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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이슬 Jan 22. 2020

최소의 맥시멈

미안해요. 만나고 싶은 마음은 진짜 최소 맥시멈인데, 일이 너무 바빠요

노량진 수산시장에서 팔팔 끓는 꽃게탕을 촬영 중이었다. 찌개류를 촬영할 때 가장 신경 써야 할 요소는 ‘국물 방울’이다. 보글보글 끓는 국물이 너무 높게 치솟으면 주재료가 가려져 지금 화면 속에서 어떤 찌개가 끓는지 알 수가 없다. 반대로 국물이 얄팍하게 끓으면 멋도 맛도 없어 보인다. 국물 방울은 적당한 높이와 크기의 파동으로 끓어야 한다. 그런데 그런 국물 방울을 만드는 적당한 불 조절이 생각보다 쉽지 않다. 카메라를 통해 보는 꽃게탕 세상은 눈으로 직접 보는 것보다 훨씬 더 극적이며 적나라하기 때문이다. 꼭 적당한 목욕물 온도를 조절할 때처럼 촉각을 곤두세우고 호흡을 조절하며 가스레인지 밸브를 만져야 하는 것이다. 


카메라 흔들릴세라 눈도 제대로 못 깜빡이는 감독님 곁에서 덩달아 식은땀을 흘리며 가스레인지 밸브를 조절하고 있었다. 눈으로 볼 땐 그저 먹음직스럽게 끓고 있는 꽃게탕인데, 감독님이 카메라 렌즈로 들여다보는 타이트한 꽃게탕 세상에선 화산 폭발 같은 재난 다큐가 펼쳐지는 중이었다. 감독님이 부드러운 톤으로 주문했다. 
                                      
“작가님, 가스 불을 조금만… 그러니까, 최소 맥시멈으로 부탁해요.” 

나는 ‘최소 맥시멈이 뭔 소리예요?’ 하고 되묻고 싶었지만 6년 차 방송작가로서 짬을 살려 눈치껏 행동했다. 최소면서 맥시멈의 어디쯤, 말하자면 중불에 밸브를 맞췄다. 카메라 속의 꽃게탕이 이상적으로 끓기 시작했다.

 퇴근 후에도 오랫동안 ‘최소 맥시멈’의 불로 끓였던 꽃게탕을 생각했다. 중불에 끓는 꽃게탕보다 최소 맥시멈 불에 끓는 꽃게탕이 훨씬 그럴듯해 보이는 건 왜일까. 세상 만물에 괜한 의미 부여를 잘하는 강이슬답게 꽃게탕에도 거창한 의미를 부여했다. 무려 인생을 대입한 것이다. 나는 노트에 이렇게 적었다.

내 인생은 꽃게탕. 센 불에 펄펄 끓여봐야, 빨리 닳고 말라 짠내만 풍길 것이고, 가장 약한 불로 끓인다면 네 맛도 내 맛도 아닌, 그리하여 시시한 인생이 되겠지. 그렇다고 중간 불로 끓이는 인생은 멋없으니까 ‘최소 맥시멈’의 불을 지피자.

친구에게 보여줬더니 아리송한 표정으로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게 뭔 최소 맥시멈적인 이야기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그래도 친구는 “좋네”라고 말해줬다. 만족스러웠다. 결국은 적당히 살겠다는 소리인데, 적당히 살아야겠다고 썼으면 분명히 한소리 할 열정적인 친구였다. 

최소 맥시멈이라는 단어를 잘만 사용하면 앞으로 받을 스트레스의 몇 십 그램 정도는 줄일 수 있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그래서 앞으로 이런 상황에서 최소 맥시멈을 써먹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달갑지 않은 상대가 만나자고 할 때) ‘미안해요. 만나고 싶은 마음은 진짜 최소 맥시멈인데, 일이 너무 바빠서…’, (남의 일을 떠맡은 언짢은 상황에서) ‘일단 최소 맥시멈으로 노력해볼게요’, (그저 그런 상사를 칭찬해야만 하는 분위기에서 쌍엄지를 들어 보이며) ‘캬~ 선배님께 배울 점은 언제나 최소 맥시멈이죠’.

번외로 최대 미니멈의 자세도 있다. 이는 정신 승리에 유용하다. 

 (다이어트 중에 식욕을 절제하지 못했을 때) ‘흠 먹으려던 양을 최대 미니멈 초과했군. 괜찮아’, (카드 값이 경악스러울 때) ‘이 정도 적자면 겨우 최대 미니멈이지’.

심오한 두 단어를 건진 김에 스스로에게 전하는 새해 덕담도 있어 보이게 꾸며봤다. 2020년에는 최대 미니멈의 강도로 일하면서 최소 맥시멈의 자유를 느끼고 최소 미니멈의 스트레스를 받으며 최대 맥시멈의 수입이 있기를. 





topclass 1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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