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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이슬 Aug 08. 2021

털이 뭐라고

날도 더운데 남의 털에까지 열내지 말자

고등학교 때 별안간 귀밑 3센티 단발령이 내려졌다. 귀 밑 3센티를 유지하는 일은 생각보다 까다로웠다. 과장을 조금 보태 매 끼니를 먹을 때마다 머리카락이 자랐기 때문에 수시로 미용실에 가서 머리를 다듬어야 했다. 그게 번거로워 쇼트커트를 했다. 귀 위로 바싹 친 짧은 머리가 귀 밑 3센티까지 자라려면 꽤 오랜 시간이 걸릴 테니 그동안 미용실 갈 시간을 아껴서 공부를 하는 게 더 나을 것 같았다. 머리를 자른 뒤 학교에 갔을 때 학생주임 선생님이 경악을 하며 나를 교무실로 불렀다. 그는 당시 학생회장이었던 내 머리를 출석부로 툭툭 치며 '학교를 대표한다는 녀석이 반항적이며, 불량하게 이 꼴이 뭐냐'고 말했다. 쇼트커트를 하지 말라는 교칙은 없었기 때문에 당황스러웠다. 단발머리일 땐 착실하고 성적 좋은 학생회장이었던 나는 머리카락을 자르자마자 곧바로 반항적이고 불량한 학생이 되었다. 옆동네 남고생들의 빡빡머리를 떠올리며 걔네 털은 되고 내 털은 왜 안 되는지 속으로 억울해했다.


선생님의 오해와 달리 쇼트커트는 불량이나 반항과는 한참 거리가 멀었다. 세상의 모든 고3들에게 권하고 싶을 정도로 편했다. 적어도 귀 밑 3센티 단발보다 훨씬 합리적인 헤어스타일이었다고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믿는다. 그 편함이 너무 좋았기 때문에 20대에도 종종 쇼트커트를 했다. 몇 년 전 주짓수에 흠뻑 빠져있을 때였다. 자꾸만 상대방 발에 짓밟혀 뜯겨나가는 단발머리가 거추장스러워 쇼트커트를 했다. 그즈음 소개팅을 했는데 상대방이 나에게 쇼트커트를 한 연유를 '조심스럽게' 물었다. 주짓수 할 때 거슬려서 깎았다는 내 대답을 듣고 그는 안도의 한숨 같은 걸 내쉬더니 말했다.


"아.. 전 또.. 요즘 극성인 그런 부류이신 줄 알았네요. 사실 아까 처음 뵀을 때 머리가 너무 짧으셔서 깜짝 놀랐어요


그가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하고 '그런'으로 에둘러 표현했던 단어가 '페미니스트'였다는 걸 나는 알 수 있었다. 쇼트커트와 페미니스트를 연관 짓는 사람. 그래서 쇼트커트 한 여성을 보면 깜짝 놀라는 사람, 심지어 '페미니스트'를 볼드모트 취급하며 차마 발음하지 못하는 사람은 멋있지 않았기 때문에 대충 시간을 때우고 커피잔이 비자마자 헤어졌다


여성의 쇼트커트에 열내는 사람들을 보니 떠오른 과거의 기억이다. 여성 쇼트커트에 몸서리를 치는 그들이 신기하고 궁금하다. 혹시 '세상에 나쁜 털은 없다, 꽃으로도 자르지 말라'고 외치는 털 애호가들이라도 되는 걸까. 도대체 털이 뭐길래. 백번 양보해서 삼손의 후예들이라고 생각하기엔 그들의 머리털이 짧다. 그렇다면 혹시 쇼트커트가 여성은 절대 넘볼 수 없는 남성만의 전유물이라고 믿는 걸까? 에이 설마, 성별에 따라 털 손질법에 차등을 준다고? 세상에 그럴 리가. 여성의 쇼트커트에 폭력과 차별을 서슴지 않는 그들은 쇼트커트가 페미니스트의 징표라고 믿는 듯한데, 그건 너무 서운하고 속상한 일이다. 머리카락을 허리까지 기른 여성도 얼마든지 페미니스트일 수 있기 때문이다. 단발머리도, 염색머리도, 민머리도 페미니스트일 수 있다. 머리털의 가꿈새는 페미니스트로서의 자격이나 징표가 되지 않는다.  


털은 털일 뿐이다. 기르고 싶다면 기르고 자르고 싶다면 언제든 자를 수 있는 털. 날도 더운데 남의 털에 열내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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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2030 세상보기 8월 7일자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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