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의 날마다 떠오르는 기억 때문에 괜히 발바닥이 간지럽다. 열 아홉의 5월 15일이었다. 스승의 날 행사를 위해 전교생이 강당에 모였다. 학생회장이었던 나는 교장선생님께 카네이션을 달아드리는 막중한 임무를 앞두고 조금 떨고 있었다.
“다음으로 전교생을 대표해서 강이슬 학생회장이 교장선생님께 카네이션을 달아드리겠습니다.”
박수소리를 받으며 단상 위로 올라갔다. 흰 머리를 우아하게 쪽진 교장선생님이 인자하게 웃고 계셨다. 긴장한 탓에 손바닥과 발바닥에 땀이 났다. 교장선생님의 흰 블라우스에 붉은 카네이션을 무사히 달아드린 뒤 몰래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행사 내내 걱정했던 일, 옷핀으로 교장선생님의 살갗을 뚫는 참사는 다행히 일어나지 않았다.
편안한 마음으로 단상을 내려 오려는데 예상치 못한 식순이 나를 놀래켰다.
“세족식이 있겠습니다.”
까맣게 잊고있던 장면 하나가 생생하게 떠올랐다. 작년 오늘, 학생회장 언니의 발을 정성스럽게 닦아 주시던 교장선생님의 모습.
단상 중앙에 의자와, 세숫대야 등이 세팅되었다. 당황할 틈도 없이 의자에 앉아 교장선생님께 발을 맡겼다. 멍한 얼굴로 의자에 앉아 오만가지 걱정을 했다. 방금 땀에 젖은 발에서 날 꼬린내도, 간지럼을 잘 타는 체질도, 잠시 후 친구들의 놀림거리가 될 일도 모두 다 걱정이었다.
교장선생님이 치마자락을 정리한 뒤 바닥에 무릎을 대고 앉으셨다. 희끗한 정수리가 보였다. 차라리 내가 무릎을 꿇고 교장선생님의 발을 씻겨드리고 싶었다. 더구나 오늘은 스승의 날이 아닌가. 선생님께 존경을 표하는 날, 내 더러운 발을 맡기고 앉아있자니 스스로가 더없이 패륜스럽게 느껴졌다.
왼발이 세숫대야에 잠겼다. 물은 따뜻했지만 몸은 자꾸만 얼어붙었다. 할 수 있는 것이라곤 필사적으로 간지럼을 견디면서 이 시간이 어서 끝나기를 간절하게 비는 것 뿐이었다. 오른발을 씻을 차례가 되었을 때는 반 포기상태로 넋을 놓았다. 시선을 둘 데 없어 내 발에 조심조심 물을 끼얹는 교장선생님의 손가락을 쳐다보았다. 이어서 걷은 소매와 작은 어깨, 진지한 표정이 보였다. 세족식의 마지막 순서는 풋크림을 바르는 것이었다. 교장선생님이 풋크림을 바르기 시작하자 단상 아래 곳곳에서 픽픽 웃음 소리가 터져나왔다. 세족식이 끝난 뒤 자리로 돌아가니 친구들이 웃겨 죽겠단 얼굴로 나를 쳐다봤고 나는 싫어 죽겠단 표정으로 애들을 쳐다보았다.
행사의 마지막은 <스승의 은혜>를 부르는 것이었다. 피부에 다 스며들지 않아 여전히 발가락 사이사이에서 미끄덩거리는 크림의 감촉을 느끼며 소리높여 노래를 불렀다.
“스승의 은혜는 하늘 같아서 우러러 볼수록 높아만 지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한동안 스승의 날이 다가올 때마다 그 날의 일을 고교시절 요상한 추억 정도로만 기억했다. 사람들에게 일부러 과장하고 부풀려 우스꽝스럽게 설명한 적도 많았다.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그날의 기억에 뭉클해진다. 매년 스승의 날마다 자신보다 반세기는 늦게 태어난 학생들 앞에서 낮은 자세를 보여주시던 교장선생님. 그녀는 아마 알고 있었을 것이다. 당신의 뜻을 다 헤아리기에는 자신의 학생들이 너무 어리고 철 없다는 사실을.
우러러 볼수록 높아만 지는 스승의 마음. 오늘따라 발바닥보다 마음이 더 간지럽다.
한국일보 2030세상보기 5월 1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