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여름을 보내며(2)

by 연구하는 실천가

이번 여름, 나는 오랜 시간 미뤄온 나만의 고민이자 숙제를 조심스럽게 하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수영이다.

이번 제주도 여행을 앞두고 남편이 수영 연습을 제안했고, 나는 무리한 요구를 하지 않는 선에서 천천히 배우겠다고 조심스럽게 동의했던 것이다.

수영장의 일반 강습으로는 도저히 엄두를 낼 자신이 없었으므로.


첫날 남편과 함께 잠깐 맛보기로 들어간 일반 풀장의 물이 가슴 위까지 압박하며 일렁이는 통에 나는 허겁지겁 물 밖으로 나오고 말았고 이윽고 시작된 유아풀에서 수영 연습이 시작되었다.

절대 강요하면 안 된다는 약속을 받고 시작한 강습이었기에 남편은 내 말을 순순히 따라주고 기다려 주며 조금씩 나아가는 순한 강사 역할을 해 주었다.

처음에는 허리 깊이의 물에 머리를 숙이고 다리를 띄우는 것도 큰 용기가 필요했지만 점차 몸을 띄우는 느낌을 알게 되며 발차기를 연습하였다.

하지만, 나의 느린 연습 속도로 그 이상의 진전을 이루지 못한 채 나는 제주도 여행을 가게 되었다. 처음에는 만조와 간조의 중요성을 잘 몰라 만조가 가까운 때 방문한 유명 포구에서 어깨까지만 겨우 물에 내어 놓고 물속에 뻣뻣하게 서서 다른 사람들의 물놀이를 구경만 하다 돌아오고 어떤 날은 또 다른 포구에서 강한 파도로 바위만 붙잡고 엉거주춤 서 있다 돌아왔다.. 그러다가 어느 날 찾아간 잔잔한 바닷가의 얕은 곳에서 수영 비슷한 것을 흉내내보기도 하고 남편을 따라 파도를 타며 잠수하는 것도 살짝 맛보며 두렵지만 여름의 즐거움이라는 것을 맛보았다. 그다음 날은 파도가 없고 맑고 얕은 아름다운 해변에서 처음으로 스노클링을 하며 작은 물고기 떼를 만나는 경험을 한 후 나는 물놀이의 마력을 느끼게 되었다.


제주에서 돌아온 후 무릎 통증으로 그동안 해 오던 러닝과 등산을 쉬게 된 나는 제주도에서 맛본 여름의 맛을 잊지 못하고 결국 수영 바구니를 들고 동네 수영장을 혼자 방문해서 매일 30여분씩 팔 젓기 연습을 했다. 이제는 가르쳐 주는 사람 없이 유튜브만을 보면서 여전히 유아풀에서 숨을 참으며 팔을 엉망으로 휘저으며 겨우 겨우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유튜브에 나오는 대로 호흡을 해 보려 했지만 고개를 돌리는 순간 물을 마시는 나는 아직 뜨는 것과 팔젓기도 제대로 안 되는 것이 분명하다. 어찌어찌 올 가을까지만이라도 열심히 하다 보면 호흡법을 알게 되지 않을까 실낱같은 희망으로 여름의 끝을 붙잡는 중이다.

육해공 두루두루 타고난 겁쟁이인 내가 지금 운전을 그나마 큰 두려움 없이 하게 된 것(물론 초행길은 여전히 두렵다)이 20여 년간의 루틴의 결과라 여기며 나 스스로가 기특하듯이, 나는 수영도 조금씩 쌓이다 보면 언젠가 그렇게 되지 않을까 하는 조금은 무대뽀의 꿈을 꾸면서.


덥기만 하고 좋을 거 하나 없던 나의 여름이 이제 다음 여름을 가끔 기대해 보기도 하는 계절로 조금은 바뀌었다는 점이 그래도 스스로 놀랍다. 혹시 그때는 가슴까지 오는 깊이에서도 호흡을 하며 팔을 저어 물속을 유영하는 나를 만날 수 있지 않을까? 아니면 내후년 여름에라도 감히 기대해 본다.


내 평생보다 이번 두 달의 여름이 더 많이 물과 함께 한 시간이었다. 50여 년 만에 낯 가리던 물과 아주 조금 가까워지며 나도 여름을 살짝 좋아하게 되었다. 또 그리워할 추억이 생기게 되었다. 그래서 길고도 길었던 이번 여름이지만, 이렇게 보내는 마음이 조금은 아련한가 보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