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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분!

덜어내기

by Aheajigi

학교 회식 공지가 떴다. 일반 직장과 달리 학교는 내 돈 내고 회식을 한다. 그래서 회식은 언제나 직장 내부 친목회에서 매달 납부한 돈으로 진행된다.


수업이 끝났고 아이들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를 청소하고 있었다. 학교 교실은 청소를 해주는 이가 없으니 매일 이러고 있다. 2009년 개발 도상국 교원 연수로 현지를 방문했을 때 그 나라 학교도 청소를 맡아하시는 직원이 있었다. 자칭 선진국이라는 이 나라는 2025년 현재도 그리고 향후 미래에도 학교에서 청소직원을 채용할 기미는 없어 보인다.


아무튼 그 와중에 다른 동료가 업무차 들어와 일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고 뒤이어 다른 동료도 얼굴이 붉게 달아오른 상태로 들어왔다. 긴 한숨을 내쉬더니 대뜸 물어볼 게 있단다. 이렇게 시작하는 것을 보니 가정사다.


남자의 심리가 궁금하단다. 내 앞가림도 어설픈 마당에 큰일이다 싶었다.


흥분의 요지는 회식 일정이 겹치는 것 & 꼬맹이 자녀들을 저녁을 온전히 집에서 챙기는 것이었다.


먼저 이 날은 꼭 회식을 가겠다고 했는데 남편이 뒤늦게 자신도 회식을 가겠다고 말했단다. 아이들은 남편이 회식 장소에 데려가서 저녁을 먹이겠다 하는데 이건 자신보고 가지 말라는 무언의 계산된 행동이 아니겠냐며 화가 났던 것이었다.


"맞아! 일부러 그러는 거 아니야?"

업무차 방문한 이가 불난 집에 부채질을 해버렸다. 여자가 여자 편 들어주는 것은 눈앞에서 후련할지 모르나 이건 싸움을 붙이는 꼴이었다. 일에 대한 논의가 끝나 화를 북돋은 이가 나갔다.


일단 남편이 나름 생각한 듯 하니 원하는 방식으로 지켜보는 게 어떻겠냐 했다. 회식 장소에 아이들 먹을 것이 없을 것이라 걱정하길래 그건 집에 들어가서 다시 챙겨주면 된다 했다. 이런 상태로 집에서 아이 밥을 먹이면 분명 늦은 저녁시간에 남편과 싸울 테니 회식은 가는 게 어떻겠냐 했다. 매번 회식 때마다 양보하고 아이들 밥도 나만 신경 써야 해서 억울한 면이 있을 것이라 하니 맞장구를 친다. 남편이 아이들 밥을 챙기지 않아 본인의 고충을 모르니 이번 기회에 체득하는 것도 앞으로를 위해 나쁘지 않겠다 했다. 그제야 붉게 달아오른 얼굴에 경직되어 있었던 표정이 조금은 풀어졌다. 분노를 덜어냈는지는 모르겠다.


"이건 일부러 그러는 거죠?"

끝났나 싶었는데 나가기 직전 훅 들어온다.

"난 세상 남자를 대표할 자격은 없는데."

내가 누군가의 속내를 알 길은 없기에 말했더니 피식 웃는다.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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