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그릇 경전
- 이덕규 -
어쩌면 이렇게도
불경스러운 잡념을 싹싹 핥아서
깨끗이 비워놨을까요
볕 좋은 절집 뜨락에
가부좌 튼 개밥그릇하나
고요히 반짝입니다
단단하게 박힌 긂강 말뚝에 묶어
먼 산을 바라보다가 어슬렁어슬렁 일어나
앞발로 굴리고 밟고
으르렁 그르렁 물어뜯다가
끌어안고 뒹굴다 찌그러진
어느 경지에 이르면
저렇게 마음대로 제 밥그릇을
가지고 놀 수 있을까요
테두리에
잘근잘근 씹어 외운
이빨 경전이 시리게 촘촘히
박혀 있는 그 경전
꼼꼼히 읽어 내려가다 보면
어느 대목에선가
할 일 없으면
가서 '밥그릇이나 씻어라' 그러는
데뷔: 1998년 현대시학
수상: 2016년 제9회 오장환문학상 '현대시학작품상' '시작문학상'
시집: 다국적 구름공장 안을 엿보다』『밥그릇 경전』『놈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