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재직 중인 로펌에서 가장 가깝게 일해온 선배 변호사님의 마지막 근무일이다. 변호사님은 어쏘 변호사님이신데 회사 내에서는 나름대로 나이도 연차도 크게 차이가 나지는 않아 내가 알게 모르게 많이 의지 아닌 의지를 했던 분이다. 직장 내 괴롭힘으로 힘들어하던 친구가 너는 회사분들이 썩 괜찮은 분들인가보네, 라고 했었는데, 여기서 ‘썩 괜찮은 분’의 팔할 정도를 담당하고 계신다. 그리고 다른 분들과는 아직 기회가 없었을 뿐일지도 모르나, 회사에서 나를 나답게 해주는 대화를 나눌 수 있었던 몇 안 되는 분들 중 하나다.
변호사님은 친구분이 먼저 개업하신 법률사무소에 합류하시어 새로운 시작을 할 예정이시라고 한다. 이런저런 고려가 있으셨겠으나 무엇보다 본인 시간에 대한 통제를 갖기 위해서, 가 가장 큰 이유라고 한다. 변호사님의 건승을 빌며, 변호사님이 언젠가는 개업 후 홍보에 활용할지도 모르는 추천 문구를 (의뢰받은 적도 없건만) 한번 써본다.
제게는 첫 직장생활 1년간 가장 많은 코칭을 해주신 변호사님이십니다. 스스로 완벽주의 성향이 있다고 생각하는 제가 봐도, 변호사님은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건가’ 싶을 정도로 모든 일에 열심이셨습니다. 마치 ‘이렇게까지 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듯 힘들거나 어렵다는 티를 내시지 않고 말이죠. 1년간 그런 변호사님을 보면서 저도 다른 선배 변호사님의 “변호사는 면으로 먹고 사는 직업이다. 서면에 자기 이름이 쓰여 있다면 그 서면에 대해 책임을 질 수 있어야 하고, 그 서면이 곧 자신의 면이다.”라는 말의 무게를 조금씩 배워온 듯합니다. 어떤 개인이든 혹은 기업이든 변호사님을 믿고 일을 맡겨주신다면, 감히 단언해보건대 후회하실 일은 없지 않을까 합니다. 물론 이 말은 허투루 하는 말이 아니라, 저도 변호사로서의 면을 내세워 하는 말이고요.
첫 직장에서 좋은 선배 변호사님을 만날 수 있어서, 그 어떤 고민이 있으셨을지라도 거침없이 떠나는 발걸음을 내딛으신 변호사님을 보며 나도 이런저런 생각을 해볼 수 있었던 오늘이어서 참 감사하다. 인사 오신 길에 짐을 모두 뺐다는 변호사님 말씀을 떠올리며, 나도 금요일 퇴근길에 그간 회사에 묵혀뒀던 여섯 개의 보온병을 집으로 가져왔고 뜨거운 물과 약간의 베이킹소다로 깨끗이 씻었다.
(2024. 3. 22.에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