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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니 Apr 16. 2020

LCC 승무원의 이야기

나도 처음부터 저비용 항공사(LCC)에 입사하고 싶었던 건 아니다.

처음 승무원을 꿈꿀 때는 당연히 이름만 대도 알만한 프리미엄 항공사에서 일하며 전 세계를 누비고 싶었다.

하지만 준비 기간이 길어질수록 특정 대형 항공사만 고집할 수는 없어졌다.

내가 한창 승준생(aka 승무원 취업 준비생)이었던 2011-2014 즈음에는 본격적으로 우리나라와 동남아시아 등 각지에 신생 저비용 항공사가 많이 생기는 추세였다.

말레이시아의 '에어아시아'도 주변 국가로 베이스를 넓히기 시작했고, 싱가포르의 '스쿳항공'이라든가 홍콩의 '홍콩 익스프레스'같은 신생 항공사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한국 취항을 하기 시작했다.

또 그 맘 때쯤, 한국인을 대거 채용하던 두바이의 '에미레이트 항공' 카타르의 '카타르 항공' 홍콩의 '케세이 퍼시픽'같은 대형 프리미엄 항공사들은 한국인의 채용을 멈추거나 줄였다.

 

그때 난 승무원 말고는 하고 싶은 것이 없었고 취업은 간절했던 시기였던 터라 항공사를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나는 키가 작아서(마지노선과 같은 158cm) 지원할 수 있는 항공사도 제한적이었고 나이는 나를 기다려주지 않았다.

그런 이유로 나는 저비용항공사나 신생항공사 지원도 마다하지 않았다.

제발 어디든 합격만 시켜준다면 월급 100만 원만 받아도 되니 감사하게 일하겠다는 마음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승무원 준비 만 3년을 넘기고서야 결국 지금 항공사에 합격할 수 있었다.




우리 회사는 두바이에 위치한 저비용 항공사이다.

작년에 10주년이었으니 내가 입사한 2015년도에 겨우 5년 차가 된 꽤 신생항공사였다.

하지만 부국 두바이의 국영항공사이기 때문에 매우 빠르게 발전해나갔다.

두바이는 지리적인 이점과 초대형 항공사 에미레이트 항공의 영향으로 전 세계 넘버원 허브 도시가 되었다.

그런 영향력에 힘입어 우리 회사도 나름 대로의 정체성을 찾아가며 자리 잡아왔다.


규모면으로만 보면 절대 작지 않지만 항공사의 우리 항공사의 운영 콘셉트 자체는 '저비용'이 확실하다.

나도 프리미엄 항공사에서 전 세계를 누비고 싶은 바람이 왜 없었겠는가?

하지만 조금이라도 승무원 준비 세계에 발을 들여본 사람은 알겠지만.. 항공사 취업이라는 게, 이게 보통 치열한 게 아니다.


그래서 들었던 생각이 일단 어떤 항공사든 입사를 하고 나서 몇 년 경력을 쌓은 뒤 프리미엄 항공사로 이직을 하자는 거였다.

실제로 처음에는 우리 입사동기들도 70프로 정도는 경력을 쌓은 후 이직을 하겠다는 마음이 있었다.

 



저비용 항공사 승무원의 삶은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승무원의 이미지처럼 전 세계 노선을 비행하고 각 잡힌 유니폼을 입고 또각또각 공항을 활보하는 것과 같은 이미지와는 좀 다르다.

승객 입장이 아닌 승무원의 입장으로 보았을 때 그렇다.

저비용 항공사는 비용 대비 효율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삼는다.

그 안에서 운영 방법의 차이는 있겠지만 기본은 그렇다.

그래서 대부분 효율이 좋은 소형 여객기인 B737이나, A320 같은 기종으로 운항하고 또 보통 단일 기종만 보유한다.

우리 회사의 B737 같은 경우는 최대 6-7시간을 운항할 수 있는 데 그렇기 때문에 단거리 위주로 비행하는 편이다.


항공사 승무원의 로망은 무엇인가?

오늘은 방콕~ 내일은 뉴욕~~ 과 같이 전 세계를 여행하고 호텔로 퇴근하며 아침에는 호텔 조식을 먹고 현지 음식을 먹고 특산물을 쇼핑하는 것 아닌가?

하지만 우리에게 그런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대부분 단거리 비행을 하기 때문이다.

단거리 비행을 할 경우 승무원들 역시 목적지에 체류할 필요가 없어진다.

그대로 다시 승객을 태운 후 돌아온다.


난 처음 이 회사에 입사하고 1년 반은 내내 턴어라운드 비행을 했다.

턴어라운드란 A에서 이륙해서 B에 착륙한 후 다시 승객을 싣고 그대로 A로 돌아오는 단거리 비행을 말한다.

입사 1년 반 동안.. 무려 승무원 유니폼을 입은 1년 반 동안 호텔은 구경도 못했고, 유니폼 입고 하이힐 신고 공항 또각또각 걷기도 전혀 못해봤다.   

일반 직장인들처럼 공항 근처에 있는 회사 오피스로 출근해 비행을 갔다가 도착해서 승객들이 내리면 다음 승객을 태우고 다시 두바이로 돌아와 집으로 퇴근하는 식의 비행을 해왔다.

우리 회사도 장거리 비행이 종종 있긴 하지만 워낙 인기라 주니어 승무원이 받기란 매우 힘든 것이었다...




그것뿐인가?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왜 담요를 주지 않는가

-왜 밥을 주지 않는가

-왜 물을 돈 주고 사 먹어야 하는가

-왜 비상구석에 아무도 없는데 돈을 내고 앉아야 하는가


등등으로 컴플레인을 한다.

두바이에는 정말 다양한 인종과 국적의 사람들이 오간다.

저비용항공사가 많이 보편화가 되면서 설마 이런 질문을 하는 사람이 아직도 있을까 하지만 여전히 많다.

비행이 익숙한 듯 비싼 기내용 캐리어를 들고 여유롭게 좌석을 찾아 앉은 어떤 승객들도 담요를 왜 주지 않느냐 자기가 아임 프롬 "런던(큰따옴표 강조)"인데 이런 경우는 처음 봤다는 등으로 컴플레인한다(인도 비행 등에서 흔히 경험함).

 

런던에서 왔다며..

라이언에어 안 타봤냐..

누가 억지로 이 비행기 태웠냐..

본인이 선택한 거 아니냐..

다음에는 돈 더 주고 밥 주고 담요 주고 영화 보여주는 옆 항공사 비행기 타라..


.. 가 목 끝까지 차오르지만 다 참아내고 "Sorry"만 연발.

네 마음은 정말 이해가 돼..

너무 미안한데 우리 항공사 지침이야..

그 외에 내가 도와줄 일이 없겠니?..

같은 서로 에게 별 도움이 되지 않는 말들로 의미 없는 문장을 쏟아낸 후 대화를 마무리한다.


하루 이틀이 아니라 익숙해질 법도 한데 이상하게 나는 참 익숙해지지 않는다.


한 번은 이런 적이 있었다. 이코노미 클래스에 앉은 점잖아 보이는 영국 승객이 머리 위 선반에 있는 비즈니스 클래스 담요를 몰래 꺼내 좌석 밑에 숨겨두더라.

내가 다가가서 미안하지만 이건 비즈니스 클래스 승객용이라고 하니 너희 사무장이 가져가라면서 줬다고 하는 거지.

정말 그럴 수도 있고.. 확인차 사무장에게 가서 물어보니 역시나 자기는 그런 적 없다고.

어이가 없어서 다시 그 승객에게로 돌아가 미안하지만 가져가야겠다고 하고 좌석 밑에 있는 담요를 가져가려고 허리를 구부렸더니 잘 폴리쉬 된 고급 브랜드 구두로 그 담요를 꾹 밟고 있더라.

내가 못 가져가게 하려고...


내가 겪은 최악의 '담요' 에피소드 중 하나이다.

뭐 이건 내 '담요 시리즈'중의 하나이고 그 외에 '비상구 좌석 시리즈', '워터 시리즈', '기내식 시리즈' 등등 레퍼토리는 셀 수 없이 다양하다.


이런 비슷한 종류의 에피소드는 거의 매일 한번 이상 일어난다.

결국엔 감정 소모로 너덜너덜 해지기에 봐놓고 모른 척한 적도 많다.


내가 가서 굳이 이런저런 소리 해봤자 회사에서 알아주는 것도 아니고..

서로 기분 상할 일 뭐 있나 그냥 모른척하자..




뭐 그것뿐인가.

대부분의 승무원들은 허리 건강이 좋지 않은데 대부분은 승객들의 짐을 핸들 할 때 이루어진다.


원칙적으로 대부분의 항공사 승무원들은 승객들의 짐을 들어줄 필요가 없다(이건 당연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언제까지나 나 몰라라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특히 만석인 경우는 더더욱 그렇다.

클로징 시간은 점점 가까워 오는데 승객들은 적당히 짐을 놓은 자리를 찾지 못하고..

그럴 땐 무거운 가방을 몇 개씩 들고 다니며 테트리스를 하듯 여기저기 끼워 넣는다.

안전 규정 상 승객들의 짐이 제대로 자리를 찾기 전까지는 비행기 문을 닫을 수 없다.

비행기 문을 닫는 시간이 늦어지면 결국 출발시간 딜레이로 이어지기 때문에 그 시간을 맞추기 위해 승무원 모두가 정신없이 좁은 객실 복도를 누비며 뛰어다닌다.

마지막 가방까지 갈 곳을 찾으면 서둘러 도어 앞에 있는 사무장에게 사인을 보낸다(보통은 엄지 척).

그렇게 힘들게 마무리되는 것이 '보딩(탑승)'이다.

개인적으로 제일 스트레스받는 부분이기도 하고.


그런데 단거리 비행을 자주 하게 되면 그 귀찮고 힘든 보딩을 하루에 두 번 해야 한다.

휴.


보딩만 두 번 인가?

세이프티 데모도 두 번.

기내식도 두 번.

면세품 판매도 두 번.

모든 것이 두 번이다.

승무원들 건강에 치명 적인 영향을 미치는 이착륙은 무려 네 번이다.





그것뿐만이 아니다.

저비용 항공사의 비용절감은 단순히 승객 서비스 축소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들은 직원 복지에 드는 비용 역시 최소한으로 유지하려고 한다.


항공사 승무원들은 보통 타 항공사의 티켓 역시 할인받아 쓸 수 있다.

그걸 ZED티켓이라고 하는 데, 보통 저비용 항공사의 경우 그런 혜택도 줄어든다.

대형 항공사의 자회사 격인 저비용 항공사들은 사정이 조금 나은 편이지만 독립적인 다른 국내 저비용 항공사의 경우 ZED혜택을 받지 못한다.


또 복지를 최소화한다는 것은 결국 월급과도 연결된 문제겠지?




비용절감은 결국 직원 교육에도 영향을 미친다.

이런 항공사 들은 기내 안전 및 응급조치와 같은 필수 교육을 제외하고는 기타 서비스 교육 역시 축소하기 마련이다.

교육 역시 '비용'이기 때문에.


서비스 최전선에 있는 객실 승무원들의 서비스 교육을 최소화한다는 것은 그 항공사가 추구하는 최선의 가치가 승객 만족 서비스라기보다 효율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다행히 대부분의 요즘 승객들은 자신이 선택한 항공사의 서비스 스탠더드를 알고 그만큼의 기대를 가지고 티켓을 끊고 탑승을 한다.


정말 바라는 점은 이 글을 읽는 분들만 하더라도 소중한 휴가를 계획하고 최소 몇십만 원이 드는 비행기표를 예약할 때, 최소한 본인이 타게 될 항공사의 서비스 정도는 파악하고 결정하시라는 거다.


저비용 항공사의 경우 음료 및 식사는 기내에서 지불해야 한다.

국내 저비용 항공사의 경우, 물은 무료 제공하지만 대부분의 외국 저비용항공사는 물도 사 먹어야 한다. 제발 숙지하셔서 불편한 상황 겪지 않으시길..

같은 공항이라면 불편한 터미널을 이용할 가능성이 높고 같은 터미널이라면 더 많이 걸어야 할 가능성이 높으며

아기나 아이들을 위한 편의는 거의 봐주지 않는 다고 봐야 한다.




단점들만 나열해 놓았지만 승무원으로서 결국 대기업에 가느냐 중소기업에 가느냐 차이와 비슷한 것일까?

기준을 놓고 보면 프리미엄 항공사와 비교해보았을 때의 단점들인 것이고 결국에는 개개인의 가치관 차이다.


승준생이라면, 아니 어떤 취준생이라도 누구나 대부분 시작은 유명한 대기업에서 하고 싶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내가 해줄 수 있는 조언은.. 선택할수 있는 상황이라면 여튼 프리미엄 항공사를 먼저 경험해보라는 것.

그 이후의 어떻게 할 지에 대한 선택지가 다양해진다. 이건 정말 어쩔 수 없는거 같다.


뭐. 나는 그러지 못했지만 말이다.




내가 승무원을 준비할 때 나에게 승무원은 '꿈'이었다.


멋진 유니폼을 입고

하늘을 날고

전 세계를 여행하고


그런 것들.


그런데 막상 우리 회사 면접을 보고, 또 함께 일하는 동료들을 보며 느낀 점은,

회사는 꿈 많고 간절한 승무원 준비생을 찾았던 게 아니라는 거다.

열정을 보고 사람을 뽑았던 게 아니야 단지 이 업무를 잘 수행해 낼 수 있는 회사 직원을 찾았던 거지.


혹시나 승무원을 바라는 구독자가 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도움이 되고자 적어본다.




그렇지만 또 의외로 하고 싶은 말은.

그런 우리 회사의 근속 년수가 결국 주변 대형 프리미엄 항공사의 것들보다 훨씬 웃돈다는 것?

승무원도 '직업'인 것이기 때문에 결국 꿈이고 여행이고 나발이고 일상이 만족되어야 오랜 기간 근속할 수 있다는 것 같다.

아무래도 일상이 '장거리 여행'이 되면 여러모로 겪는 어려움이 많다.

반면에 다른 직장인들 마냥 규칙적으로 일하는 우리와 같은 LCC승무원들에게는 '일상'이라는 뜻밖의 선물이 있었다.


여행이 내 데스티니인 줄 알았던 예전에는 나도 평생 떠돌이로도 살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어설픈 떠돌이 었던 나는 결국 안정적이고 지겨운 일상이 먼저였더라고.




여튼 출퇴근하는 직장인들과 같은 삶을 사는 승무원들도 많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나는 두바이에 사는.. 두바이에 살면서 출퇴근하는 다른 직장인들과 비슷한 삶을 사는 승무원이다.

내가 꿈꾸던 승무원의 삶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꽤 많은 햇수가 지나고 돌아 보니 이것도 좋았다.


오늘은 힘든 점을 적었지만 다음에는 좋은 점을 적어봐야겠다.


왜냐하면.. 오히려 내가 우리 항공사에 들어오지 않았다면 힘들게 얻게 된 승무원이라는 직업을 생각보다 빨리 포기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싶거든.

승무원이 되기 위해 내 소중한 20대 중반의 3년을 쏟아부었음에도 지나고 보니 결국 후회되지 않는 선택이었다.


결국에는 그 얘기가 하고싶었는데... 다른 이야기들을 너무 많이 늘어 놓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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