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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롱 Mar 17. 2022

[서울청년인생설계학교 에필로그] 사랑할까, 사용할까

동물성,플라스틱 소재를 쓰지 않는 핸드위빙 창업 도전 후기


 ‘환경과 비인간 존재를 생각하는 위빙. 동물성, 플라스틱 섬유를 쓰지 않는 100% 면사 작업을 지향합니다.’라고 호기롭게 말했지만, 이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이었나.

서울평생교육진흥원에서 주관하는 '서울청년인생설계학교 기록 프로젝트'의 참여자가 되어 <회사 밖에서 나만의 커리어 상상하기>라는 주제로 ‘동물성, 플라스틱 소재를 쓰지 않는 핸드위빙 창업’을 기획했다. 코로나19로 인해 가속화되는 고용불안과 경기침체를 온몸으로 겪으며 ‘나를 지켜줄 안전한 평생직장은 없다’는 걸 실감한 이후 ‘회사 없이도 먹고 살 수 있는 내 일을 찾자’고 다짐했다. 당시 ‘내 일’로 삼기 위한 가장 중요한 기준은 ‘내가 좋아하는 일인가?’였다. 둘째는 ‘세상에 필요한 일인가?’였다. 그렇게 나는 핸드메이드 공예를 좋아한다는 이유로 핸드위빙을 배우기로 했고 환경문제를 생각하자는 메시지를 담아 면사로만 작업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계획은 계획일 뿐. 핸드위빙을 배운 지 얼마 되지 않아 나의 이 철학은 금세 흔들리기 시작했다.



1,2번 - 양모와 램스울, 화려한 합성섬유사로 만든 벽장식 / 3번 - 면사로만 만든 벽장식

 일단 면사는 내가 자주 사용하던 실과 느낌이 매우 달랐다. 공방에서 사용하는 램스울(양의 털을 착취해 만든 섬유)과는 달리 밧줄처럼 빳빳한 꼬임 때문에 작업하기 비교적 어려웠다. 실의 종류도 너무 제한적이었다. 만졌을 때 포근하고 부드러운 느낌이 드는 실, 색감이 예쁜 실, 여러 색이 혼방된 실은 대부분 램스울이거나 나일론, 폴리에스터 등의 플라스틱 합성섬유였다. 또한 ‘면 90%, 아크릴 10%’처럼 혼방된 실도 더러 있어 구매할 때 색감이나 모양보다 ‘면 100%’라고 쓰여 있는지 먼저 확인해야 했다. 어찌어찌 구매한 면사로 짠 직물은 다른 실로 만든 작품들에 비해 밋밋하고 단조로워 보였다. 포인트를 주기 위해 구매하려 한 프랑스 자수실 마저도 대부분 울사였다. 세상에 널리고 널린 게 실인데, 나에겐 작업할 수 있는 실 한 볼 사는 게 너무 어려웠다. 오백원짜리 동전만큼 들어가는 자수 실 때문에 몇십분 째 쇼핑몰만 쳐다보고 있는 꼴이라니. 내 작품 세계를 제대로 펼쳐보기도 전에 머릿속은 이미 엉킨 실처럼 복잡해지려 했다. 그 때, 내 안에서 이런 목소리가 들렸다.

‘이렇게까지 해야 돼? 고작 실뭉치 한 볼에?’

그렇다. 예전에는 촉감 좋고 색이 고우면 샀던 실뭉치들일 뿐이었다. 사실 내가 울사를 쓰든 합성 섬유사를 쓰든, 사람들은 결국 예쁜 결과물에만 관심이 있지 않을까? 한편으로는 이런 고민을 무색하게 만드는 내 서툰 바느질 자국이 눈에 들어왔다. 어쩌면 나, 가능성 없는 쓸모  없는 일에 너무 마음 쓰고 있는 것 아닐까?


 그런 고민이 깊어갈 때쯤, 우연히 면 100% 무 표백 소창과 순면 실로만 제품을 만드는 ‘ㅅ’ 브랜드를 알게 되었다. 이곳의 소창 페브릭 제품은 전기를 사용하는 자동 재봉틀이 아닌 발을 굴려 스스로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오래된 재봉틀로만 소량 작업해 만들어진다. ‘ㅅ’ 브랜드 작가 ‘도토리’님은 재봉사로도 폴리 실이 아닌 순 면실 만을 사용하는데, 신기하게도 폴리 실은 태우면 플라스틱이 타는 것처럼 녹아 엉겨 붙고 순면은 타는 향이 나면서 재만 남아 사라졌다. 순면사가 3.5배나 비싸지만 그만큼 미세플라스틱도 배출하지 않는다고 했다. 불에 녹아 딱딱하게 굳어버린 폴리실과 까맣게 연기를 타고 흩어지는 순 면실을 번갈아 보고 있자니 나는 어쩐지 위로받는 느낌이 들었다. 실 하나에 이렇게 집착하는 사람이 나 말고 또 있었다니! 뜻대로 되지 않는 위빙 작업에 회의감을 갖고 있던 나는 이내 생각을 고쳐먹었다.
‘그래, 이렇게까지 해야지. 어쩌면 그게 맞는 것일지 몰라.’
 

세상은 점점 편해지는데, 도토리님과 나는 왜 자발적으로 불편해지려 하고 있을까? 건 아마 가능성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 때문일 것이다. ‘여기 우리의 잘못된 생산과 소비를 멈출 다른 길이 있어요.’ ‘조금 불편하고 느릴 수 있지만 결국 모두에게 이로운 선택일 거예요.’라고 많은 이들에게 알리고 싶은 마음. 그 후로 나는 서툰 바느질을 계속했다. 안 그래도 단단한 면사직물 위에 자수를 놓는 건 쉽지 않았지만 그래도 가능했다. 면사로만 작업을 계속하다 보니 울사로 작업했을 때보다 더 탄탄하고 두께감 있는 직조 면을 완성할 수 있었다. 알고 보니 면사는 울사에 비해 훨씬 오래 사용할 수 있었다. 그저 동물성, 플라스틱 섬유의 대체재로 선택했던 면사의 고유한 매력을 알아가는 시간이었다.  

두 번째 작업한 사과 티코스터. 인스타그램 @chotong_made 에서 볼 수 있다.


 초등생 대상 핸드위빙 수업을 준비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단조롭고 빳빳한 면사보다는 알록달록하고 부드러운 합성 섬유사가 아이들에게 훨씬 호응을 얻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면사보다는 작업하기 편한 램스울을 사용하는 것이 수업을 진행하는 데에 훨씬 용이할 것이었다. 이번에도 내 안에서 전과 같은 목소리가 들렸다. ‘아이들과의 수업인데, 다양한 촉감과 색감의 재료를 준비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하지만 이번에는 빠르게 생각을 고쳐먹었다. 아이들을 위해 램스울을 선택하는 내 모습은 마치 ‘교육’ 목적으로 아이들을 동물원이나 아쿠아리움에 데려가는 행위와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인간이 허락한 작은 공간 안에서 서서히 미쳐가는 동물들을 구경하는 것이 교육인가. 잠깐의 만들기 수업을 위해 동물에게서 착취한 재료를 한 움큼씩 소비하는 것이 교육인가. 그런 선택을 했을 때 아이들이 내면화하는 가치는 무엇일까. 인간의 필요에 의해 언제든 비인간 존재를 착취할 수 있다는 당위성? 어쩌면 우리 어른들은 아이들을 위한다는 말 뒤에 숨어 사실 내가 즐겁고 편한 선택을 하려 한 것은 아닐까?
 결국 수업 당일에는 면사를 챙겨 갔고, 어찌 보면 당연하게도 아이들은 실의 종류가 면사인지 울사인지 관심이 없었다. 오늘 사용할 실은 면사고 왜 다른 실로는 작업하지 않는지도 알려주고 싶었지만 일단 나에겐 떠드는 아이들을 진정시키는 일만으로도 벅차 관두었다. 하지만 기나긴 부연설명 없이도 아이들은 이미 알고 있었다. 아니, 이날 수업에서 아이들은 오히려 내게 가르쳐주었다. 비인간 존재를 착취하지 않고도 얼마나 즐겁게 수업할 수 있는지, 씨실과 날실을 건너는 고운 손길만으로도 얼마나 예쁜 작품을 만들 수 있는지 말이다.

 

아이들이 면사로 만든 벽장식. 위빙을 걸기 위해 일회용 나무젓가락을 사용했다


얼마 전 나는 책에서 이런 대화 글을 읽었다.

[...이 시대에서는 누구나 절제를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선택지와 가능성이 너무 많아졌기 때문에 스스로 능동적으로 절제하는 거요. ‘나는 적어도 이것은 하지 않겠어.’라고 결정하는 게 제가 『아무튼, 비건』에서 하고 싶었던 말이에요. 언뜻 거부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훨씬 더 연결되고 싶어서 하는 행동이에요.
...그런데 선택지가 줄어들었다는 것을 느끼며, 저는 이상하게 기분이 좋더라고요.
...왜냐하면 모든 게 너무 과잉되어 있으니까요.]

-이슬아의 『깨끗한 존경』 중 김한민 작가 인터뷰


 모든 것이 과잉된 세상에서 스스로 능동적으로 절제하는 삶. 내가 면사만을 골라 위빙 하는 것도 그런 모습 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하면 작게나마 뿌듯해진다. 나의 위빙 선생님은 그것을 ‘작가 정신’이라고 불렀다. 하나의 주제를 갖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살아가겠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이 바로 작가 정신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참 신기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전시회를 열면 사람들은 꼭 내가 제일 애정을 갖고 작업했던 작품, 나만 아는 스토리가 있는 작품에만 관심을 보여요. 내가 ‘이건 저한테 특별한 의미가 있는 작품이라 팔지 않아요.’라고 몇 번을 말해도 자꾸 그게 맘에 든대요. 판매 목적으로 찍어내듯 만든 것들에는 관심도 없고요.”

 프로젝트 기간 내내 동물성, 플라스틱 섬유에 미련을 가졌던 나는 ‘동물성, 플라스틱 소재를 쓰지 않는 핸드위빙 창업’에서 ‘창업’에 더 방점을 찍고 있었던 것 같다. 작가 정신보다 이를 통한 경제적 수입이 더 중요했던 거다. 그러나 먼저는 ‘쓰지 않는’데 성공해야 한다. 왜 쓰지 않아야 하는가? 이에 대한 대답을 남들에게도 스스로에게도 확실하게 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세상에 필요한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물건을 생산하고 판매해야하는 사업자가 환경 문제와 만나면 필연적으로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물건을 파는 사람이 ‘제로웨이스트’를 실천할 수 있을까? 완벽한 업사이클링이 과연 존재할까? 내가 만드는 물건이 결국 쓰레기가 되어 환경을 오염시킨다면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H22’ 장우희 작가와의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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