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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학교도서관 Oct 03. 2023

엄마 장례식에 안 우는 방법

주먹만 한 수제비

육아의 졸업은 자녀의 독립이다

-오은영박사




엄마는 약 70여 년 전 어느 섬마을의 장녀로 태어났다

큰 딸은 살림 밑천이라는 말에 따라

어른들이 밭일이나 논일에 나가시면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부뚜막에 불을 때고

솥에 밥을 했다고 했다



농활기에는 논 일하는 어른들 밥이며 동생들을 돌봐야 해서 결석을 많이 했는데

밥 안 하고 학교 가는 옆집 정순이가 세상에서 제일 부러웠단다

(엄마는 지금도 문자 쓸 때 맞춤법을 잘 틀린다)



외할아버지가 좋아하시는 수제비를 하는 날에는

부뚜막 열기 때문에 여린 손이 뜨거워

수제비 덩어리가 하염없이 커졌는데



논 일하시고 돌아온 외할아버지는

수제비 덩어리 하나가 어른 주먹만 하여

하나만 먹어도 든든하다며

10살 고사리 손으로 만든 수제비를 할아버지의 방식으로 칭찬해 주셨단다






그러던 어느 해에

(기억 속에 처음으로)

추석 명절에 외가댁을 갔단다



시집간 지 몇 년 만에 보는 딸과 손녀가 반가워

때 이른 계절에 불을 땐 아랫목에 앉히고서

외가댁 온 식구가 내려다보며

 "오목조목 여간 ~ 이쁘다"라고 하셨단다



산 넘고 물 건너 피곤한 엄마는

할머니 무릎을 베고

어색하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하여 살포시 잠이 들었는데

한 참 지나 땀을 쪽 빼고 일어날 때까지


시집살이하는 딸 걱정하는 증조할머니의 노파심이

조곤조곤 따뜻해서

밥 먹으라 깨울 때까지

잠자는 척했다고 했다







짧게나마 외가에서 사랑도 받고

그 당시엔 귀한 학교 학용품 같은 것도 선물 받았는데

본가로 와서는 공교롭게도 증조할머니가 낳은 두 살 많은 삼촌(철수라 하자)이

엄마를 두들겨 패고 그 귀한 것을 빼앗아 갔다고 했다



나 "어휴 속상해 잘 좀 숨기지 그랬어?!"



엄마 "문갑이며 솜이불 속이며 깊이 넣어 둬도 철수가 귀신같이 찾아내는걸...."

그리고는 자기 엄마한테 여자애가 무슨 학용품이냐며 일러바치고는 뺐어갔지"



나 "철수 미워 죽겠어 다음에 보면 엄마 왜 그렇게 때렸냐고 따질 거야!"


엄마는 통쾌하게 웃고는 "ㅎㅎㅎ 그럴래? 근데 철수 이제 불쌍해"하고 말을 줄인다


나 "왜?"



엄마 "아들이 잘 안 돼서 집까지 날리고.. 몇 해 전부터는 아예 철수네 집으로 들어왔데지.."

        "자식은 적당히 거리를 두고 지들끼리 잘 살아야 효도지~"



나 "내집 절반은 은행 소유라도! 독립했으니 난 효녀요~ !"

엄마" 그럼 효녀고 말고~! 그리고 !"



 "나처럼 할머니 장례식에서 울지말고 미리미리 자주 봐둬라!"


나 "과연 미리 많이 봐두면 눈물이 안날까?ㅎㅎ"

엄마 "장례식에서 울지말고 미리많이 봐둬 ~ 나중에 울어봤자 소용없더라"



그때 옆에서 가만히 우리 이야기를 듣던 딸아이가 묻는다



 "근데 할머니는 태어날 때부터 할머니가 아니었어요?
할머니로 태어나서 할머니로 죽는지 알았어요~"




딸아이의 엉뚱한 말에 한바탕 다 같이 웃었다




엄마 어렸을 때 고생한 옛날이야기는 한 입 베어물면 덜 익은 감처럼 씁쓸히 떫다

그런데 참 신기하게도

두번 세번 듣다 보면

내 마음속에서 묵혀 익힌탓인지.. 

달고나보다 더 들큰한 홍시같다



엄마와의 추억을

아침저녁으로 스산한 가을바람에 꾸덕하게 말려

곶감 빼먹듯 하나씩 아껴

요긴하게

우리아이에게 나눠줘야지


증조할머니도 외할머니도 여린 아이었던

코스모스 익어가던 추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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