니와는 언제부터 함께 했는지 모르지만 고양이와 쥐처럼 서로 수시로 으르렁거린다. 할머니는 항상 누워만 계시고, 간병인은 다른 분들과 수다를 하거나 보조침대에 항상 누워 있는다. 할머니가 좀 막무가내이기는 한데 너무 크게 혼내는 모습에 우리 엄마를 간병하던 분들도 저렇게 했으려나 싶어 마음이 안 좋았다. 그런데 좀 더 지켜보니 보이는 게 다가 아닌 것도 같다. 할머니에게 잘할 때는 잘한다.


또 다른 80대 할머니는 꽁지머리를 살짝 묶고 귀엽게 생겼는데 약간 정신이 없으시다가도 있다가 하시는 치매 초기인 것으로 보인다. 딸이 간병을 하는데, 딸도 앞서 간병인처럼 자신의 어머니에게 짜증을 많이 낸다. 그런데 한 달쯤 병원에 있었다는 말을 들으니 나도 엄마를 일주일이상 병실에 모실 때 힘들었던 생각이 나서 한편 딸의 마음이 이해가 된다.  좁은 보조침대에 기대어 갑갑한 간병을 하는 건 자식이라도 힘들다. 코로나로 교대도 안되니.


처음 사나흘은 뭔가 나에게 텃세를 부리는 듯한 병실 속 긴장감(누가 화장실 불을 자꾸 끄냐며 짜증을 냈는데 나를 향한 말인 듯했다)과 서로 주고 받는 기센 말투, 그리고 나의 커튼 뒤 칩거 속에서 분위기가 묘했다. 일주일쯤 지나자 내 식판을 대신 들고 가기도 하고, 괜찮냐고 말도 걸어주는 모습에서 누구나 한 발짝 가까워지기는 어렵지만, 한 발짝 다음 두 발짝 가까워지는 것은 인생사 비슷한 것이 아닌가 한다.


2023. 9. 23

지금은 오후 3시 50분. 대략 한 시간 뒤면 저녁밥이 나온다. 병원밥은 그 특유의 냄새가 있다. 그걸 먹으면 더 몸에 힘이 빠지는 느낌을 준다.

병원의 시간은 밥을 중심으로 돈다. 새벽에 간호사들의 움직임이 느껴지는가 하면 곧 밥이 도착한다. 그게 아침 7시이다. 그 아침을 먹고 이를 닦고 약을 먹으면 링거를 달러 온다. 새 링거를 맞고 멍하니 있다 보면 12시에 밥 오는 소리가 들린다. 그 밥을 먹고 나른한 오후를 휴대폰, 책, tv로 돌려 막기 하다 보면 저녁밥이 5시에 나온다. 저녁밥과 약을 먹고 2차 링거를 맞고 잠을 청하며 하루를 보낸다. 아무런 변화도 없는 병실에서 오로지 맛없는 밥상이나마 어떤 반찬일까 하는 조그마한 희망으로 하루를 넘기는 것이다.


2023. 9. 24.

다른 곳도 그렇지만 여기서도 나를 비롯한 40-60대 여성 환자를 부르는 주된 호칭은 어머님이다. 내 나이 사람들은 대체로 누군가의 어머니이긴 하다. 그리고 10여 년이 지나면 또 점차 나를 할머니라 부르는 사람이 생길지 모르겠다. 난 아이들이 날 아줌마나  할머니라 부르는 건 상관없다. 하지만 일반 성인들이 날 그렇게 부르는 건 뭔가 불편하다.  이 병원에서도 20~30대 이하의 사람들에게는 환자분이라 부르는 것처럼 나도 그렇게 불리고 싶다.  누군가는 미혼일 수도, 자녀가 없을 수도 있으니까. 그 사람의 사적인 신분을 추측해서 부르지 말고 공적인 공통 표현으로 가게에서는 ‘고객님’ 병원에서는 ‘환자분'으로 부르면 좋겠다. 하지만, 소심한 나는 이걸 선듯 제안할 용기는 잘 안 생긴다. 그냥 이렇게 브런치에만 주절주절 적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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