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 인센티브에 대한 기대가 대화주제로 오르기 시작할 때마다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 그 해는 평소보다 목표미달인 조직들이 수두룩한 해였고, 나는 입사 후 처음으로 ‘위로금’이라는 게 집행되는 걸 봤다. 목표를 달성한 정도에 따라 인센티브가 나오는 게 아니고, 목표를 미달했지만 애썼다, 는 느낌의 ‘위로금’. 선배들이 한숨을 많이 쉬길래, 심상치가 않은 일이구나, 고 생각했다. 그날 한 영업 쪽의 담당급 임원분이 인사팀에 와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걸 봤다. 너무 무섭게 항의를 하셨기에 제대로 쳐다보지는 못했고, 대충 얘기를 들어보면 이런 내용이었다. 목표가 터무니없이 잡혔다, 그래도 우리 직원들이 다 열심히 했다, 작년보다 더 했다, 그런데 이게 뭐냐, 사람 놀리냐, 대충 이런 식이었다. 위로금 따위 불쾌하다며 받지 않겠다고 하셨다. 계속해서 사무실이 소란스러워지자, 인사 쪽 팀장님과 우리 쪽 경영관리 팀장님이 그분을 진정시키고 밖으로 모시고 나갔던 것 같다.(보통 회사도 그렇겠지만 그 회사도 목표수립과 최종평가는 경영관리에서, 이를 인센티브로 집행은 인사에서 하기에 관련이 있는 두 부서였다.) 주위는 어수선했지만, 곧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조용해졌다. 나는 속으로는 아무리 속상해도 왜 저러실까, 하고 생각했던 것 같다.
야구 경기를 보다 보면, 감독이 심판판정이나 경기진행에 항의하는 일이 있다. 감독이 원래 호전적이고 다혈질인 경우도 물론 있으나, 대부분 ‘감독’이라는 역할을 하기 위해서 일부러 강하게 판정에 대해 얘기하는 경우가 많다. 보통 시합이 애매한 상황에서는 심판판정에 따라 유리한, 불리한 경우가 반드시 생기기 때문에, 특히 이런 상황이 한쪽에만 계속될 때는 팀의 사기가 많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억울하고 서운한 마음으로 제대로 된 경기가 될 리가 없다. 보통 그런 상황이 발생하기 전에, 혹은 발생했을 때 감독들이 더욱더 강하게 항의를 한다. 퇴장을 불사하고. TV중계에서도 감독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다고 말한다. 같은 팀의 팬들은 그런 감독을 오히려 응원한다. 열심히 분노하는 그를.
최근 무슨 얘기를 하다 그랬나는 잊었지만, 위로금에 분노하던 담당님이 다시 기억이 났다. 이제서야 아, 하는 생각을 했다. 일 년간 열심히 영업을 위해서 뛰었을, 그리고 이를 독려했을 그가 상심한 직원들을 생각하니 아무 행동도 안 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내 리더까지 이러한 억울하고 서운한 상황에 수긍하고 아무런 행동도 안 한다면, 나라도 사기가 많이 떨어졌을 것 같다. 그 담당님은 주위에서 본인을 회사사무실에서 소리나 지르는 난동꾼으로 보아도, 그럼에도 그렇게 해야 했던 것이다. 이제서야 어떤 의미에서는 이게 이상한 일이 아니구나, 고 생각했다. 물론 적어도 사무실은 소리 지르라고 있는 곳은 아니긴 하다. 그럼에도 나이가 들고 연차가 드니 그 담당님에게 보다 감정이입이 된다. 이해가 된다. 둘리가 아니라 고길동이 불쌍해지는 것처럼, 같은 일도 감정이입의 주체가 달라지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