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의 미학
뜬 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길고 긴 새벽이었다.
어딘가로 훌쩍 떠나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고 싶은데, 약 3년 동안 회사를 다니며 모아둔 돈을 2개월 동안 야금야금 썼던 터라 슬슬 회사를 알아보지는 못할망정 여행을 떠날 생각을 하는 내가 한심하게 느껴졌다.
생각이 많아져서 요 근래 계속 밤을 새웠고, 가만히 누워있는데도 머리가 어지럽고 아팠다. 속도 미슥거렸다. 몸은 피곤하고 마음도 지쳐있는데 생각은 많고 정신은 비몽사몽. 그래서였을까. 동이 틀 무렵 나도 모르게 담양을 가는 제일 빠른 고속버스를 예매했다. 손에 집히는 책 한 권과 간단한 짐을 싸고 출발했다.
담양에 도착해 가장 먼저 발걸음 한 곳은 죽녹원 근처의 대형 카페였다. 꼭대기층으로 가면 한쪽 벽이 통유리로 되어있는데 그 밖으로 강가와 죽녹원이 보여서 푸른 풍경을 즐기기에 제격이었다. 가져온 책을 집어 들었다. '걷기'에 관한 책이었다. 읽다 보니 '내가 이 여행을 떠나온 목적'이 뭔지 윤곽이 잡히는 기분을 느꼈다.
정리되는 생각들. 이것들을 그냥 흘러 보내면 나중에 잊혀지고 또다시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무는 미련한 짓을 반복할 것 같아, 건물 1층에 위치한 편의점으로 가 수첩과 볼펜을 구매해 적어내려 갔다. 생각을 정리하는 방법으로 글을 쓰는 게 효과적이라는 사실은 처음 몸소 경험했다. '꽤 괜찮은 방법이군' 생각했다.
이 세상의 모든 굴레와 속박을 벗어던지고
첫 회사로 몸을 담았던 모 회사는, 나에게 인턴 기회를 준 회사였다. 학점도 대외활동도 (흔히 말하는 스펙이) 별 볼일 없던 내가 내세울 것은 학과에서 했던 웹진 활동 뿐이었다. 4년 동안 웹진 동아리에서 페북, 블로그를 운영하며 콘텐츠를 기획/제작했다. 홍보대행사였던 회사는 나의 웹진 활동을 높이 샀고 덕분에 인턴으로 입사해 여러 브랜드의 SNS 채널 운영과 콘텐츠 기획을 담당할 수 있었다. 인턴 6개월 이후, 정규직으로 전환되었다.
퇴사를 한 이유는 크게 세 가지인데 첫 번째는 기다리고 기다리던 내일채움공제 2년형이 끝났기 때문이고, 두 번째는 이제라도 제대로 퍼포먼스를 배우고 싶어서였다. 진입장벽이 낮은 이 업계에서 전문성과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디지털 시대에 전망이 좋은 분야라고 생각했다. 세 번째는 소속해있던 A팀의 팀장님. '이 분을 상사로 두어 무엇을 배울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없었다. 결정적으로 가스라이팅이 심해 정신적으로 많이 힘들었다.
A팀에 합류한 지 3개월쯤 지나자 자존감이 바닥 쳤고, 스스로 업무 스트레스를 컨트롤할 수 없는 상황까지 이르렀다. 내 역량 밖의 문제였다. 덮친 격으로 팀원 중에서 이런 어려움을 공유할 만한 사람이 부재해 나 혼자 속앓이 해야 했다. 결국 우울증 증세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A팀에서 나오지 않았다. 퍼포먼스 마케팅을 얕게나마 꼭 배우고 싶다는 집념 하나 때문이었다.
그때의 나는 망망대해 바닷속 아주 깊이 잠겨있는 기분이었다.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에서 민선아(신민아)가 우울증을 겪는 모습이 나오는데, 온몸이 물에 젖어 솜처럼 축 쳐저있는 모습과 손끝에서 물이 뚝뚝 떨어지는 연출을 보고 우울증 증세를 잘 표현했다고 생각했다.
다시 3개월이 지나고, 봄이 올 무렵이었다. 나는 당시 A팀과 동시에 B팀에도 소속되어 있었는데, B팀에 내 또래의 새로운 디자이너가 투입됐다. 추운 겨울이 지나 봄처럼 찾아온 사람이었다. 일적으로도 정말 잘 맞았을뿐더러 회사에서 맞닥뜨리는 여러 어려움을 함께 공유하며 빠르게 가까워진, 존재만으로 의지가 되었던 언니. 덕분에 우울증 증세는 점차 사그라들었고 회사를 계속해서 다닐 수 있었다.
목 빠지게 기다렸던 내일채움공제 만기. 더 이상의 배움도, 팀장의 업무 행태나 커뮤니케이션 방식이 개선되는 것도 기대할 수 없었던 이 회사를 더 다닐 이유가 없었다. 만기를 한 달 앞두고 퇴사 의사를 밝혔고, 내채공이 끝남과 동시에 회사를 그만두었다.
쨍하고 해 뜰 날 돌아온단다
나는 내가 그곳에서 도망쳤다고 생각했다. 이 세상에 감내 못 할 건 없고 감내는 내 몫이니 내가 그 몫을 다 하지 못했다고 생각했다. 물론 퇴사 이유는 앞서 말한 것처럼 여러 가지가 있었으나, 결국은 나 스스로가 비겁했다고 결론 지은 것이다. 하지만 생각을 고쳐먹었다. 이 또한 1년 반 동안 팀장에게 가스라이팅 당한 내가 습관처럼 나 스스로를 옭아맨 것임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다'라는 말이 있지만 나는 그렇게 말하고 싶지 않다. 도망친 곳에 낙원이 있을 수 있다. 아니 '도망쳤다'라는 것이 비약일 수 있다. 비로소 숨통이 트였다면? 그것이 도망이 아니라 해방이었다면? 애초에 도망칠 때 낙원이 있길 바라고 도망치는 사람이 있던가. 나의 경우는 그곳이 절벽이더라도, 적어도 내가 날개를 갖고 있단 걸 알 순 있겠다는 생각으로 그곳을 벗어났다.
나는 퇴사하고 나서 비로소 나의 가능성을 알았다. 세상은 넓고, 아직 남은 인생이 구만리인 나에게 경험하고 배울 것이 천지에 깔려있으며, 마케팅 업무를 배우는 것이 여전히 새롭고 짜릿한 주니어니까! 사실 전 회사에서의 업무 경험이 아쉽긴 하지만 이지영 강사님의 말마따나 이게 내 경력이나 능력치를 통째로 부정하는 것이 아니므로 천천히 그리고 꾸준히 스스로 증명해낼 것이다.
인간은 불안함을 겪어내며 성장한다고 한다. 1박 2일의 짧은 담양 여행을 마치고 나의 불안이 성장통임을 알았다. 최근에는 진로와 관련된 여러 걱정들을 의연하게 받아들이고 건강한 고민을 하며, 나에게 업무적으로 다양한 배움의 기회를 줄 수 있는 회사를 새롭게 알아보고 있다.
마음이 지옥 같았던 때도 흘러갔다.
안 되는 일 없단다 노력하면은
쨍하고 해 뜰 날 돌아온단다
아이유가 자신의 노래 <분홍신>의 '내 운명을 고르자면, 눈을 감고 걸어도 맞는 길을 고르지'라는 가사를 미신처럼 믿는다고 한다. 나는 송대관 선생님의 노래 가삿말을 미신처럼 믿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