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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니 Jul 22. 2019

그때 그곳, 다시 가보려고 해

여전히 아름답고 여전히 외로워

서퍼스 파라다이스의 비치


골드코스트에서는 서퍼스 파라다이스가 가장 유명한 지역이다. 이름만 들어도 즐거운 일이 생길 것만 같은. 서퍼들의 천국이라니. 여튼 대부분의 워홀러나 학생, 관광객들이 골드코스트에 올 때는 이 서퍼스 파라다이스에 온다고 생각하면 된다. 호주에서 유명한 휴양지라서 관광객이 많다 보니 그만큼 일자리도 많다. 


낮에는 서퍼들을 위한 비치, 밤에는 클럽이나 펍이 사람들을 유혹한다. 쇼퍼들을 위한 아웃렛몰도 여러 개 있고, 가족들을 위한 테마파크로도 매우 유명한 곳이다. 



처음 호주 워킹 홀리데이를 결정하고 나서 깊은 고민에 빠졌었다. 내가 가져갈 수 있는 돈은 겨우 두 달 정도 생활비였고 한 두 달 안에 제대로 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면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야 할 수도 있었던 상황. 일자리를 구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건 굉장한 걱정이자 두려움이었다. 정말 운이 나쁘면 계속해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불안함. 그런 불안함은 힘이 세다. 특히 나 같은 사람에게는. 


그래서 한참 고민하다 한국에서부터 일자리를 알선해주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기로 했다. 8주 이내에 일자리를 구해준다는 명목으로 일정 금액의 돈을 받는 식. 뿐만 아니라 고급 호텔이나 리조트 같은 곳으로 연결해준다고 하니 마음이 더 기울었다. 일자리를 소개받는 명목으로 내야 하는 돈은 200만 원 남짓이었다. 만만치 않은 액수였지만 불안한 마음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 그 방법을 선택했다. 나도 이력서 돌리고 발품 팔아 결국엔 호주인 사장 밑에서 일하게 됐다는 성공 스토리를 쓰고 싶었지만 난 그럴만한 베짱이 없었다. 


다행히 호주에 온 지 3주 만에 일자리가 났다고 연락이 왔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내가 일하게 될 리조트가 서퍼스 파라다이스에서 2시간 정도 떨어진 뉴 사우스 웨일스 주의 킹스 클리프 지역에 있다는 것, 즉 다른 주로 이사해야 한다는 것이었다(골드코스트는 퀸즐랜드 주). 일자리가 서퍼스 파라다이스에 있었으면 훨씬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일을 시작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했다. 페이도 괜찮았고 근무 환경도 좋았다. 당장에 해결해야 할 문제는 리조트 근처로 이사를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내가 일했던 리조트는 '킹스 클리프(Kinfscliff)' 지역에 있었다. 일을 시작하기 전, 계약서를 쓰러 에이전트와 미리 그곳에 다녀온 적이 있는데 정말 한적한 시골 동네였다. 그나마 상점이 몰려있는 거리도 시작 지점에서 끝이 보일 정도로 작은 규모였고, 한국인은 커녕 그 흔한 중국 사람, 인도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다행히 일자리를 소개해준 에이전트의 도움으로 집은 쉽게 구할 수 있었다. 


그곳에 살면서 나는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친구도 없었고 인터넷도 없었다. 30분을 걸어 걸어 아주 작은 킹스 클리프 지역 도서관에 도착하면 '와이파이'도 아닌 그냥 랜선이 연결된 컴퓨터를 사용할 수 있었다. 가끔 가서 아주 간단히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오는 정도였다. 나는 그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한식을 좋아하는데 그곳에 사는 몇 개월간 한식을 먹지 못했던 기억이 난다. 몸무게가 처음으로 47킬로 까지 빠졌었다. 한국에서 올 때부터 노트북에 다운로드하여 온 영화를 계속 돌려보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참고로 그곳에 살 던 몇 개월간 가장 많이 본 영화는 비욘세가 나오는 '드림걸즈'인데 지금도 그 영화만 보면 가슴이 먹먹하다(그 영화를 본 사람은 알겠지만 전혀 가슴 먹먹한 영화가 아니다).


킹스 클리프에 살 던 집. 내 방. 흔들린 거 알지만 이해해줘요. 옛날 똑딱이 디카로 찍은 거예요.


외로움이 극에 달했을 땐 방문을 잠그고 창문을 검은 색깔 담요로 모두 가린 채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방 안에서 몇 시간 동안 있곤했다. 모두들 깨어 바쁘게 무언가를 하는 아침이 오는 게 두려웠다. 그러다 모두들 잠이 들어 아무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 밤이 되면 그나마 괜찮았다. 


한 번은 이런 적도 있었다. 그때가 크리스마스였는데, 너무 답답해서 무작정 집 밖을 나섰다. 한 번도 걸어서 가본 적 없는 동네 먼 곳까지 하염없이 걸었는데 정신없이 걷다 보니 낯선 곳이었고 돌아가는 길을 잊어버리고 말았다. 해가 슬슬 저물기 시작하는데 내가 지금 어디 서있는지 알 수 없어 너무나 무서웠던 기억이 난다. 핸드폰은 손에 쥐고 있었지만 그 누구에게도 연락할 수 없었다. 연락할만한 사람이 없었다. 정말 큰일이 날 수도 있겠다 싶어 가빠지는 숨과 약해지는 마음을 겨우겨우 붙잡은 채 힘들게 집에 도착했던 일도 있었다. 


별 거 아닌 거리 사진이지만 나에게는 너무 가슴 먹먹한 이 거리.ㅜㅜㅜㅜ


그러다 결국 몇 개월 만에 도망치듯 그 동네를 떠나 한인들이 많이 밀집해서 사는 골드코스트의 사우스포트로 이사를 와버렸다. 엄청나게 비효율적인 결정이었다. 같은 금액에 1인실에서 2인실로 옮겨야 했고, 매주 교통비로 100불 가까이 지출해야 했다. 게다가 출퇴근은 편도 2시간이 걸렸다. '주'가 달라 심지어 섬머 타임 때는 1시간의 시차까지 있었다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곳을 떠나와야 했다. 정말 조건과 환경이 좋은 일자리였지만 그 일자리를 포기하게 되는 한이 있더라도 나는 킹스 클리프를 떠나고 싶었다. 


그렇게 힘들게 버텼던 그 동네에 다시 가보고 싶었다. 8년이 지난 지금도 머릿속에 생생하게 그려지는 그곳. 그냥 궁금했다. 다시 그곳에 가면 어떤 느낌일까. 그땐 뭐가 그렇게 힘들었을까. 너무 어려서 그랬을까 하는 생각들. 


골드코스트에 도착한 첫날은 적당히 서퍼스 파라다이스의 시내를 둘러봤고 이튿날에 킹스 클리프에 가보기로 했다. 서퍼스에서 트램을 타고 브로드비치에 내려서 버스를 타고 트위드 헤즈에서 내려 또다시 다른 버스로 갈아타야 하는 복잡한 코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신기하게도 다 기억이 났고 어렵지 않게 킹스 클리프 시내에 도착했다. 


조금 긴장되기 시작했다. 상점 거리에 도착하니 생각보다 사람들이 많았다. 


'맞다. 오늘 일요일이지.'


여행이 길어지다 보니 요일 감이 없어졌다. 그리고 생각보다 금방 깨달았다. 내가 너무 어렸고 경험이 없었기 때문이 아니라 지금이라도 난 여기 혼자 살게 된다면 절대 잘 살 수 없을 거라는 사실을. 동양인뿐만 아니라 외국인이 전혀 없는 환경에 혼자만 이방인이라는 사실은 단지 잠깐 여행을 온 지금 순간에도 나를 위축되게 했다. 킹스 클리프에 있는 리조트에서 6개월 동안 일을 했고 심지어 살기도 했는데도 이 곳에 있는 지금 상황이  왜 이리 어색하고 불편한지 모르겠다. 정작 그들은 나를 신경 쓰지도 않는데 말이다. 


아. 나는 태생적으로 소심한 사람인가 보다. 


대충 둘러보고 얼른 다시 서퍼스 파라다이스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이 곳이 너무 그리웠고 내 기억에서 만큼은 아름 다운 곳임에 분명했다. 하지만 어딘가 나만 동떨어져 있는 것 같은 여기를 벗어나 관광객들 바글바글한 곳으로 다시 가고 싶었달까. 벗어나고 싶었다.


그러다 문득 기억이 났는데, 그때도 휴일만 되면 난 서퍼스 파라다이스에 가고 싶어 했다. 딱히 할 일도 만날 사람도 없었는데 말이지. 그때 왜 그랬는지 이제서야 너무 잘 알겠어서 그냥 웃음이 났다. 많이 달라졌다고 생각했는데 somehow 나는 그대로였다. 


나는 그때 당시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을 했다. 집에서 나와 5분 정도 달리면 이 상점거리가 나왔고, 이 상점 거리를 지나면 크릭이 나왔다. 크릭을 따라 달리다 보면 숲길이 나왔고 그 숲길을 또 10분 정도 달리다 보면 내가 일하던 리조트가 나왔다. 그 길을 따라 다시 걸어보고 싶었다. 


그리웠지만, 너무 그리워서 다시 찾아왔지만 여전히 너무 외로운 내 출근길.


그때도 알고 있었지만 이 곳은 정말 아름답다.


 "하"


 절로 감탄이 나올 정도로 정말 눈이 부시게 아름다운 곳이 맞다. 바다로 이어지는 얕은 크릭의 물 색깔은 오묘하다. 깊은 푸른빛도 아니고 에메랄드 빛도 아니지만 투명하다. 크릭 맞은편에는 풀숲이 있다. 자전거를 타다 힘들면 멈춰서 잠깐 쉬어 가기도 했던 곳. 그곳을 따라 달리다 보면 크릭을 가로질러 건널 수 있는 다리가 나온다. 그 다리 위에서 보는 풍경은 정말 아름답다. 그때도 아름다웠고 지금도 아름답다. 아마 너무 아름다워서, 그래서 더 외로웠는지도 모르겠다. 지난 8년간 거의 달라진 것은 없었다. 상점 거리 맞은편에 인포메이션 센터 생겼다는 것 정도.


어디를 가도 이만큼 평화로운 곳은 없었다. 

예상했던 것보다 빨리 버스를 타고 다시 서퍼스로 파라다이스로 돌아가기로 했다. 이 곳에 만큼은 더 이상 혼자 있고 싶지 않았다고 해야 하나. 얼른 시끌벅적한 서퍼스 파라다이스로 가야지. 혹시나 다음에 다시 이 곳에 오게 된다면 그땐 꼭 누군가와 함께 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땐 돌아갈 곳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돌아갈 곳이 있다는 게 무척이나 다행스럽다고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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