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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키비스트 Jul 20. 2020

사라진 원주민 여성들

눈물의 하이웨이

여기 사라진 여성들이 있다.
그들은 살해되거나, 실종되었다.
 바로, 인종화되고 주변화된 캐나다의 원주민 여성들이다.  


(RCMP의 최초 보고서에 기록된 18명의 실종된 원주민 여성들 - 출처: https://www.cbc.ca/news/canada/british-columbia/rcmp-say-mmiw-highway-of-tears-missing-and-murdered-women-cases-may-never-be-solved-1.3805609)


운이 나빠 납치를 당하거나 살해를 당한 개별적 사건들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19세기 후반부터 시작된 식민화 과정에서 원주민 여성들은 구조적 차별의 대상이었고, 지금까지도 캐나다가 그들을 동등한 사회 일원으로 취급하지 않은 결과이다.


사라진 여성들에 대한 정확한 숫자는 알 수 없다.


시작은 이러하다. 벤쿠버가 속한 브리티쉬 콜롬비아 주 북쪽에는 16번 고속도로 (약 720km)를 따라 20여 개의 원주민 마을들이 있다. 고립무원의 환경, 오로지 고속도로 한 개의 길만이 외부세계와 연결되어 있으며, 한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공공교통 시설 따위는 2017년도까지 존재하지 않았다. 지난 글에서 언급했다시피, 대다수 원주민들은 빈곤을 겪고 있기에 개인적으로 교통수단을 구입, 이용하기에도 쉽지 않다. 보통은 마을에서 마을로 이동시, 히치하이킹이 지리적 이동수단이었다.


어느 순간 16번 고속도로에서 히치하이킹으로 이동하던 원주민 여성들이 하나, 둘 사라지기 시작하고 경찰이 무관심으로 일관하자, 성난 원주민들이 이 사건에 대해 집단적으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RCMP (캐나다 왕실 기마 경찰대: Royal Canadian Mounted Police)가  수사에 착수하여 1969년-2006년까지의 실종사건 수사결과를 발표하게 되는데, 단지 18명의 원주민 여성과 소녀들을 피해자로 특정했다. 반면, 원주민들은 그 수사결과보고서는 정확하지 않으며, 사라진 원주민 여성들의 숫자는 그보다 훨씬 많다고 주장하였다. 고립무원의 720km에 이르는 길에서 사라진 이 한 많은 여성들을 생각하며, 사람들은 16번 고속도로를 "눈물의 하이웨이 (highway of tears)"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출처 - 뉴욕타임스 https://www.nytimes.com/2016/05/25/world/americas/canada-indigenous-women-highway-16.html)

(출처-National Post : https://nationalpost.com/news/canada/highway-of-tears-murders-could-involve-serial-killer-report)


결국, 국제 인권단체의 하나인 Human Rights Watch가 조사에 개입하여 브리티쉬 콜롬비아주가 캐나다에서 가장 많은 미해결 여성 실종사건을 가지고 있다고 결론 내었다. 나아가 2015년 주정부 차원에서 행한 실태조사에 따르면, 약 1200여 명의 원주민 여성과 소녀들이 전국에서 살해되거나 실종되었다고 한다. 트루도 자유당 집권 후, 살해되거나 실종된 원주민 여성들에 대한 조사와 해결책의 일환으로, 16번 고속도로에는 이제 3개 루트의 버스가 다니고 있지만, 여전히 부족한 실정이다. 그리고, 빈곤으로 내몰려 성노동을 하거나, 히치하이킹으로 이동하는 원주민 여성들의 실종과 살해는 전국적으로 멈추고 있지 않다.   


문제는, 자그마치 반세기가 지나도록 이 끔찍한 사건에 대해 무관심으로 대처해 온 캐나다 사회에 있다. 백인 정착자의 나라 (white settler's nation) 캐나다는 여러 가지 방식으로 원주민의 숫자를 줄여나가며 식민국가 건설을 공고히 해왔기에, 원주민 여성들의 실종에 대한 무관심 역시 하나의 식민기제였던 것이다.


또한, 식민화 과정에서 인종주의와 여성 혐오는 교차한다. 대게 원주민 사회에서, 전통적으로 여성들은 남성들과 동등하거나 존경받는 위치를 점해왔다. 가부장적 식민사회가 시작되며, 예컨대 가톨릭 신부들은 원주민 남성들에게 여성들과 아이들을 폭력(매질)으로 길들이는 법을 가르치기도 했고, 제도적으로 우리나라의 "호주제"같은 법을 만들어, 여성들의 지위를 격하시켜버렸다. "창녀, " "쉬운 여자, " "가난한 싱글맘 (사회복지를 갉아먹는다는 식), " 등 온갖 편견으로 점철된 원주민 여성에 대한 혐오로, 그들은 실종, 살해를 당해도 싸다는 식의 태도가 이 사회에서 지배적이었다. 가난한 원주민 여성이 생존의 선택으로 성노동을 하며 히치하이킹을 하다 살해당한 경우, 오히려 피해자인 여성을 비난하는 것 등의 가부장적이고 여성 혐오적 태도 같은 것들 말이다. (마치, 미니스커트를 입고 살을 드러내고 다닌 여성이 성폭력의 희생자가 되어도 마땅하다는 식의 시각처럼)


정확한 숫자는 알 수 없는, 하지만 적어도 1200여 명의 원주민 여성들과 소녀들이 사라진 캐나다에서, 금발의 백인 그것도 "미국인" 소녀가 사라진 뉴스는 쉽게 주류 매체를 타고 알려진다. 2011년 한 백인 캐나다 여성이 눈물의 하이웨이 근방에서 실종되었을 때에도, 매체는 급속도로 그 사실을 전국 뉴스로 전했고, 실종자에 대한 간판을 세우고 보상금도 마련하였다. 너무도 어처구니없지 않은가 말이다! 원주민 여성들은 동등한 여성인권을 가지고 있지 않음을, 눈물의 하이웨이라는 사례가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2017년 눈물의 하이웨이에 만들어진 버스 루트는 아직도 불충분한 시스템이며, 그레이하운드 버스 역시 2018년 이후 서비스를 대폭 줄여버렸다. 빈곤한 원주민 여성들의 삶을 향상하기 위해서는 결국 "공공"의 자원과 시스템이 정착 되어야 한다. 불행히도 공공의 것들이 모두 개인의 무한책임으로 전환되고 있는 신자유주의 만트라 앞에서, 이 또한 쉽지 않아 보인다.


이처럼, 캐나다에서는 모든 여성이 동등한 권리를 갖고 있지 않다. 원주민 여성뿐만 아니라, 인종화된 소수민 여성, 레즈비언, 트랜스, 빈곤여성, 장애여성은 백인 중산층/상류층 여성과 사뭇 결이 다른 삶을 살고 있다. 그렇기에 이 땅위에서의 여성인권과 여성주의 운동은 주변화되고 계급화된 여성들에 대한 논의를 생략할 수 없으며, 캐나다라는 사회, 역사, 정치의 구체적인 맥락 안에서 면밀히 검토되어야 할 것이다.


지구화시대에 여성주의가 인종, 계급, 성, 장애, 식민역사 등을 아울러야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 캐나다의 원주민과 기숙학교 - https://brunch.co.kr/@archivist/3

* 인종간 입양: 문화학살과 60's scoop - https://brunch.co.kr/@archivist/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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