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상처엔 수술이 필요하다.
나라 걱정을 이렇게나 많이 한 일주일이 있나 싶다. 뉴스를 이렇게나 많이 자주 본 일주일이 있나 싶다. 일상은 생각보다 간단히 무너질 수 있음에 너무나도 많은 사람이, 그리고 나도 충격받았다. 회사나 개인의 고민들은 상대적으로 뒷전에 밀렸다. 일주일 전으로 간단히 돌아가기에는 모두가 함께 너무 큰 상처를 입었다.
당황스럽고 충격적인 여러 장면들이 있었지만, 그중에도 이 상황에 이르기까지 관련된 여러 사람들의 입에서 ‘나는 그저 내 역할에 충실, 명령에 따랐을 뿐’이라는 이야기들이 제법 많았다. 직접적인 최고책임자였던 대통령도 ‘대통령으로서‘ 그와 같은 일을 자행했다고 하고, 명령에 따랐던 군책임자도 ’명령에 따랐을 뿐‘이라고 하고, 이를 수습하거나 대응하는 당의 책임자도 ’당책임자‘로서 당의 의견을 따를 뿐이라고 했다. 당의 의견에 따라 탄핵표결에 참석도 않은 105명의 국회의원들도 그랬다. 그저 당의 의견을 따랐다. 그들이 했던 모든 행동은 많은 비난의 대상이 된 행동들이었다. 그저 자신의 행동이 어떤 영향을 미칠지 생각하려고도 하지 않은 게으름이거나, 자신만의, 특정 소수만의 이익을 위해서만 생각한 치우치고도 왜곡된 생각들이었다. 비유가 적절할지는 모르겠으나, 독일나치부역자들, 즉 가스실을 관리했거나, 아우슈비츠 열차를 운행했거나 하는 식의 사람들이 재판에 불려 와서 한 말도 똑같았다. 나는 그저 시키는 대로 했을 뿐, 내 역할에 최선을 다했을 뿐. 자신의 행동이 어떤 결과를 낳게 되는지 생각하지 않거나, 앎에도 모른 척한 게으르고 비겁한 변명이다. 역할이라는 가면뒤로 손쉽게 숨은 것이다. 지난 일주일간 지금 이 시대, 내 나라에서 그런 이들이 뉴스를 통해 차례차례 나올 때마다 실망하고 또 절망했다. 같은 어른으로서 이를 그대로 지켜볼 어린이나 청소년들에게 너무 부끄럽고 미안했다. 쪽팔렸다. 나아가 쪽팔림에서 그칠 수 없는 안건들이라 너무나도 겁이 났다.
그 와중에 당연스럽게 굴러가야 하는 일상들이 너무 버거웠다. 출근도, 식사도, 운동도, 독서도 그대로 하면서도 이러한 일상을 지켜나가는 게 대체 무슨 의미인지 생각이 들었다. 일상이 더욱 심하게 무너진 다른 세계의 사람들이 떠올랐다. 일상이 더욱 심하게 무너졌을 과거의 사람들이 떠올랐다. 나는 이것도 견딜 수가 없는데, 너무나도 실망만 가득한데 그들은 어떠할까. 타인에 대한 보편적 상상력이 시도 때도 없이 튀어나왔다. 울컥이는 마음에 목구멍이 자꾸 따가웠다. 일상을 지켜나갈수록 그랬다. 운동을 하면서도, 독서를 하면서도 그 중간중간 딴생각에 빠졌다. 목구멍이 계속 따가웠다.
일상의 의미를 생각하다 보니, 왜 이러한 부조리와 불합리와 싸워야 하는지 그 의미에 대해서도 자꾸 나 자신에 질문했다. 저들은 저리도 당당하고 무자비하게 불합리와 폭력과 부조리를 만연하게 자행하는데, 나는 왜 그러지 않아야 하는가. 나는 왜 그것과 반대편 사람이어야 하는가. 나는 왜 그것과 싸워야, 맞서야 하는가. 왜 나만 그래야 하는가. 왜 우리만 그래야 하는가. 어린 시절 친구와 싸우다 친구가 때리더라도 나는 그러면 안 된다고 들었던 그날로 다시 돌아갔다. 억울했다. 저들은 저리도 역할놀이에 신나서 간단한 생각조차 않고 게으른데, 소수만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한 비겁하고 폭력적인 행동을 서슴지 않는데, 왜 나는, 우리는 이리도 착실하게 합리와 이성을 지키고나 노력하며 일상을 영위해 나가기 위해 그저 노력해야 하는가. 왜. 나만. 우리만. 왜. 왜라는 생각을 멈출 수가 없었다. 그때 문득 지난날의 내 모습들이 떠올랐다. 그동안에도 회사나 일상에서 부조리와 불합리는 만연했다. 내가 간접적이라고 무시하거나, 그 크기가 크지 않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을 뿐이었다. 나조차도 그런 대응에 소극적이고 게을렀다. 허나 그 부조리와 그 불합리도 누군가에게는 치명적인 폭력이 되었거나, 위해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그렇게 작게 시작된 것이 지금에 와서 벌어진 크나큰 사태로 에스컬레이팅 되었을지도 모른다. 생존을 위협하는 직접적인 사태로, 그야말로 우리가 분노하고 대응해야 하는 정도로. 부조리와 불합리는 언제나 있었다. 생존을 위협하는 작은 불씨로.
너무 많은 생각들이 연이어 꼬리를 물었던, 생각을 멈출 수가 없었던 일주일이었다. 너무 괴롭고 힘들지만 이 상처는 이제 큰 수술이 필요하다. 그런데 이 위에 작은 반창고밴드를 붙이려는 시도들이 너무 많다. 상처에 피가 철철 나고 호흡이 곤란한 상황이다. 그냥 뭉개고 넘어가서는 안 된다. 뒤집어, 헤집어 파서 너무 고통스럽더라도 후를 위해서는 당분간 혼란이 있어야, 싸움이 있어야 한다. 나 하나의 생각이 많아짐이 길어지고 혼란스러운 것은 아무래도 좋다. 이번만큼은 이 상처를 절대 뭉개면 안된다. 뭉갠 상처는 반드시 다시 덧난다. 제대로 치료해야 한다. 또 상처를 우리 스스로 내서는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