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락받은 시간에 대하여
우리가 듣는 모든 것은 사실이 아니라 의견이며
우리가 보는 모든 것은 진실이 아니라 관점이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오후 늦게 마신 커피 탓인지
꿈속에서 내내 검은 그림자에게 쫓기더니
새벽 두 시 눈이 뜨였다
어제 드디어 마지막 과목의 기말고사와 최종과제를 제출하고
오늘밤은 발 뻗고 자려했는데
검은 그림자가 나타나
"이게 최선이에요? 확실해요?"라며 (2010년 화제의 드라마 "시크릿 가든"의 김주원 버전)
나를 쫓아다녔다
최선을 다하지 않고 지나버린 시간에 대한
후회의 망령은
새벽 두 시, 자기혐오로 복수해 온다
지인이 물었다
"대학원 할 만 해?"
나는 그저 "공부는 어렵지만, 할만해"라고 말하면 되는 것을
과제와 기말고사를 앞둔 당시 시점에서 쉬이 "할 만 해"란 말이 나오지 않아
답을 하지 못하고
길 위에 덩그러니 섰다
예전 학부 때, 교육과정에 따라 배운 것을 외우고
그 '지식이 필요한 시점에 적절히 내 머릿속에서 인출할 수 있느냐'가 기준일 때는 "할 만 했"다
그런데 대학원이라는 (게임에서의 고급레벨 같은) 단계의 문제인 것인지
최근 불어닥친 인공지능(ChatGPT)과 4차 산업 혁명이라는
시대적 마파람 때문인지
교수님은 우리에게 비판적이고 창의적이면서도 적용가능한 지식에 대해 토해놔라 하신다
무릎을 땅속에 뭍고, 하늘의 별을 따오라는 느낌이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중학교 자유학기제의 학생에게 한 학기 동안 챗지피티를 이용하여 비판적 사고를 도출할 수 있는 정보문해 교육을 교과연계를 통한 통합교과과정으로 지도안을 작성하되 뉴스리터러시나 독서가 중심이 되어야 한다"
혹은
"20년 전 마이크로소프트사에서 전망한 2023년 고등학생의 하루"를 통해 교육공학적 관점에서 에듀테크를 통한 학습자중심의 교육 방법, 전략을 교수학습설계이론을 바탕으로 수업을 설계하여 시나리오를 만들고 지도안을 제시하시오"
...
물론,
출석에 의의를 두고 눈감고 다닌다면 "할 만 했"을 거다(더러 몇 과목은 … 그랬다)
김장배추에 배추 속 버무리듯 적당히 느낌적인 느낌으로, 과제와 기말고사를 비벼 제출해도 졸업은 된다
반전이라면,
내가 몇 주를 고심하여 제출한 과제도
교수님의 "관점"에서는 김장은커녕, 겉절이도 아니고..
샐러드! 정도로나 보이시려나 ㅋㅋㅋㅋ
기말고사나 최종과제 기간에
"대학원 할 만 해?"라고 물으신다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말씀마따나
나의 의견과 관점에 따라 "쉽지 않다"라고 말씀드린다
철이 지나 버린 자기혐오에도 어쨌든,
마침내,(영화:헤어질 결심 참고)
과제지옥을 건너
불혹의 대학원생이에게도
겨울방학이 왔다
속도 없이 설렌다
내가 시험을 망치고 자괴감에 힘들어하면,
“자기혐오는 좋지 않아”라며 짐짓 성숙한 위로의 말을 건네는 큰 아이의 어느새 짧아진 바지가 눈에 걸린다
이제 나는, 학기 중에 냉동볶음밥으로 방치했던
우리 삼식이 삼순이를 포동포동 살찌워야 하는 또 다른본분을 지켜야겠다 칠첩반상에 상다리 부러지게 내어놓으리라
그리고 틈틈이 좀 놀아야겠다
(나랑 놀사람 댓글요망)
왜냐하면, 나는
한참 놀고싶은 햇중년이니까
오늘부터 야심차게
엄마표 뚠뚠정식을 시도했지만
새벽 두시에 잠을 설친탓에
찌개하나에 반찬두개를 겨우하고 뻩었다
체력없는 다짐은 구호에 불과하다고 누가 했더라
내일은 맛있는 잡곡밥 안치고
애들이랑도 놀아야지 하고 다짐해본다