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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원 Jiwon Kim Jan 17. 2024

지금의 희붐한 느낌을 오래 간직하기 위해 쓴 글

변호사 사회생활 1개월차 소회

시간이 지나며 내 자신이 점점 견고하고 단단해지는 것 같은 이 감각이 무척이나 만족스럽다. 마냥 변화를 좋아하고 호기심이 이끄는 대로 행동하던 내가 이제는 안정과 정착의 느낌도 즐기게 되었나보다. 20대 초반에는 무얼 하든 너무 새롭고 처음인 것들 투성이라 기꺼이 그리고 씩씩하게 여러 기회들에 임하면서도 쭈굴쭈굴해질 때가 많았다. 지금은 내 삶에 그때부터 쌓아온 익숙하고 편안한 것들과 사회 초년생으로서 맞이하는 새롭고 낯선 것들이 적당한 비율로 조화롭게 자리하고 있는 것 같아 만족스럽다.


무엇이든 주저 없이 시도해보고 개중에 잘 맞는 건 꾸준히 해나가는 것의 힘을 체감한다. 우울감을 떨쳐낼 겸 2021년 1월 Y와 함께 시작했던 웨이트 경력도 만 2년이 넘었고, 올해 3월 중하순부터는 크로스핏으로 연착륙해 지금까지 70회 넘게 수업을 들었다. 멋 모르고 가입했던 로스쿨 마라톤 동아리에서 2019년 처음 10km를 나가 동아리원 중 가장 뒤에 들어왔던 내가 올해 10km 대회에서는 56분대에 완주를 하게 됐다. 2015년에 본격적으로 시작했던 독서 블로그도 운영한 지 어언 9년차가 되었고 책 리뷰만 250편이 넘게 쌓였다. 5년 전 내게 의례(ritual)와 수련의 장소였던 건명원도 건명사학 2기로 다시 다니면서 다시 수련의 시간을 갖고 있다. 나이를 먹어가니 뭐든 처음 시작한 이래로 저절로 연차가 쌓이는 것도 있지만, "N년차"라는 말에 겸연쩍어지지 않게 경험을 차곡차곡 알차게 쌓아가는 일이 즐겁다.


"나를 나답게 만들어주는 것이 뭘까"하고 분주하게 종종거리던 20대 초반을 지나 여러 습관들이 생기고 내 일상 속에 자리잡게 되면서 조금은 나다운 기운을 내뿜을 줄 아는 사람이 된 것 같다. 작년 한 해 시험 준비를 하면서 이제 나도 나를 나답게 만들어주는 것들, 진정으로 내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것들 - 오래된 친구들, 내 몸과 마음을 가꾸는 운동과 책 읽기와 글 쓰기, 유쾌한 농담들과 가끔 있는 기분 좋은 술자리 따위 - 이 무엇인지 조금씩 알 것 같으니, 이제는 내 시간을 좀 더 자유롭게 운용할 수 있게만 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다고 내내 생각해왔다. 그리고 꼭 그때의 기대처럼, 매일매일의 감사함과 더불어 불쑥불쑥 벅차오르는 행복감이 선물 같이 찾아오는 풍요로운 일상을 살고 있는 요즘이다.


작년에 CY 언니가 의뢰인에게 받았던 편지에 "변호사님, 지금의 희붐한 느낌, 오래 간직해요"라는 말이 적혀있다고 했던 기억이 난다. "희붐하다"라는 말은 "날이 새려고 빛이 희미하게 돌아 약간 밝은 듯하다"라는 뜻이라고. 어쩌다 새벽에 눈을 뜨면 지금은 내 활동시간이 아니라며 다시 잠에 드는 올빼미족이었던 내가 6시 반 크로스핏 수업을 가려고 새벽을 설레는 마음으로 맞이하게 된 요즘, 희붐하게 밝아오는 새벽 무렵의 내 인생에 다가올 나날들도 무척이나 기대된다.


(2023년 봄에 쓰다)



* 변호사로 일한 지 한 달이 되었을 때쯤 썼던 글이다. 이 글을 쓴 지도 벌써 1년이 다 되어간다.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하면서 업무경력 수십 년차의 까마득한 선배 변호사님들을 마주해보니 '나다운 기운' 따위의 표현에서 풋내가 느껴져 부끄럽기도 하다. 또 자신감과 감사함에 차있었던 저맘때가 무색하게 일을 하며 이런저런 고충도 있었고, 마음이 한껏 들떴던 만큼 또 가라앉기도 했다. 하지만 이 글에 붙여둔 "지금의 희붐한 느낌을 오래 간직하기 위해 쓴 글"이라는 제목처럼, 오랜만에 이 글을 꺼내어 들춰보며 희붐한 느낌을 되살린다. 2년차 변호사로서의 새로운 시작도 희붐한 느낌 그리고 두근두근한 기대감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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