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도 안다. 엄마가 아파서 그런다는 것을...
나도 엄마한테 참을만큼 참았어!
엄마가 5년동안
우리 다윤이 봐준건 너무 고맙지만
엄마가 다윤이 안봐줬으면
엄마가 이럴때마다 다 받아주지도 않고
진작에 연락 끊었을거야!
엄마한테 30년동안 상처받은거
나 하나로 족해
우리 다윤이랑 다윤이아빠까지
상처받게 하고 싶지 않아
당분간 연락 차단할께
정혜는 집으로 오는 차 안에서
엄마에게 카톡을 보냈다
그리곤 카톡, 전화 모두 수신차단 했다
물론 정혜도 알고 있다
그녀가 한번 더 참았으면 됐을 것을.
이성적이지 못한 엄마에게
그 말 한마디만 하지 않았으면 됐을 것을.
"엄마, 엄마 이번 달 말에 생일이잖아!
27일 이른 저녁으로 새로 생긴 뷔페 가보는거 어때?"
"오! 좋지 그래 일단 네가 그럼 예약해..
잠깐만...그 날이 27일인가?
안 된다! 나 그 날 광화문에서
차별금지법 반대 집회 참석해야해. 그 날은 절대 안된다."
"......알았어. 그럼 그 다음주? 11월 3일?"
"그래! 그 날이 좋겠네. 네가 정민이네도 말해놔라.
다시 얘기하지만 27일은 절대 안된다.
차별금지법이라니...내가 무조건 거긴 꼭 가야된다."
"휴......엄마. 차별금지법이 뭔지나 알고 반대하는거야?"
이 말이 도화선이었다.
"뭐라고? 야 이 기집애야. 네가 어디서 엄마를 가르치려고 들어."
정혜는 아차 싶었다.
"나라가 미쳐서 헛똑똑으로 돌아가. 아주.
하나님이 만드신 섭리를 무시하고 동성애 찬성이라니!
그리고 학교에선 아주 너같은 교사들이 문제야.
어디서 창조론을 안가르치고
진화론을 가르쳐 가르치긴!"
여기서부터는 겉잡을 수 없었다.
온갖 쌍욕이 5분 정도 퍼부어댔다.
친정 식구들과 오랜만에 함께 점심을 먹고
돌아가는 차 안.
정혜의 부모님, 정혜의 아들 다윤, 다윤아빠까지 있었지만
엄마의 불길은 시간이 갈수록 더 치솟았다.
"거 그만해라. 무슨 말을 그렇게 하노!"
정혜의 아빠가 듣다 못해 한마디 했다.
"당신은 좀 가만 있어!
아주 개같은 것들이 너희가 CBS방송을 보길 해
유명한 목사님들 설교를 듣기를 해!
다윤이도 내가 5년동안 아침마다 성경암송 시키고
열심히 가르쳐놨더니
아주 이사가더니 성경 한구절도 일주일동안
안읽혀서 오고.
어디서 잘난척이야 매번 이기집애는!"
결국 친정집에 도착하자마자
정혜는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갔다
뒤에다 대고 정혜의 엄마는 소리질렀다
"다시는 내 눈앞에 나타나지마 이것들아!"
정혜의 엄마는
양극성 성격장애 조울증환자이다
항정신과 약을 먹은지 40년이 넘었다
어릴 때도 가끔 엄마의 분노가 하늘을 찌를때면
마음 졸였던 기억이 있지만
최근 10여년 동안은
조증의 시기에는 정말 감당이 안되는 느낌이다
정혜가 어린 시절
엄마의 분노는 정혜의 아빠, 외할머니를 향했지만
요즘은 정혜 자신에게까지 향하는 것을 느끼며
정혜는 그냥 엄마와의 연을 끊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그녀도 10대, 20대 때는
엄마가 너무 가여웠다
여자로서 엄마의 삶이 안타까웠다
하지만 지금은 엄마가 답답하다
어떤 결단도 노력도 하지 않고
그 자리에서 화만 내고 있으면...
대체 뭐가 달라질까?
그 때마다 돈 10만원, 20만원 쥐어주면
미안하다 고맙다 사랑한다라는 말을 하는게
더 싫었다
'오늘 무슨 일 있었어?'
집에 와서 몇시간 지나니 동생이 카톡을 보내왔다.
'왜? 아까 점심먹다 엄마랑 대판 싸움.
지금 카톡 전화 다 차단해둠'
'그러니까 진작 차단하라니까.'
'아무튼 너무 스트레스임. 당분간 연락 끊으려고'
'나는 진심으로 한 1년동안 연락 끊을까 생각중임'
동생이라면 정말 끊을수도 있겠다 싶었다.
'나도 그래야겠음'
정혜는 쿨하고 짧게 메시지는 보냈으나
그날 밤 잠을 자지 못했다
엄마를 대하는게 너무 힘들고
스트레스지만
또한 엄마가 너무 안쓰럽기 때문이다
며칠 후 가족카톡방에
아빠가 정혜를 다시 초대했다
정혜가 엄마를 수신차단했지만
함께 있는 단톡방까지 차단되는 것은
아닌 듯했다
엄마는 갑자기
"정혜야 미안하다. 사랑한다"라며
하트 이모티콘을 발사했다.
정혜는 아무말도 할 수 없었다.
이걸로 모든게 다 해결된다고 생각하나?
정말 엄마는 분노의 조절이 안되는 걸까?
그러면 그걸 당하는 가족들은
그 분노를 오롯이 받아내며
온갖 상처를 받고도
미안하단 한 마디로 아무일 없었다는 듯이
넘어가야 하는 걸까?
순간적인 분노는 조절이 안된다고 하더라도
그 때 퍼붓는 말들은
그간 그렇게 생각해오지 않고는
할 수 없는것 아닐까?
어린시절 명절마다 되풀이 되던
외할머니가 숙모들과 엄마, 외삼촌들에게 화내던
그 모습이 엄마에게 자주 보이게 되는 것이 싫었다
정혜는 메시지를 받은 그 날도 잠을 이루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