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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nte Nov 28. 2023

인공지능과 일자리

스튜어트 러셀, 《어떻게 인간과 공존하는 인공지능을 만들 것인가》

요약


우리가 아는 방식의 일자리 없애기


미래 세대는 인류가 '일' 같은 헛된 것을 놓고
왜 그렇게 고심했는지 의아해할지도 모른다.

로봇이 인간의 직업을 빼앗아간다는 것을 주제로 한 저술들이 많다. 낙관론자는 기술의 발전 이후에 고용을 늘리는 경향 이른바 보상효과가 발생했다고 주장한다. 산업혁명 이후에 출현한 모든 새로운 일자리를 지적하면서 말이다. 비관론자는 기계가 그 '새로운 일자리'까지 모두 차지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처음에 기술은 생산성을 높임으로써 어떤 활동의 가격을 떨어뜨려서 고용을 늘리고, 따라서 수요도 늘린다. 그 뒤에 기술이 더 발전한다는 것을 필요한 사람의 수가 점점 줄어든다는 의미다.


많은 기술은 비슷한 곡선을 보여준다. 아직 정점에 다다르지 못한 상태라면, 기술 향상은 그 부문에서 고용을 늘린다. 이미 정점을 넘어선 상태라면, 자동화가 진행될수록 고용은 줄어든다.


대다수 주류 경제학자들은 '큰 그림'을 보면서 이렇게 주장했다. 자동화는 생산성을 높이고, 따라서 전체적으로 보면 인류의 삶은 더 나아진다는 것이다. 동일한 양의 일을 하는 대가로 더 많은 상품과 서비스를 누리게 된다는 의미에서다.


안타깝게도 경제이론은 자동화의 결과로 각 개인의 삶이 더 나아질 것으로 예측하지는 않는다. 일반적으로, 자동화는 소득 중에서 자본가에게 돌아가는 몫을 늘리고, 노동자에게 돌아갈 몫을 줄인다.


새로운 AI 기술이 등장할 때 쇠퇴하는 직업 중에는 사무직도 포함된다. 판매와 고객 서비스, 법률 분야도 마찬가지이며, 틀에 박힌 형태의 컴퓨터 프로그래밍도 그러하다. 사실 외주화할 수 있는 것은 거의 다 자동화의 좋은 후보다. 외주화는 세분하여 탈맥락 화한 형태로 분산시킬 수 있는 업무로 일자리를 해체하기 때문이다.


AI가 발전함에 따라서, 수십 년 안에 본질적으로 틀에 박힌 육체노동과 정신노동이 모두 기계를 통해 더 값싸게 이루어질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그런 일이 일어나면 남아 있는 고도로 숙련된 일자리를 놓고 경쟁할 수 없는 이들의 임금은 빈곤선 아래로 내몰릴 것이다.


한 가지 전망은 일이 필요가 없어서 일하는 사람이 훨씬 적은 경제를 예상한다. (케인즈)


"따라서 유사 이래 처음으로 인간은 진정으로 항구적인 문제에 직면할 것이다. 짓누르는 경제적 걱정에서 해방된 자유를 어떻게 쓸 것인가, 여가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다. 과학과 복리로 현명하고 즐겁고 수월하게 살게 될 것이다."


케인스 견해의 현대 지지자들은 보편적 기본 소득 UBI를 지지한다. 부가가치세나 자본 소득세를 재원으로 하는 UBI는 상황에 상관없이 모든 성인에게 합당한 소득을 제공하자는 것이다. 일부는 UBI가 지상낙원을 상징한다고 본다. 반면에 그것이 '실패 인정'을 뜻한다고 보는 쪽도 있다. 그들은 기계가 없다면 스스로 해결해야 할 의식주를 기계를 통해 얻을 수 있는데 굳이 일을 하겠냐는 것이다. 진실은 그 사이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케인스는 목적을 추구하는 유형과 즐기는 유형을 구별했다. UBI제안은 사람들을 즐기는 유형으로 가정한다.


추구하는 것과 즐기는 것은 상호배타적인 것이 아니고 분리할 수 없을 때도 있다. 진정으로 즐기기 위해서는 목적을 갖고 역경에 맞서서 그것을 성취하는 데서 온다. 인류가 이러한 견해를 갖는다는 것이 어떤 경제적 의미를 함축하는지 생각해 보자. 상품과 서비스 대부분이 기계로부터 나온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부득이 사람들은 사람만이 제공할 수 있는- 또는 사람이 제공하는 것을 선호하는- 대인 서비스를 공급하는 일에 종사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인간이 되는 일을 잘 해내야 할 필요가 있게 될 것이다. 그 예로 심리치료사, 경영 코치, 가정교사, 카운슬러, 동료, 노약자 돌보미 등이 포함된다.  


우리 모두는 서로서로 '삶의 기술'을 배우도록 도울 필요가 있다. 의존이 아니라 성장의 문제다. 남들에게 영감을 주고 감상하고 창작할 능력-미술, 음악, 문학, 대화, 텃밭 가꾸기, 건축, 요리, 포도주, 비디오게임일 수도 있다-을 제공하는 능력은 전보다 더욱 필요해질 가능성이 크다.


다음 질문은 소득 분포다. 대다수 국가에서는 소득 분포가 잘못된 방향으로 수십 년간 진행됐다. 고소득과 높은 사회적 지위는 대개 높은 부가가치를 제공할 때 따라 나온다는 것이다. 불행히도 마음에 관한 우리의 과학적 이해 수준은 빈약하고, 행복과 만족에 관한 과학적 이해 수준은 그보다 더 낮다. 우리는 물질세계보다 인간에게 더 초점을 맞추는 쪽으로 교육 제도와 과학 탐구 활동을 근본적으로 재고할 필요가 있다. 행복이 공학의 한 분야가 되어야 한다고 말하면 좀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그것이 불가피한 결론인 듯하다. 그런 분야는 기초과학-인간의 마음이 인지적, 감정적 수준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 더 잘 이해하는-에 토대를 둘 것이고, 개인이 인생의 전반적인 궤적을 설계하는 일을 돕는 인생 건축가부터 호기심 증진과 회복력 같은 주제들의 전문가에 이르기까지, 아주 다양한 직업의 사람들을 훈련시킬 것이다.  


이런 기초과학 분야를 창설하고 그 지식을 토대로 훈련 프로그램을 짜고 자격을 갖춘 직업군을 배출하는 쪽으로 우리의 교육과 연구 제도를 재편하는 데는 수십 년이 걸릴 것이다. 그러니 더 일찍 시작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애석해하면서 지금 당장 시작하는 편이 좋다. 그러면 살 만한 세계라는 최종 결과가 나올 것이다. 제대로 작동한다면 말이다. 그렇게 재고하지 않는 다면 우리는 지속 불가능한 수준으로 사회경제적 혼란에 빠질 위험이 있다.



노트


이 책이 나온지 벌써 5년이 지났다. 그때보다 기술은 더욱 발전했을 것이고 사무직 자동화는 더욱 빠르게 이루어지고 있다.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 다는데 막연한 언술이다. 인간다움, 인간적임을 강조만 할 게 아니라, 구체적인 사례가 필요하다. 아마도 예술, 심리, 돌봄, 행복 등과 관련이 있다는 정도로 파악된다.


교육제도도 완전히 개편되어야 한다고 했지만 이해관계 때문에 현실적으로 불가능할 것이다. 평균적인 인재를 양성하는 보편교육은 이제 더 이상 의미가 없다. 각자가 자신의 필요에 맞게 스스로 배울 것을 찾고 학습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인공지능이 대부분의 일자리를 빼앗을 것이며,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이 더 필요해질 것이라는 것을 안다고 해서 과연 무엇이 달라질까. 안다고 해서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자본가가 아닌 노동자는 점점 더 생존하기 힘들어질 것이다. 내가 하는 일 중에서 곧 대체될 틀에 박힌 정신노동은 무엇일까? 대신에 나는 무엇에 집중해야 할까?


나는 그저 즐기면서 유희하는 존재로 살면 되는 건가? 과연 그렇게 살 수 있을까? 빈곤에 대한 걱정 없이 말이다. 삶의 대부분의 시간을 여가생활로 보내도 살아갈 수 있다니. 힘들게 일만 했던 이전 세대들에게는 받아들이기 힘든 일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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