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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클로에 Apr 02. 2022

꿈을 이루는 순간은 화려하지 않았다.

결과를 내기 위해 배우고 성장한 것에 가치가 있음을.


사람은 각자 나름의 목표나 이상을 가지고 살아간다. 그 목표가 어떤 직업으로 귀결될 수도 있고, 어떤 신념으로 나타날 수도 있으며 굳이 말이나 행동으로 정의하지 않더라도 어떤 대상 자체가 되기도 한다. 그리고 욕심이 많은 나의 목표와 이상은 언제나 아주 근사하고 멋진 것들로 가득 차 있었다. 먼 훗날의 내가 이루지도 못할 것만 같았고, 그저 멋진 이상 그 자체로 남겨두었던 자리에 내가 서 있다는 것을 발견한 건 누군가의 말 한마디가 시작이었다.


"예전에 학교 가시는 게 꿈이라고 했는데, 그 학교에 가신 거예요?"


그랬었나? 처음 그 질문을 듣고 가장 처음 들었던 생각이다. 따지고 보면 그랬다. 나는 언제나 어린 시절의 이루지 못한 꿈으로 남겨두었던 음악 분야에서 '정식으로' -이 정식으로라는 말도 참 이상하지만 일단은 '전공으로' 정도의 의미다.-공부해보고 싶었고 그 분야의 전문가가 되기를 원했다. 하지만 그 꿈은 너무나도 막연하고 먼 일들 같았다. 특히 음악은 꼬꼬마 시절의 작은 손으로 음악을 시작해서 천재적인 재능이 있는 이들만 연주자로 무대 위 박수갈채를 받는 분야가 아니던가. 너무나 쉽게 찾아볼 수 있는 화려한 무대 위 세계를 동경하고 꿈꾸면서도 감히 나는 그럴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왜냐면 나는 아주 평범한 사람이고 천부적인 재능을 가지지도 않았기 때문에.


그런데 우습게도 꿈은 아주 자연스럽게 스미듯 이루어졌다. 어느 날 갑자기 '너는 이제부터 피아노 전공이야!' 하고 마법처럼 등장하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어느 날 갑자기 멋진 회사에서 '너는 이제부터 대기업 회사 직원이야!'하고 이루어지지 않았다. 꿈이 이루어지는 순간은 아주 일상적이고 순간적이었으며, 그저 다른 세계의 일상으로 가는 문을 여는 것에 불과했다.


다시 질문을 곱씹으며 생각해보았다. 나는 왜 오래도록 바랐던 꿈을 이루었음에도 그렇게 날아가듯 기쁘거나 감개무량하지 않았을까? 꿈이었다 자부하는 것을 왜 이렇게 쉽게 잊어버렸을까? 그 질문에 대한 두 가지의 답을 나름대로 내려보았다.




첫 번째, 모든 성취 속에는 과정이 있었다.

입사를 하고 입학을 하는 과정은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나는 3년여의 디자이너 경력을 쌓은 후 지금의 회사로 입사했고, 마찬가지로 피아노 역시 취미로 꾸준히 해오고 있었다. 그뿐인가. 입사를 위해서 포트폴리오를 만들고 각 단계에 따른 면접 준비를 열심히 했고, 피아노 역시 진학을 결정하고는 입시곡을 1년 넘게 좋은 선생님과 함께 분석하고 공부하고 또 연주했다. 그 사이에 입시 대비를 위해 콩쿠르에도 몇 번 나갔고, 무대 위 경험치를 쌓기 위해 연주회도 몇 번 열었다. 이렇듯 모든 성취 속에는 결과보다 훨씬 더 긴 과정들이 존재했다. 그건 남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내 나름대로 열심히 쌓아온 노력이었다.


나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라 잠도 7시간 이상 자야 했고, 회사도 다녀야 했다. 다시 말하면 미디어에서 보이는 멋진 노력형 인재, 가령 4시간씩 자면서 미친 듯이 몰두하기에는 나의 시간도 체력도 충분치 않았다. 물론 당연하게도 그렇게 몰입할 수 있다면 목표에 좀 더 빨리 다다르겠지만, 어쨌든 중요한 사실은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그래서 그냥 꾸준히 했다. 그냥 했다. 그 과정 속에서 대단한 것을 이루려고 생각한 건 아니었다. 나는 그 과정 자체가 즐거웠다. (왜냐면 난 내게 즐겁지 않은 일은 하지 않는 편식쟁이니까!)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에 충실했다. 당연히 모든 순간이 행복하진 않았다. 마음처럼 되지 않아 레슨 시간 피아노 앞에서 울기도 했고 머리로 이해는 되는데 손으로 연주가 되지 않아 속상한 순간도 있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내가 좋아하는 일이라 이 고개를 넘어 성장하고 싶었다. 좀 더, 잘하고 싶었다.


이러한 과정들이 있다 보니 정작 꿈을 이루는 순간들은 상상했던 것만큼 거대한 기쁨과 환희가 아니었다. 정말 '어쩌다 보니' 이루어진 느낌이었다. 꿈을 마음에 품고 그저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으로 닮아갈 수 있다는 것은 지금 돌아보고서야 알았다. 천리길도 한걸음부터. 꿈을 그리는 사람은 그 꿈을 닮아간다는 흔한 말들이 이해되는 순간이었다.


두 번째, 일상이 된 것들은 무뎌진다.

전공으로 음악을 공부해보고 싶다는 생각은 아주 오래전부터 막연히 해온 꿈이고 바람이었지만, 지금은 그저 일상의 일부에 불과해졌다. 바꿔 말하면 그저 막연히 거대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건 너무 대단한 일이라 나 같은 평범한 사람은 못할 거야.' 지레짐작으로 겁먹었던 그 생각이 막상 현실로 부딪혀보자 그 정도로 겁먹을 일은 아니었다는 거다.


학부 4학년을 거친 전공생들보다는 절대적인 경험의 시간이 부족하기 때문에 가야 할 길이 아주 멀고, 배워야 할 것도 많다. 교수님과의 레슨시간은 언제나 떨리고 내가 너무 못 치지 않았을까 노심초사하게 된다. 하지만 레슨 하는 그 50분 동안 정말 교수님의 말을 단 하나도 못 알아들을 정도는 아니다. 설령 이론이나 말을 못 알아들을지언정 연주되는 피아노 소리로 차이를 알고 그걸 다시 내 소리로 만들 수 있다. (물론 연습이 필요하다.)


꿈이 현실이 되면 그건 더 이상 꿈이 아니다. '이룬 꿈'이 아니라 '발전해야 하는 현실'이 된다. 만약 이 꿈 자체가 이루는 것이 끝인 일이라면 이렇게 무뎌지진 않을 것 같은데, 내 꿈은 전공으로 공부하고 싶다는 문장이었기 때문에 더 무뎌지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이룬 꿈을 멍하게 만끽하는 건 순간이었고 다시 발전하기 위해서 하루하루에 몰두해야 한다. 결국 목표의 달성은 새로운 과정의 시작으로 연결된다. 그리고 그 시작된 과정의 하루하루를 채워가기 위해 나는 다시 또 신발끈을 다시 묶고 천천히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쓰고 보니 나 자신에게 너무 가혹했나? 하는 생각이 드는데,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이런 나를 바꾸려고 시도하는 것보다 인정하는 것이 더 현실적인 일이기 때문이다. 삶을 통해 체감하며 경험했던 것도 컸는데, 내가 만족할 만큼 또는 내가 스스로 열심히 했다고 인정할 만큼 과정이 충분하지 않으면 꼭 무대에서 문제가 생겼다. 세상 대부분의 일이 그렇겠지만 피아노가 내게 알려준 큰 경험 중 하나였다. 화려한 순간은 결코 순간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며, 그 짧은 순간을 위해 그것보다 더 큰 연습과 설움과 발전과 인내가 필요하다고.


그리고 또 한 번 나에 대해 알아간다. 나는 결과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는 과정에서 오는 성취와 성장이 더 행복한 사람이라고. 그리고 배운다는 것 그 자체를 아주 좋아하고 지속하고 싶어 한다고. 아마 그래서 여태껏 늘 성장하고 싶었고 나아가고 싶었으리라. 누가 성장을 강요하거나 맡겨둔 것도 아닌데 결코 놓을 수 없는 가치로 자리매김해서 여기까지 나를 끌고 왔다.


세상에는 내가 알지 못하는 것들이 많고, 그래서 늘 더 큰 세상이 궁금했다. 꿈을 현실로 이루고 나니 그 순간은 시작에 불과했고 나를 또 다른 세상으로 이끌어주었다. 아마 나는 영영 한 분야에서 특출난 스페셜리스트가 되진 못할 테다. 하지만 그래도 괜찮을 것 같다. 여러 세상을 탐구하는 과정과 일상만으로도 충분히 가치가 있으므로. 


배우고 성장하는 그 가치가 나의 하루를 좀 더 풍만하게 만들어주는 것에 감사하며 오늘도 오늘치의 노력으로 하루를 살아간다. 

이 길이 또 다른 목표에 다다를 것을 설레 하면서 지속 가능한 정도로, 오래도록, 미지근하게.





표지 사진 : Photo by Denise Jans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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