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는 끊어도 담배는 못 끊어
8년 전이다. 하루 한 끼를 무작정 시작한 것은 체중이 89kg을 찍을 때였다. 외모도 외모지만, 무기력해지고 짜증이 많아지는 것이 싫었다. 살을 빼야 했다. 무작정 굶었다. 물도 시간을 정해놓고 먹었다. 배가 너무 고프면 입에 침을 모아서 혓바닥으로 구강을 청소하듯 샅샅이 문질러서 뭐라도 걸려라 하는 심정으로 모아 삼켰다. 어떤 때는 설탕이 안 들어간 비싼 치클 껌을 씹으며 허기를 채웠다. 저작운동을 해주면 허기를 느끼는 뇌를 속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얄팍한 수였지만 효과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한 달이 고비였고 그 이후로는 비교적 수월했다.
3달 만에 68kg을 기록했다. 고3 때 몸무게인 65kg이 목표였지만 68kg 이하로는 더 내려가지 않았다. 체성분 체크 결과도 근육량은 평균 이상이었다. 하루 한 끼 먹으면서 퇴근 후 집 짓겠다고 사놓은 땅에 남아있던 헌 집 리모델링을 위해 밤 10시까지 과한 육체노동을 해도 힘들지 않았다. 주말과 일요일은 온종일 중노동을 해도 한 끼 식사로 충분히 견딜 만했다. 그런 내 모습을 지켜보던 아내는 ‘그러다 죽어!’ ‘그러다 몸 축나!’ ‘그러다 쓰려져!’를 반복해가며 나를 만류했지만, 컨디션을 늘 최상이었다.
그렇게 하루 한 끼를 실천한 것이 5년을 이었다. 약 3년 전부터 한 끼의 경계가 무너지기 시작했다. 어떤 날은 한 끼, 기분 내키는 날은 세 끼, 대체로 두 끼가 지배적이다. 경계가 무너진 후 3년이 지난 시점인 현재는 75Kg 전후로 오락가락한다. 신장 170에 75kg 이면 다소 과체 중인 편이지만 불편함은 없다.
당분간은 이렇게 지낼 것이다. 매일 저녁 반주로 반드시 소주 1병을 비워야 하는 술 습관을 버리면 체중을 금세 줄어버릴 것 같다. 천사가 흘린 악마의 눈물인지, 악마가 흘린 천사의 눈물인지 이젠 음주도 슬슬 버거워진다.
같은 8년 전의 일이다. 하루 한 끼 실천하면서 3일 단식도 체험을 해봤다. 물도 한 방울 먹지 않는 단식이었다. 물을 먹는 단식은 회복 기간 동안 죽을 먹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해서 그냥 '물 없는 단식 3일'을 무작정 화끈하게 시작했다. 단식을 마치고 먹는 끼니는 평소 먹던 밥이나 국 찌개류를 내키는 대로 먹어도 된다고 했다. 단 식사 전에 막걸리 반병 정도를 마셔서 빈속을 미리 데워주어야 한다는 단서가 붙어있었다. 이상한 단식법이었지만 막걸리 대목은 무척 황당하면서도 땡큐!였다.
단식 3일을 실천하는 동안 직장 일에 별다른 지장을 미치지는 않았지만 극도로 힘을 아껴야 했다. 갈증을 견디기 어려울 때는 샤워를 하는 방법으로 수분을 보충했다. 기운은 없었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무엇인가 몸에서 빠져나가는 듯한 기운을 감지할 수 있었다. 온몸이 완전히 투명해지는 듯한 느낌이 주는 황홀감과 공중부양이 생각날 정도로 종잇장처럼 가벼워진 듯한 느낌은 멋진 선물이었다. 단식을 마치는 날이 마침 일요일이었고 오전에 우리 집을 설계해 주실 건축사를 만나는 날이었다. 아내와 함께 청담동을 들러 미팅을 마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팔당댐 주변에서 3일 만에 첫 식사를 막걸리 빈병과 된장찌개로 맛있게 먹었다. 의심스러운 단식법이었지만 결과는 무척 좋았다.
아내와 헤어진 후 체력 테스트를 위해 팔당댐 주변 예봉산( 해발 640이었던가 무척 가파른 산이었다.)을 넘어 남양주시 덕소리에 위치한 아파트로 귀가하는 무모한 짓도 성공했다. 와중에 길을 잃어 덕소가 아닌 양평 양수리 방향으로 길을 잘못 드는 바람에 9시간 가까이 걸렸다.
그 후로 기분이 동할 때마다 3일 단식을 했었고 어떤 때는 3일에서 그치지 않고 5일로 연장하고 싶은 때도 있었다. 그렇게 '물 없는 3일 단식'이 패턴으로 정착 될 듯할 때 끊었던 담배를 다시 피우기 시작했다. 단식을 할 참인데. 물도, 밥도 없이 공기만 먹고살아야 할 참인데, 담배를 피울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3일간이라도 담배를 참았어야 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그 후로 단식을 이용한 건강관리는 그렇게 물 건너 갔다. 오늘도 열심히 뻐억 뻐억 피워댈 것이다.
'3일 단식하고 싶은데 이놈의 담배 때문에 못하겠네...'하면. '물도 끊고, 밥도 끊는데 그깟 담배 3일 못 끊나?' 하는 아내에게 붕대로 귀 자른 자리를 칭칭 동여매고 담배 파이프를 물고 있는 고흐의 ‘귀 자른 자화상’을 보여준다. 그러고는 조폭 캐릭터로 변신한 후 대꾸해 준다. “고흐 행님이 내한테 그캤다 아아가!. 귀는 끊어도 담배는 몬 끊는다고!” “훌륭하신 분 아이가, 으이?” "맞제?"
근래 ‘담배 좀 끊어 아빠! ’ 하며 아내보다 더 채근해대는 딸아이를 볼 때마다 45년을 넘어 피워온 담배 끊을 수 있을까? 끊을 수 있을까? 하다가 혼자 킬킬대며 '귀라도 끊어야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