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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브의 설렘 Aug 27. 2023

네 농담, 하나도 안 웃겼어

질병을 혐오하는 사회




유튜브를 바쁘게 오르내리는 눈동자가 파르르 떨렸다. 순간 내 눈을 의심했다. 남들은  피식 웃으며 넘길 제목 하나에 차마 웃을 수가 없었다. 




"(**) 에서 꿀 떨어집니다. feat 당뇨 조심!"



사랑스러운 반려 고양이들의 일상을 공유하는 A의 채널의 최신 영상 제목이었다. 나는 그 채널에 구독과 알림 설정을 해놓은 꽤나 성실한 구독자였. 그날의 주제는 눈빛만으로 구독자들의 심장을 녹여버리는 고양이의 치명적인 애교! 


돋아난 짜증을 한 움큼 삭히고, A에게 애둘러 시정을 요구했다.


"항상 잘 보고 있어요~ 그런데... 의도하신 건 아니겠지만 저는 당뇨인 당사자인데요. [당뇨 조심!] 이라는 제목이 맘에 걸리고 불편하네요. 당뇨는 단 걸 많이 먹어서 생기는 질병도 아니랍니다~~"  


(당뇨질환 당사자조차 탄수화물, 설탕을 많이 먹어서 당뇨에 걸린 줄 아는 사람이 많은 이 사회에서, 저런 식의 표현은 당뇨 발병의 원인마저 자꾸 곡해시키니 시정을 요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채널 운영자분께서 바로 심심한 사과와 함께 제목을 수정해주셨지만 찝찝함은 사라지지 않았다. 새로 뜨는 영상에도 손이 가지 않아 구독도 취소해버렸다. 당시의 불쾌감은 옅어졌지만, '어쩜 이렇게 당사자에게 무심하고 불쾌할 수 있는 농담이 있을까.' 라는 생각은 변치가 않는다.








[말이 칼이 될 때]의 저자이자 남성페미니스트 홍성수 교수는 국제법에 근거해 혐오표현(Hate Speech)'소수자에 대한 편견 또는 차별을 확산시키거나 조장하는 행위 또는 어떤 개인, 집단에 대해 그들이 소수자로서의 속성을 가졌다는 이유로 멸시, 모욕, 위협하거나 그들에 대한 차별, 적의, 폭력을 선동하는 표현.' 으로 정의한다.





이러한 '혐오 표현'은 세상 곳곳에서 이뤄지며 대부분 사회적 약자를 향한다. 다양한 약자들이 이러한 혐오에 노출되는데, '질환 보유자' 또한  대상이 된다는 걸 많은 사람들이 알지 못한다.



편견이나 차별을 대놓고 드러내지 않는 혐오는 보통 '유머'라는 코드에 감추어져 있기에 그저 웃고 넘길 일로 둔갑하곤 한다. 나도 그런 혐오를 밥 먹듯이 했다. 친구들과 sns 썰들을 공유하며 '와 이거 봐 봐. 진심 암 걸릴 듯. 발암 주의ㅋㅋㅋㅋ' 따위의 말을 곧잘 쓰며 깔깔 웃었다. 그러다 한 지인에게서 '그런 우스개소리가 암 환자 당사자에겐 어떻게 들릴지 생각해보자'는 말을 듣고 조심하게 되었지만, 내 부주의함이 당사자분들께 얼마나 큰 상처를 드렸을지는 당시엔 미처 헤아리지 못했다. 깊게 반성하는 바이다.


혐오가 만연한 한국, 서로를 긴밀하고 은밀하게 혐오하도록 만드는 복잡한 사회에서 살고 있기에 모든 부당함을 캐치하고 벗어나기 어렵다는 것도 안다. 그러나 개인 스스로라도 본인을 둘러싼 세상에 대해 의문을 가져보는 사람이 많아지기를 바란다. 혹 여기까지 이 글을 읽어 주셨다면, 어제와 오늘의 나는 어떤 말을 했던가 돌이켜보는 시간을 가져보기를 제안해본다. 웃기자고 건넨 농담 하나, 댓글 하나가 내 주변에 있던 사람의 존재 자체에 상처를 내지는 않았을지, 나는 왜 그런 말을 했어야 했는지를.  







(그리고 심지어 당뇨는 설탕 때문이 아니라는 걸 다시 한 번 강조하는 바이다. 이것이 못내 걸렸다. 사람들의 오해를 풀고싶은 것 중에 하나인만큼 다음 글의 주제가 될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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