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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페이퍼 Nov 21. 2021

부다페스트 02

두 번째 도시걷기 - 보폭을 넓히다

퇴근 후 두 번째로 시내를 걸으러 나왔다. 당연한 말이지만, 걷기의 시작은 내가 머물고 있는 호텔에서부터다.


부다페스트는 시내를 수직으로 관통하는 다뉴브강에 의해 동‧서 두 영역으로 나눠어있는데, 강의 왼쪽이 ‘부다’, 오른쪽이 ‘페스트’로 구분된다. (서울이 한강에 의해 남‧북으로 나뉘어 ‘강북’, ‘강남’으로 나뉘듯) 실제로 서로 다른 행정구역이었던 두 도시가 19세기 말, 한 도시로 합쳐진 것이라고 한다. 이렇듯 도시의 동‧서는 분명하게 구분되는데, 남‧북을 구분해줄 수 있는 분명한 기준은 없다. 그래서 일단 부다페스트의 '북쪽이냐 남쪽이냐'를 판단할 수 있는 내 나름대로의 기준을 정하였는데, 바로 ‘헝가리 국회의사당’이다. (이유는... 제일 유명하니까.) 국회의사당은 수도의 행정구역이 확장되고 (부다, 오부다, 페스트의 통합) 국가의 위엄을 높이기 위해 지어졌다고 ‘위키백과’는 알려주고 있다. 건물 으리으리하게 짓는다고 국가의 위엄이 살겠는가? 존재하지 않는 허상의 물질화, 일종의 세뇌 장치라고 해야겠지. 하지만 그렇게 불순한(?) 목적으로 지어진 건축물이 나중에는 나라의, 도시의 귀중한 관광 자원화됨이 어찌 보면 아이러니다. 엉뚱한 이야기 하나 추가하자면, 우리나라의 국회의사당 초기 설계에 원래 돔이 없었다. 그분(?)께서 나중에 돔은 얹자고 해서 생겼다는데, 아마 그분이 마음속에 그렸던 이상적인 국회의사당의 모습엔 분명 헝가리 국회의사당의 영향이 적지 않았을 것이라 추측된다. 

출처 : 구글지도

말이 길어졌다. 내가 머물고 있는 호텔은 다뉴브강의 서측 그리고 국회의사당을 중심으로 남측, 즉 부다의 남측 지역에 있다. 나의 숙소이자 걷기의 시작점인 호텔에서 (대부분의 명소가 자리한) 강가까지는 약 1.7킬로미터, 속보로 약 20분이 안 되는 거리다. 즉, 적당히 걸으며 이곳저곳 구경하기 ‘나쁘지 않은’ 위치다. 어쨌거나 후배와 나는 두 번째 걷기의 목적지를, 호텔에서 동측으로 약 1.6킬로미터 떨어진, 강변 언덕에 자리하여 조망이 좋은 ‘시타델라(Citadella) 요새’로 결정하고 걷기를 시작했다.

 

겔레르트 언덕에 자리엔 이곳은… 합스부르크 제국의 요새, 2차 세계대전 나치 방공포 기지, 소련의 승전 기념비 등 헝가리의 유쾌하지 못한 역사가 담겨있는 곳이었는데, 일단 해가 진 후에 가서 너무 어둑했으며, 조망이 좋은 ‘자유의 여신상’ 주변이 공사 중으로 출입이 통제되어 제대로 볼 수 없었다. 대신 미로처럼 복잡한 겔레르트 언덕길을 따라 걸으며, 언뜻 보이는 강변 야경에 만족해야 했다. 하지만 산책길 역시 너무 음침에 남자 둘이서도 좀 무서워 오래 걷지는 못하고 강변 방향으로 내려왔다. 일단 너무 처음부터 깊게 들어가면 애정은커녕 관심조차 싹트지 않을 수 있으니, 수박 겉을 핥으며 빠르게 걸어 나가는 수밖에.

호텔로 돌아가는 길에 고풍스러운 철골구조가 아름다운 ‘자유의 다리’를 지나쳤다. 오늘날 철골구조는 주로 경제성과 효율성 때문에 널리 사랑받는다. 건축물에게 구조적 안전과 빠르고 저렴하게 시공될 수 있는 성격만을 부여한다면, 자연스럽게 오늘날 (어디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수많은 철골조 건축물로 귀결된다. 근대건축의 대가 ‘미스 반데어 로에’조차 "Less is more"라는 유명한 말을 남기지 않았던가? 하지만 그때는 장식의 More들이 넘쳐나던 시기였고, 이제는 장식의 Less들이 지배하고 있으니, 당연히 눈길이 가는 것들은 장식의 More 들이다. 어쨌거나 옛사람들은 철골조 다리에도 고전 건축물을 짓던 버릇(?)을 못 버리고 (구조와는 관계 없는) 화려한 장식을 가미하였는데 그만큼 시간적,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었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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