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른손 잔혹사
1. 설거지에 너무 열중하느라 힘이 과도했다. 아니 그릇 어딘가에 결함이 있었거나 금이 가 있거나 했을 수도 있다. 그릇이 깨지며 오른손 검지에 깊고 길게 분열이 일어나 4바늘을 꿰맸다. 병원 후송을 위해 잠에 취해있는 아내에게 달려가는 나의 왼손은 선혈 범벅인 오른손 검지를 움켜쥐고 있었다. 혼자 다녀오라는 무심하고 건조한 대답이 있었다. 운전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님을 몰랐기 때문이었겠지만 서운했다. 뜨거운 피가 멈출 줄 모르는 손가락을 화장지로 말아 움켜쥔 채 조수석에 앉았다. 대신 운전을 해준 냉혈한과 함께 무사히 함께 병원에 다녀왔다. 떡 본김에 굿이라고, 의사 선생님의 권유로 파상풍 예방주사도 맞아야 했다. 손가락도 아팠고 엉덩이도 아팠다. 아내가 마당에 심어놓은 우아한 바늘꽃이 그날따라 잔인해 보였다. 많이 아팠지만, 가족을 위한 청결 정신이 구체적인 징표로 물화 되었으니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오오. 나의 위생관념을 증명하는 거룩한 표상이여! 하며 위로했다.
2. 집 고치기 놀이에 열중하다가 재미있어야 할 놀이가 망치로 제 손을 가격하는 제법 매저키스틱한 놀이로 돌변했다. 엑스타시가 동반할 리 절대 없다. 내가 알고 있는 욕지거리 중 가장 효과적인 욕 하나를 골라 망치에다 해주었는데 사실은 내 왼손에다 해주어야 할 욕이었지 않았을까? 어쨌든 나와는 상관없다. 그 모든 욕됨은 저들 망치와 왼손 탓일지니 누구든 욕먹어도 싸다.
3. 바느질 당한 손에 장갑 끼기 불편해 맨손에 쇠스랑으로 밭 갈기 놀이했다. 너무 재미가 있었는지 밭에 주어야 할 물이 오른손 엄지에 안쪽의 연약 지대에 많이 고였다. 그 고인 물이 평화로운 호수 같은 것을 떠올리는 것은 4차원에서나 가능할까? 윌리엄 예이츠의 작은 오두막, 아홉 이랑의 콩밭, 벌통이 등장하는 집짓기 노래와 호수 섬 이니스프리를 떠올렸다. 이런 걸 주책이라고 그러나? 주사라고 그러나? 막걸리를 마신 입으로 그곳을 후후 불어주었는데 쉰내만 나고 효과가 있을 리가 만무했다. 난데없이 표피가 벗겨진 채 세상을 처음 만나는 그 순결한 곳에 혼탁하고 역겨움만 가득한 호흡으로 더욱더 쓰라렸다. 정신을 가다듬었다. 누구를 욕할 일이 아니다. 이 모든 것이 신중하지 못한 자신의 허물임을 깨닫고 모든 일에 신중함을 도모하자고 나는 나의 모든 부주의와 마침내 헤어질 결심을 했다.
4. 황홀경이 있을 리 없는 매저키스틱한 놀이를 두 번째로 시전했다. 불가의 <잡아함경>에 이르길 "두 번째 화살은 맞지 마라" 했는데 나는 불가의 제자가 아님만을 위안 삼아야 했을까? 자신의 어리석음이 뼛속까지 사무쳐 왔다. 구제받아야 할 최하급의 중생. 그 대열 그 어디쯤 초라하게 서 있는 내 모습이 눈에 어른거렸다.
5. 망치로 정확히 조준 가격하듯 꿰맨 자리를 두들겨 '망치로 제 손 때리기의 완전 종결자'가 되었고, 꿰맨 자리 일부를 2차로 분열시켰다. 아니 파열시켰다. 그 순간 내 전두엽이 폭발적으로 분열되는 듯했고 곧이어 열반의 경지에 들것 같은 기분에 휩싸였다. 그런 황망한 중에도 내가 아는 되먹지 못한 욕지거리를 최대한 많이 소환하여 따발총 쏘듯 내뱉었다. 그래도 그 고통이 사라지지 않아 겅중겅중 뛰다가 뱅글뱅글 돌다가 뒹굴뒹굴 뒹굴다가 하니 가련한 육신이 원심분리 지경에 들것 같아 호흡을 최대한 고르는 방법으로 안정을 되찾았다. 담 그늘에 던져지듯 쪼그리고 앉았다. 하도 어이가 없어 고만 눈물만 줄줄 흘리고 말았다. 잠시 진정이 되었나 싶어 눈물을 감추느라 오른손을 황급히 움직였다. 손가락을 꿰맨 봉합사가 눈알 아래를 찌르며 쓸고 지나갔다. 꿰맨 자리의 잦아들던 고통은 화약에 불이 붙듯 했고 눈마저 쓰라린데 이제 뱉어낼 욕도 고갈되고 그럴만한 정신력도 없어져 버렸는지 고만 머리를 벽에다 꽝꽝 부딪쳤다. 그렇게 꽝꽝 머리를 부딪치며 어디론가 사라지고만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