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간 글로만 접하던 이의 성별이 여성일 거라고 혼자 착각하다가, 최근 오 년 만에 그가 남성임을 알게 되어 깜짝 놀란 일이 있다. 한 증권사의 연구원이신데, 시장을 보는 시각의 탁월함도 있지만, 이를 쉽고 간결한 문체로 표현함이 마음에 들어 몇 년간 그의 글을 따라 읽어왔다. 그의 이름이 성별로 따지자면 중성적, 아니 여성적이다 보니(내 편견에 내가 놀라 주위에 여럿 물어봤다.) 그리고, 사실 성별이 아니라 글이 중요한지라 따로 얼굴을, 사람을 찾아봐야겠다는 생각이 없었던 것 같다. 그러다 최근 우연히 유튜브에 검색할 일이 있었는데, 동명이인인가 하고 한참을 의아해하다 문득 사실을 깨닫고는, 지난 몇 년간 내가 편견을 가지고 있었구나를 알고 혼자서 낯이 뜨거웠었다.
몇 년 전 이직 때의 일이다. 면접장소로 안내된 회사건물이름이 ‘ㄱ빌딩’이었다. 회사 근처에 ’ㄱ빌딩‘이 있었기에, 그리고 언뜻 본 주소가 같은 구이길래, 내가 알고 있는 그곳이구나 생각했다. 면접을 보기로 한 당일까지 그렇게 철석같이 믿고 있었다. 그런데 면접시간이 다가올수록 설명할 수 없는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무언가를 놓치고 있거나 잘못되고 있다는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면접준비는 잘 되고 있었고, 당일 컨디션도 좋고 뭐가 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러다 면접안내를 받은 메일을 다시 열어봤다. 찬찬히 글을 읽었다. 갑자기 너무 놀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ㄱ빌딩‘ 주소가 어쩐지 달라 보였다. 알고 보니 ’ㄱ빌딩‘은 2개가 있었는데 내가 갈 곳이라 생각했던 그곳은 내가 가야 할 곳이 아니었다. 면접시간 전에 이를 깨달아 장소를 바꾸어 도착에는 지장이 없었다. 다만, 처음 장소를 잘못 알았음을 깨달았을 때 놀람과 황당함, 부끄러움. 아직도 그때만 생각하면 아찔하다.
확신을 가지는 것은 대체로 좋은 영향을 줄 때가 많다. 어떤 어려움이 있을 때 내가 할 수 있다는 확신, 이겨낼 수 있다는 확신 같은 류는 스스로나 주위에 동기부여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어떤 ‘사실’에 대한 잘못된 확신은 작은 실수나 상대방에 대한 실례 등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나의 에피소드들은 다행히 나 혼자 부끄럽고, 나 혼자 허둥대는데에서 그쳤지만 말이다. 그런데 ‘가치판단’에 대한 확신은 무서운 재앙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지난 며칠 이를 뼈저리게 깨달았다. 잘못된 편향적 확신이 개인을 넘어 가정, 사회, 국가전체를 얼마만큼 뒤흔들 수 있는지, 이를 대응하고 되돌리고 회복하는데 얼마만큼의 다른 이들의, 모두의 노력이 필요한지. 내가 맞다는 생각, 내가 옳다는 생각, 이를 넘어서 다른 이들이 잘못생각하고 있다는 강한 믿음, 확신이 들 때 정말 그것이 옳은지, 내가 맞는지 다시금 생각해야 한다. 내가 틀릴 수도 있음을, 내 생각이 타당하지 않을 수도 있음을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한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이 다가 아닐 수 있음을, 어제까지의 정답이 오늘 오답이 될 수도 있음을 항상 생각해야 한다. 우리가 가져야 할 확신은 이 오답과 맹신을 뛰어넘어 다시금 바로 생각하고, 바로 배우고, 바로잡을 수 있다는 ‘가능성’ 단 하나다. 완벽한 정답은 없다. 내 생각만이 정답이고 상대가 바보 같아 보일 때 제발 한번 이를 의심해 보자. 제발 쫌.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