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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사는 역시 어려워

by 연구하는 실천가

내 어릴 적 꿈은 장사였다. 어린 시절 가난한 집 딸의 눈에 가게 주인은 모두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문방구, 슈퍼마켓, 식당 등. 자신만의 공간 안에서 물건들을 잘 차려 놓고 카운터에 느긋하게 앉아 있으면 손님들이 척척 찾아와 필요한 것을 사고는 돈을 쥐어줬다. 주인은 그 돈을 띠리링 소리 나는 쇠로 된 돈통에 착착 챙겨 넣으면 되는 것이다. 우리 집도 저렇게 장사를 하면 얼마나 좋을까. 어린 나는 생각했다. 그러면 이른 아침, 엄마를 먼 일터로 떠나보내지 않아도 되고, 나는 하루 종일 엄마 옆에 딱 붙어 앉아 엄마가 파는 물건들을 만지작 거리며 가끔 공짜로 물건 하나 정도 내 손에 톡 떨어졌을 텐데.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일을 하신 엄마도 잠깐이지만 장사를 하셨다. 하지만 엄마의 장사는 그들과 달랐다. 과자 꾸러미를 머리에 이고 이 골목 저 골목 다니면서 팔거나, 시장 한 구석에 소금을 가득 담은 대야를 두고 하루 종일 쪼그리고 앉아 한 되씩 팔다가 저녁이 되어서야 허리를 펴고 집으로 돌아왔다. 아니면, 남의 가게 귀퉁이에서 떡볶이통을 연탄 화로에 걸쳐 두고 하루에 몇 명 되지도 않는 코흘리개 손님에게 몇 접시 팔다가 남은 다 불어 터진 떡볶이를 나에게 넘겨주면 나는 신나게 그것을 먹어치우는 게 일이었다. 뭔가 다른 가게 주인의 여유가 보이지 않는 엄마의 종종거림이 싫어서 더욱 나는 가게 주인으로 향한 꿈에 목말라했다. 고등학교 사회 시간에 우연히 은행 대출이란 것을 알게 되었다. 은행에서 돈을 빌리면 가게를 차릴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집으로 헐레벌떡 뛰어와서 엄마에게 돈을 빌려서 가게를 차리자고 말했고, 엄마는 알겠다고만 했다. 훗날 나는 알았다. 은행은 가난한 사람에게 절대 돈을 빌려주지 않는다는 것을. 그리고 세월이 흘렀다. 나는 은행에서 쉽게 돈을 빌릴 수 있는 부류 중 하나인 공무원이 되었고, 돈이 필요할 때 서류 몇 장으로 은행에서 돈을 빌릴 수 있었다. 물론 정해진 대출 한도 내에서였지만.


하지만, 나의 꿈을 이룬 것은 아니었다. 나의 어릴 적 꿈인 가게 주인이 되지는 못했으니까. 하지만, 앞으로 기회가 된다고 해도 나는 과연 가게 주인이 될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왜냐면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가게 주인이 될 성향이 아닌 것 같기 때문이다. 나는 가끔 온라인 중고 마켓에 물건을 판다. 주로 내가 한 번 정도 읽은 책들, 또는 사놓고 쓰지 않는 새것에 가까운 물건들이다. 그런데, 나는 점차 이런 판매도 쉽지 않다는 생각이 자꾸 든다. 내가 산 금액에 대비하여 정말 소액의 값을 붙이건만 (한 때 무료로 내놓아 보았으나,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가는 모습에서 허탈감을 느끼다 보니 최소한의 금액만 건다), 소소한 클레임이 가끔 들어온다. 새 책에 가깝다고 해 놓고 약간의 얼룩을 말하지 않았다거나, 여러 개를 살 테니 가격을 깎아달라거나, 설명과 다른 부분이 있다거나.. 물론 그들의 잘못이라기보다 주로 내가 급하게 올리다 보니 놓친 부분들이다. 그러면 나는 피곤함과 후회가 밀려오면서 (굳이 몇 천 원을 벌려고 내가 왜 중고장터에 물건을 올렸던가, 단지 버리기 아까워 누군가에게 쓸모 있기를 바란 마음이었는데.) 가격을 깎아주거나 그냥 돈을 입금하지 마라고 하거나 실수였다고 사과한다. 그러면 나는 한 동안 맘이 불편해서 물건을 팔지 않았다. 아무래도 나는 장사와 맞지 않는가 보다.


장사란 이윤을 남기는 것이다. 그러려면, 원가보다는 더 받아야 한다. 아니, 최대한 높게 받아야 한다. 그게 장사꾼의 기본이다. 그러려면 얼굴이 좀 두꺼워야 한다. 그리고 꼼꼼해야 한다. 둘 다 나와 맞지 않는 성향인가 보다. 어릴 적 분명 내가 보았던 가게 주인들의 느긋한 표정 뒤에는 뭔가 다른 삶의 치열함이 숨어있었던 걸까? 나는 역시 공무원이 맞는 걸까. 하지만, 여전히 나는 은퇴 후에 뭔가 장사를 하고 싶은 마음이 꼼지락꼼지락 올라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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