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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해씨 Sep 21. 2023

밥 그릇 경전  이덕규

밥그릇 경전


                        -  이덕규  -

어쩌면 이렇게도 

불경스러운 잡념을 싹싹 핥아서

깨끗이 비워놨을까요

볕 좋은 절집 뜨락에

가부좌 튼 개밥그릇하나

고요히 반짝입니다


단단하게 박힌 긂강 말뚝에 묶어

먼 산을 바라보다가 어슬렁어슬렁 일어나

앞발로 굴리고 밟고

으르렁 그르렁 물어뜯다가

끌어안고 뒹굴다 찌그러진

어느 경지에 이르면

저렇게 마음대로 제 밥그릇을

가지고 놀 수 있을까요


테두리에

잘근잘근 씹어 외운

이빨 경전이 시리게 촘촘히

박혀 있는 그 경전

꼼꼼히 읽어 내려가다 보면

어느 대목에선가

할 일 없으면

가서 '밥그릇이나 씻어라' 그러는



데뷔: 1998년 현대시학

수상: 2016년 제9회 오장환문학상  '현대시학작품상'  '시작문학상'  

시집: 다국적 구름공장 안을 엿보다』『밥그릇 경전』『놈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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