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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니 Jul 18. 2019

골드 코스트, 너무 그리웠어

이름만 들어도.

그래서 어떻게 됐냐면, 결국에는 내가 타려고 했던 골드코스트행 비행기를 탈 수 있었다. 커머셜 스탠바이라고 해서 항공사 직원 스탠바이가 아닌 일반 승객 대기 예약까지 있었던 상황이었는데 운 좋게 티켓을 받았다. 어떻게 된 일인지는 자세히 모른다.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카운터에 가서 티켓을 받을 수 있냐고 물었더니 담당 직원은 아마 못 탈 거라고 대답했다. 이미 몇 명이나 오버부킹이 돼있는 상태라고... 하지만 어떻게 될지 모르니 출발 40분 전에 다시 와보라고.


솔직히 티켓을 받을 거라고 기대하지도 않았다. 그래도 혹시 몰라 약속한 40분 전에 다시 가보니 이번엔 5분만 더 기다려보라고 했다. 보통 출발 40분 전에 비행이 클로즈되는 데 승객수가 많아 5분이 더 필요할 것 같다며. 이 때는 굳이 어디 갈 것도 없이 카운터 앞에서 기다렸다. 희망 고문당하는 느낌(휴).


이번에도 사실 전혀 기대하지 않았다. 커머셜 스탠바이까지 있는 상황에 고작 에어라인 스탭에게 기회가 가려나 싶었다. 그냥 기다리라고 해서 기다리던 상황이었는데 5분이 지나자 날보고 오라는 손짓을 했다. 나 말고도 두어 명 근처에서 서성거리던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이 모였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담당 직원은 덤덤하게 한 명 한 명 탑승권을 나눠주기 시작했다.


'어라...? 정말 주는 거야?'


어리바리 티켓을 손에 쥐고 정신을 차려보니 다른 직원이 내 수화물을 붙이기 시작했다.


"빨리 가세요. 곧 탑승이 시작돼요!"


탑승이 5분 후부터 시작될 거 라며 얼른 올라가라고 하는 직원의 말에 땡큐를 연발하며 뛰기 시작했다. 정말 탈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 못했는데 이게 뭔 일인지 싶었다. 눈물이 찔끔 나려고 하는 것을 참으며, 숨을 헉헉 거리며 보딩 게이트 앞에 도착했다.



우여곡절 끝에 골드코스트에 도착했다. 도착하고도 밑기지 않았다. 랜딩 하는 내내 바깥 풍경을 구경하느라 정신을 못 차린 수준. 골드코스트는 나에게 제일 특별한 도시이고 이번 호주 여행의 최대 목적이기도 했다. 내가 처음 비행기를 타보고 외국 땅을 밟아본 것도 이 곳이 처음이었고 어린 나이에 이래 저래 많은 걸 경험하게 해 준 도시. 게다가 이 곳에 살면서 다른 호주 도시들을 여행하며 승무원으로 살고 싶다는 생각을 본격적으로 하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떻게 그 나이에 덜컥 외국행을 결정하고 힘든 환경에서 살아나갔는지 신기하기도 하고 대견하기도 하다. 좋은 일만 있었던 건 전혀 아니고 오히려 좋았던 일은 손에 꼽을 정도로 힘든 일 투성이었는데 말이다.


그래도 이 곳이 너무 그리웠다.


이 곳에 도착하기 전까지만 해도 여행에 조금 지쳐있었다. 멜버른 여행은 사실 생각보다 즐겁지 않았고, 일주일이 조금 못되게 지속된 호스텔 생활이 지겨워졌었다. 왠지 그리웠던 골드코스트에까지 와서는 좀 더 괜찮은 곳에 묵고 싶었다. 하지만 혼자 여행하는 나 같은 사람에게 호텔이나 에어비앤비를 예약하는 건 비용적으로 조금 무리다. 혼자 여행하는 게 아쉬운 몇 안 되는 이유 중의 하나.


그러다가 우연히 한인 민박을 찾았다. 유럽에서 찾을 수 있는 그런 여행자를 위한 한인 민박이 아니라 골드 코스트에 도착 한지 얼마 안 된 워홀러나 학생들 위주로 단기 렌트하는 형태의 숙소였다. 사실 선택지가 그렇게 많지 않아 위치 같은 건 전혀 생각하지 않고 예약을 마쳤는데 여러모로 너무 만족스러웠다.


골드코스트 공항은 도심에서 조금 떨어져 있다. 하지만 대중 교통으로 얼마든 지 시내까지 이동이 가능하다. 예전 기억을 더듬어 공항 밖으로 나오니 도심 근처까지 가는 버스를 쉽게 찾을 수 있었다. 그렇게 버스에서 내린 자리 그대로에서 트램을 타고 도심으로 들어가면 된다.


내가 살 던 서퍼스 파라다이스 지역에 가까워 지자 가슴이 두근두근했다. 생각보다 많은 것들이 그대로였다. 원래 항상 이 곳에 있었던 사람같이 지나가는 풍경이 너무 익숙했다. 한 번도 이 곳을 떠난 적 없는 사람처럼.



예약한 숙소에서 제일 가까운 정류장에 내린 후 숙소 사장님이 알려주신 대로 걸어갔다. 생각보다 너무나 금방 목적지를 찾을 수 있었다. 이 곳에 살 때 내가 자주 왔다 갔다 하던 길목에 있는 아파트였다. 도착했다고 메시지를 보내자 사장님께서 내려오셨다. 너무 인상이 좋으신 분이었다.


사실 처음에는 별 기대 없이 사장님을 따라갔다. 깔끔한 아파트였지만 어쨌거나 방이며 거실이며 쉐어 생들로 빡빡한 곳이겠지 싶었다. 내가 기억하는 서퍼스 파라다이스의 쉐어하우스는 그랬으니까. 엘리베이터를 타고 18층을 누르는 사장님을 보며 그래도 뷰는 좋겠거니 생각했다.


"여기에요. 들어오세요."


숙소 사장님이 문을 열어주셨다. 하얀 현관문을 열자마자 나는 감탄했다.


"우와-"


이럴 거라고 전혀 기대하지 못했다. 일단 거실이 정말 넓었고, 그 거실은 셰어 생들을 위한 이 층 침대가 아니라 아늑한 소파로 채워져 있었다. 코너에 위치한 플랫이어서 아파트 뒤쪽과 옆쪽 뷰 둘 다 볼 수 있었다. 낮에는 덥기 때문에 문을 열어놓고 지내신다고. 덕분에 집안 곳곳을 휘감는 자연 바람을 느낄 수 있었다.


숙소에서 매일 볼 수 있었던 뷰


이 아파트는 단기 렌트를 하시는 곳이라 비용을 좀 더 받는 대신 깔끔하게 관리하신다고 했다. 방이 3개였는데 한 방에 최대 2인까지만 묵는다고. 게다가 내가 갔을 때는 쉐어생들이 많이 빠져서 넓은 아파트에 단 3명뿐이었다. 바글바글한 호스텔 이층 침대에 조금 지쳐있던 내게 주어진 기분 좋은 행운.


게다가 부엌은 얼마나 깔끔했는지. 내가 가장 감동했던 부분 중의 하나. 보통 쉐어하우스의 부엌은 엉망이기 마련인데 정말 깨끗하게 청소가 돼있었고 조리 도구들도 완벽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분명 숙소 사장님의 깔끔한 성격 덕분일 거라 생각했다. 여기에 지내는 동안은 요리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멜버른 여행이 아쉬웠던 건 생각도 나지 않았다. 그리웠던 이 곳에서 완벽하게 쉬고 갈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에 마음이 한없이 들떴다.


대학교 3학년을 마치고 외국에 나가서 살아봐야겠다는 생각 하나로 카페 아르바이트를 해서 6개월간 돈을 모았다. 주 6일은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했고 중간중간 과외도 하며 열심히 돈을 모았다. 월급을 받으면 고작 30만 원 남짓한 용돈을 빼고는 꼬박 다 저금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는데도 결국 목표한 금액을 모으게 됐다(지금은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는 일을 23살의 나는 해냈다). 그렇게 시작한 외국 생활은 힘듦의 연속이었고 끊임없이 외로움과 싸워야 했다. 매일 한국을 그리워했고 가족들과 친구들을 그리워했다. 바보 같은 짓도 많이 했다.



그래도 그때처럼 여전히 이 곳은 평화로웠다. 지난 8년 동안 나에게는 너무 많은 일이 있었는데 여기는 그렇지 않은 것 같다. 마치 타임머신을 탄 듯 걷다 보면 그때의 그곳이 눈앞에 나타났다.


여기서는 정말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아도 그저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뭉클한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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