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브의 설렘 Aug 27. 2023

완벽하지 못할 바에야 침대에나 누워 있을래

대체 '완벽주의'가 뭐길래

 


'뚜ㄹ..'


"어~ 동히야~ 왜~?"


"언니? 언니 뭐 하는데 이렇게 전화를 빨리 받아?"


"응~ 그냥 누워서 핸드폰 보고 있었지 뭐. 아무것도 안 해. 인생이 다 그렇지 뭐~..."


그렇다. 그땐 인생이 다 그랬다.

하루가 다 가도록 침대에 누워 핸드폰만 보고 있으니 전화를 0.1초만에 받는 스킬을 마스터했다.

마이스터 장인이 되어 먹고 싸는 거 외에 모든 것이 침대에서 시작해 침대에서 끝이 나는 시절이었다.






2018년, 25살이 되자 인생에 무급 휴가 보너스가 주어졌다. 당뇨에 걸린 것이다. 몸을 회복해야 한다는 핑계를대고 백수 학교에 입학했다. 그곳은 아무도 내게 무엇을 하라고 명령해줄 사람이 없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생활을 해도 괜찮다니! 그동안 학교나 직장에서 강제적으로 부과하는 업무를 처리하는 데에 치여 살았으니 아무런 제약 없는 삶이 좋을 줄만 알았는데 막상 길을 잃기 일쑤였다. 아무도 내게 어디로 가라고 하지 않으니 무엇이 됐던 한 줄이라도 더 자기계발을 해야 한다는 부담감은 커지는데, 그 부담감이 강제로 주어진 자유를 정처도 의미도 없게 만들었다. 아무것도 하는 게 없어 보이니 부모님 속을 은근히 썩혔을 거다. 그러나 눈은 흐리멍텅했을지언정 머릿속은 과열되어 덜덜 끓는 김을 주체하지 못했다. (나 말고는 아무도 모르긴 했다.)


식생활의 변화(채식으로 전환 시도), 운동, 영어 등의 목표를 해내야 한다는 생각만으로도 좌뇌의 70%는 꽉꽉 채워졌다. 과부하에 걸렸다. 생각한 대로만 모든 것이 진행했다면 나는 지금쯤 의학 박사 자격증도 땄을지 모를 정도로 이루려는 목표는 너무 많았고, 허들은 높디 높았다. 그래도 욕심을 버릴 수가 없으니 목표 달성으로 가는 첫걸음부터 마음처럼 되지 않는 것은 당연했다. 그렇게 자포자기하는 횟수가 늘어만 갔고, 며칠을 침대에서 낭비해버리고 나면 조바심이 들어 다시 뭐라도 해보자며 계획을 세워보지만, 그것도 작심삼십분이었다.


당시의 일반적인 하루는 이러했다.

1. 아침 일찍 일어나자던 전날밤의 도원결의는 한낮의 반짝이는 태양이 반겨준다.
2. 두 가지 선택지로 갈린다.'오늘도 망했으니 아점이나 먹고 폰이나 보자' 파와 '그래도 가자 가 카페에 가자 파'.
3. 의지를 간신히 한 톨 정도 쥐어짜서 커피 한 잔과 BGM이 깔린 의자에 앉게되면 영어 깨짝, 독서를 깔짝거린다.
4. 그래봤자 별 소득 없이 시간을 보내기에, 집에 돌아오기에 차라리 침대랑 단짝을 할 걸 그랬나 하며 하루를 찝찝하게 마무리. 다음날은 기필코 아침 햇살을 먹겠다고 의지를 다잡으면서.


이런 생활을 2달쯤 반복하니 언젠가부터 무기력해져서 그마저도 하기가 힘들었다. 굼벵이도 나보다는 움직일 거 같았다.


시간은 무섭게 흘러서 10개월은 손살같이 나를 두고 가버렸다.





 

......



아~~ 나는 정말이지 엄청났다.

완벽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남극 연구기지 연구원이라면, 나는 이와 극단에 있는 북극곰과 친구 먹고서 동면 중인 곰 같았다. 내가 차라리 완벽주의자였더라면 탈모는 생길지언정 해야 할 일이 있으면 어떻게든 해내고 성취해내기라도 할 텐데. 나는 이게 대체 뭐하면서 사는 거람? 한 뼘이라도 의욕을 일으켜 세워보고 싶은데 그것조차 불가능해진 생활은 괴로웠지만 출구가 어디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런데 그런 내가 사실은 '완벽추구형인간'이기 때문에 게으를 수밖에 없었다는 게 밝혀졌다.





완벽주의는 무슨 일을 하든지 항상 완벽하게 해내려는 정신 상태로, 남들과는 다르게 훌륭하게 일을 해내려는 노력과 정성이 깃들어져 일을 무사히 마치면 다른 사람들에 비해서 엄청난 보상을 받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이러한 특징을 지닌 사람들 중 일부는 무언가를 완벽하게 완성하지 못한다면 애초에 손도 대지 않는 경향이 강하다.




아니, 완벽하지 못할 바에야 애초에 손도 대지 않는다고? 이건 나인데?


한 끗 차이였구나.


완벽하기 위해 자신을 채찍질하며 명을 깎아먹으면서도 완벽을 기하는 사람과

완벽한 모습만을 꿈꾸는데 그게 안되니까 애초에 아무것도 실행하지 않고 미루기만 하는 사람 모두 같은 뿌리에서 기인된 거였다니!

완벽주의와 정반대 끝에서 사는 것 같은 나 또한 완벽주의의 끝판왕이었던 것이다.

지금껏 의지박약하고 게을렀던 이유가 '자포자기'가 완벽하고 싶은 마음에서 비롯된 거라니.

헛웃음이 나지만 어쩌겠는가. 일단 인정을 해야했다.









작가의 이전글 네 농담, 하나도 안 웃겼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