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욕탕에서 생긴 일
수능한파를 전 후로 날이 갑자기 추워지자
작은아이는 내게 뜨끈한 대중탕을 졸랐다
덕분에 오랜만에
전문가(세신사 아주머니)께
나의 묵은 체중을 깎아내 보리라
모락모락 열이 나는 탕이 뜨겁다며
안과 밖을 오락가락하는
둘째의 통 실한 궁둥이와 벌겋게 닳아 오른 얼굴을 감상하며 여유롭던 차
탕 안에 갑작스러운 소란이 일었다
빨간 꽃무늬로 상하의를 맞추신 세신사 아주머니께서
탕 안의 80대 중후반과 60대 초반쯤의 모녀에게 역정을 낸다
그 딸은 처음에는 당황해하다가 이내 수긍한다
그러나
잠시 후에도 할머니가 탕에서 나오지 않자
이번에 그 옆의 검정 상하의의 세신사 아주머니도 손사래를 치고는
어서 탕에서 나가라고 호령을 하신다
"왜 목욕하는 사람을 쫓아내지?"
라고 생각하던 차
조심스레 탕 안에서 일어선 80대 할머니가 휘청한다
60대 딸이 얼른 손을 내밀어 부축하고 섰다
한참을 그 상태로 머물다 겨우 느릿느릿 탕을 나갔다
사연이 궁금하여 귀를 쫑긋 세워 그들의 소란한 사연이 궁금하던 찰나
빨간상하의의 미모님이 "53번 ~~"하고
맡겨둔 내 키 번호를 부르며 손짓을 하신다
"내 여기요~!"나는 호다닥 일어서다 순간 휘청한다
세신 아주머니 "어휴 천천히 와요! 젊은 사람도 물에 오래 있으면 어지럽다~!"
약간의 설렘과 부끄러운 마음으로
진한 핑크색의 때밀이 판에 숙성된 횟감처럼 다소곳이누웠다
세신 아주머니의 체계적이고 숙련된 손길에 따라
지우개 가루처럼 후두둑, 나였던 것이 떨어졌다
세신 아주머니의 치도곤(조선시대 곤장과 같은 형벌)이 끝나갈 즈음
나의 궁금증이 수치심을 이겨 결국 조심스레 질문한다
나 "아까 그 할머니.. 무슨 일이시래요?"
세신이모 (나에게 벌컥 역정을 내시며)
"아니~! 들어올 때부터 안색이 안 좋아 보이는 분이 탕에 너무 오래 있잖아
그래서 탕에 오래 있지 말고 나와서 쉬라 했더니! 마사지를 하라는 거야~!"
나 "마사지받으면 왜 안 돼요?"
세신이모 "제대로 걷지도 못하시는 분을 쌔게 주무르면 큰일 날 수 있어서 안되지~~"
나 "아!"
세신 이모의 말에 따르면, 할머니가 탕에 들어오실 때부터
엄마 생각이 나서 지켜봤는데
뜨거운 탕에 오래 계시는 것이 걱정되어 따님께 화를 내신 거라고 한다
뜨거운 탕에 있다가 저혈압에 탕에서 낙상하실 수 있어서 나오시라 여러 번 했는데
할머니가 안 나오신다고 버티더니,
결국 저혈압에 휘청하셨지 않냐며,
겨울에는 밖과 탕 안의 온도차가 심해서 노인분들 중에 더러 위험한분이 있을지 모르니 유심히 관찰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세신 아주머니는 내 질문 뒤로도 본인의 노모 이야기
아내를 셋이나 두셨었다는 돌아가신 할아버지 이야기
그리고, 그 아내들 중 누구도 할아버지를 돌보지 않았다는 이야기 결국 그의 치매 병수발을 다 받아내고 효부상을 받았다는 고모 이야기도 해주셨다
이야기가 길어진 탓일까? 역대급 꼼꼼한 세신을 받았다
내 마음속 오늘의 세신(이라 쓰고 치도곤이라 읽는다) 점수는
(잠시 지나는 손님의 혈색 까지 살피는 아주머니의 사려깊음은)
별 다섯 개도 부족하다..
황금색별로 마음속에 저장한다
오늘은 적자생존이란 험난한 틀의 자연 생태계에서
지구를 접수한 인간의 생존(이라 쓰고 다정이라 읽는) 전략을 납득하며
진화인류학의 새로운 시각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를 추천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